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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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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없이 태어난 아기, 기적을 바라며 중환자실 보냈지만…

엄마가 손톱만 한 희망을 안고 낳은 아기
등록 2023-12-08 10:22 수정 2023-12-13 13:29
경기도 고양시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경기도 고양시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우중충한 아침, 여느 날처럼 회진을 돌고 있었다. 어디선가 생과 사의 선을 넘나드는 급박함이 느껴졌다. 의료진이 굳은 얼굴로 작은 아기가 실린 수송기를 밀고 치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두 명, 간호사 세 명, 호흡치료사 두 명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아기를 바라봤다. 혹시 도움의 손길이나 새로운 눈이 더 필요할까 싶어 따라 들어갔다.

얼굴은 납작하게 눌리고 팔과 다리는 초승달처럼 휜 신생아가 누워 있었다. 판판한 얼굴 위로 기도 삽관 튜브가 봉긋이 솟았다. 호흡치료사는 앰부백을 짜며 아기에게 끊임없이 숨을 불어넣었다. 간호사 한 명은 아기의 작은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싸 심폐소생술을 했다. 심장박동수, 산소포화도, 호흡률이 표시되는 모니터에는 의미 있는 생체 징후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아기였다.

호흡을 못하는 아이, 탯줄이 잘리자

치료실 한구석에서 아기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아기 몸이 가슴압박으로 들썩이자 아빠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쓸쓸한 아빠의 어깨가 아기보다 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구슬픈 울림에도 의료진은 흔들리지 않고 아직 말랑말랑한 탯줄을 소독했다. 날카로운 칼로 무거운 공기를 갈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기의 생명줄이었을 탯줄을 잘랐다. 그 안으로 낚싯줄같이 가느다란 관을 넣고 약과 수액을 아기의 몸으로 밀어 넣었다. 뛰는 심장을 더 빠르게, 잘 뛰지 않는 심장도 뛰게 하는 약이었다. 이미 멈춘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는 더 애달프고 가엾게 흐느낌을 넘어 성열(聲咽·목메어 욺)하기에 이르렀다.

부모는 이미 아기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 둘이나 있는 신장이 이 아기에겐 하나도 없었다. 태아가 20주 이후가 되면 자궁 안의 양수는 태아 소변으로 이뤄지게 된다. 태아의 신장이 소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양수가 부족해진다. 양수가 없으면 태아는 움직일 수 없다. 폐도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않는다. 태아의 얼굴은 자궁벽에 붙어 평평해지고 팔다리도 활처럼 휘어져 태어나는데, 이를 포터증후군이라고 한다. 오롯이 자기 힘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폐가 제 기능을 못해 아기는 출생 뒤 예외 없이 죽게 된다. 이 아기의 엄마는 임신을 중단할 수도 있었으나 손톱만큼의 희망을 안고 임신을 지속했다.

그렇게 엄마 몸 밖으로 나온 아기는 예상대로 자가호흡을 할 수 없었다. 엄마와 연결된 탯줄이 잘리자 아기의 생명은 금세 꺼졌다. 부모는 완강했다. 모든 수단을 써서 살려만 달라고 간청했다. 의료진이 기도 삽관을 해도, 가슴을 아무리 눌러도 폐가 덜 자란 아기는 살 수 없다. 부모는 다시 완곡하게 부탁했다. 제발 조금만 더 시도해보자고, 기적을 더 기다려보자고. 결국 분만실에서 끝내야 할 치료가 연장됐다.

한 발 떨어져 바라본 죽음은 가히 충격적

생명의 불이 꺼진 깜깜한 아기의 몸이 신생아중환자실까지 실려 들어왔다. 아기의 주치의가 아닌 온전히 제삼자의 눈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아기와 가족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심폐소생술에 열중한 동료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도 처음이었다. 이미 수많은 의료진이 투입됐고 더는 어떤 도움도 필요치 않았다. 가장 유능한 의료진 100명을 뽑아 구하려 해도 살릴 수 없는 아기였다. 한 발 떨어져 이미 진 생사의 싸움을 하는 의료진을 바라보니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주로 심폐소생술을 지휘하며 필요한 시술을 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늘 급박한 상황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터라 의료진 얼굴에 쓰인 고통과 슬픔,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미처 알아차릴 겨를이 없었다.

간호사와 호흡치료사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급박하게 움직이는 손길과 달리 진한 고통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이미 죽은 아기를 붙잡고 숨을 불어넣고 심장이 뛰지 않는 가슴을 손가락으로 눌러대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공평하지 않은 경기를 내 동료들이 치르고 있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니 심적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시 뛰지 않을 아기의 심장과 반대로 힘차게 움직이는 엄지손가락이 목적을 잃었을 때, 손끝에서 피는 희망이 자꾸 사라져갈 때, 아기만큼 우리의 가슴도 차갑게 식는다. 차갑다 못해 얼어붙은 듯한 가슴이 ‘팍’ 하고 유리처럼 부서진다.

아기를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보였다. 그들의 마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데 자꾸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어째서 이 아기의 생은 하루도 허락되지 않을까 묻고 싶은데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심폐소생술이 계속됐다. 잿빛 얼굴의 아기 위로 시커메진 속을 가진 의료진의 가슴이 떨리고 있었다.

아빠의 몸 위에는 슬픔이 솜이불처럼

뒤에서 오열하는 아빠에게 다가가 의학적 죽음 소식을 알린 동료 의사의 사망 선고로 기나긴 심폐소생술은 마무리됐다. 갓 나온 슬픔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병실 안을 돌아다니다 바닥으로 마침내 가라앉았다. 바닥에서 몸부림치던 아빠의 몸 위에는 슬픔이 솜이불처럼 덮였다. 울부짖음이 너무 진해 두꺼운 슬픔으로도 덮이지 않았다. 그의 인생 최악의 시간을 함께한 간호사 한 명이 그를 안아 일으켰다. 잠시나마 고통의 시간을 함께 나눈 이의 위로로 아빠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말라갔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사랑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저자

*스텔라 황 교수가 전한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 이야기 ‘신생아중환자실’ 연재를 끝냅니다. 그간 수고해주신 필자와 사랑해주신 독자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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