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신청이 왔다. 미국은 응급이 아니면 보험에 따라 갈 수 있는 병원이 정해졌다. 내가 일하는 4차 병원은 보험 연계가 없어 전원 요청이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이 경우 둘 중 하나다. 아기가 심각한 상태라 4차 병원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아기 상태가 불안정해서 보험이 연계된 3차 병원까지 전원이 힘들거나.
아기가 많이 아프다는 것은 명백했다. 구급차를 타고 최대한 빨리 전원해야 할 병원에 도착했다. 두 달 이상 빨리 나온 쌍둥이였다. 한 명은 괜찮은데 다른 한 명이 생체 징후가 심상치 않았다. 침대 옆에 주렁주렁 달린 줄로 끊임없이 치료액이 들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폐혈관의 압력이 높아 산소 공급과 가스 교환이 거의 되지 않았다. 아기 아빠는 우리와 함께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제왕절개를 한 터라 그럴 상태가 아니었다. 신생아중환자실에 올라와 직접 아기를 보지도 못했다. 아기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구급차로 옮기는 전원이 망설여졌다.
누군가 내게 최악의 죽음을 꼽으라면, 구급차 안에서 혼자 맞는 죽음이라 말할 것이다. 아빠에게 아기 상태를 설명하고 앞으로의 치료 방향과 좋지 않은 예후를 전했다. 한참을 무표정으로 듣던 아빠는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 아기가 선생님 아기라면 어쩌시겠어요?”
자주 듣는 질문이다. 어떤 선택이든 쉽지 않다. 만약 다른 의사였다면 어떤 대답을 했을까. 주저함을 잠시 내려두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전했다.
“아마 전원을 할 것 같아요. 살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기가 구급차에서 죽을 수도, 갑자기 상태가 악화해 전원한 병원에서 죽을 수도 있어요. 부모님께서 아기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결의 찬 표정으로 외치듯이 말했다.
“갑시다! 한번 시도나 해봅시다!”
그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을 때, 나는 이것이 내가 원한 답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시도야 해볼 수 있지만 이 미숙아는 십중팔구, 아니 99% 이상의 확률로 사망한다는 것을. 그리고 1% 확률로 살더라도 워낙 위중해 많은 합병증이 따른다는 것을. 간단한 덧셈은커녕 두 다리로 걷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포기를 모르는 나 때문에, 그 1%의 확률을 믿은 나 때문에 아빠는 전원을 결정했다. 고백하건대, 다시 돌아간다면 반대의 대답을 해주리라.
전원을 온 아기는 좀 좋아지는 듯했다. 잠시나마 4차 병원에서 일한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또 내가 확률을 무시하고 데리고 온 아기가 내 치료로 좋아져서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 아기의 산소포화도는 다시 최저점을 향해 내려갔다. 혈압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뚝뚝 떨어졌다. 몸 전체에서 출혈과 혈액응고가 동시에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작은 머리 안에서 심각한 출혈이 발생했다. 이미 시뻘건 피가 한쪽 머리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기가 날아오르기도 전에 날개가 꺾여버렸다. 난데없이 벌어진 일이라 잠시 엄마와 아기의 동생을 보러 간 아빠는 이 당혹스러운 죽음을 지키지 못했다. 내가 가장 증오하는 죽음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 곁이 아닌, 동정과 연민만이 가득한 의료진에 둘러싸여 아기가 죽었다.
전원하지 말았어야 할 아기를 손수 데려왔다. 최악의 죽음도 가져왔다. 황망하게 떠난 아기 앞에 선 아빠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나를 원망하는 눈빛은 넘치는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도 어려운데 아기 엄마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나도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모는 이 순간을 상기시켜주는 얼굴을 매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허망하게 보낸 아기의 얼굴이 똑같이 생긴 동생 얼굴 위로 겹쳐 보일 것이다. 내가 놓친 작은 생명이 동생 얼굴 위로 아른아른 피어오를 것이다. 잊고 있었다. 부모에게 최악의 죽음은 쌍둥이 중 한 명의 죽음이라는 것을.
지옥의 순간을 내가, 두 손으로 빚어 부모에게 선사한 꼴이 돼버렸다. 그 전원 신청을 거부했어야 했다. 아기 아빠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봐도 눈을 꼭 감았어야 했다. 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도, 입을 꾹 다물었어야 했다. 아기는 그 병원에 남아 가족과 함께했어야 했다. 엄마와 아빠의 따듯한 품에서 마지막 숨을 뱉었어야 했다. 확률의 주사위를 무시한 채 포기하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됐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닐 로스 교수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 오랫동안 더 자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른 상실도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고 했다. 만약 전원하지 않았으면 내 아픔과 후회가 더 오래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이 마지막을 지켜줄 수 있었다면, 아빠의 상실 그리고 슬픔이 조금이나마 줄었을 수도 있다. 비록 결과가 최악이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초라한 정당화라도 가능하니까.
어떤 종류의 후회는 저지르고 나서 다시 담을 수 없기에 더 아리다. 그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 할 수 있는 바가 나를 향한 증오밖에 없어 서러움만 남으니까. 융단폭격 수준의 미움과 슬픔을 견뎌냈는데, 용서를 구할 상대조차 없어 더 아픈 밤이었다. 닐 로스 교수는 다른 부정적 감정과 달리 후회는 이로움을 달고 나온다고 덧붙였다. 후회로 제어 있는 활동을 끌어내 나은 삶도 가져다준다고. 어느 책 제목처럼 ‘끈기보다 끊기’ 객기 대신 용감한 포기가 절실할 때도 있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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