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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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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좀 작다고…태아의 선택적 죽음이 아직 허락된다

좌심실이 작은 태아, 크리스… 생존율 낮다고 그냥 보내도 되는 걸까
등록 2023-09-08 17:46 수정 2023-09-16 20:06
위 오른쪽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은 5개월 된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다. 위 오른쪽 사진은 성인의 명치 부근 초음파 사진이다. 한겨레 자료

위 오른쪽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은 5개월 된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다. 위 오른쪽 사진은 성인의 명치 부근 초음파 사진이다. 한겨레 자료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하게 떠오르던 날, 크리스의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아기들을 보냈다. 지난 몇 년 동안 점점 진해진 엄마의 아픔이 그 두 줄로 잠시 지워졌다. 크게 이상이 없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따뜻한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아기를 안을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머릿속에서 자꾸 의심과 걱정이 불끈불끈 솟아도 이번만은 다를 거라고 굳게 믿었다. 임신 5개월째에 접어들어서야, 그 암울함이 점차 옅어졌다.

그날 아침도 엄마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부인과 검진을 갔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를 지시했다. 정밀 초음파 검사라고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의사는 모든 임신부가 하는 일상적인 검사라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한 번 놀라서인지 심장은 자꾸만 빠르게 뛰었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초음파 담당 선생님의 심심한 농담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두툼한 손이 멈칫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굳은 표정과 갑자기 급해진 손길, 연신 젤을 짜는 것을 보고 엄마는 알았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음을.

24주 미숙아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의사는 심장에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며 심장초음파 검사를 따로 지시했다. 그길로 아기 엄마는 주저앉아 목메어 울었다. 심장초음파를 하고 소아심장과 의사를 만났다. 눈이 크고 머리카락이 새까만 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담을 진행했다. 크리스의 심장 왼쪽이 너무 작아 태어나도 수술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며, 자신이 그 병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처럼 미안해했다. 그리고 수술 횟수, 시기, 경과 그리고 크리스의 미래도 알려줬다. 엄마는 직시했다. 별도 보이지 않을 컴컴한 밤을 걷게 될 그들의 미래를.

여러 의사와 상의한 뒤, 엄마는 크리스를 보내주기로 했다. 세 번째 잃는 아기였다. 세상이 온통 칠흑으로 바뀌어 있었다. 크리스가 없어도 부모가 앞으로 걷게 될 어스름한 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의 왼쪽 심장은 힘차게 뛰어 피를 심장 밖으로 보내준다. 심장이 뿜은 피는 철도를 타고 나아가는 기차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지나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왼쪽 심장이 덜 자란 아기는 보통 세 번의 수술을 받아야 한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사망률이 100%에 가까웠다. 2000년에는 생존율이 40%, 현재는 50%까지 올라갔다. 돌이 되면 아기의 생존율은 무려 90%나 된다. 아주 적은 수의 아기가 이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이 병으로 죽는 아기는 전체 심장병 사망자의 3분의 1이나 된다. 그만큼 죽음과 가까운 질환이다. 만약 부모가 아기를 보내주기로 결정하면 의료진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워낙 죽을 확률이 높은 질환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다. 이 심장병에 걸린 아기의 생존율과 24주 미숙아의 생존율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24주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아기를 보내주고 싶냐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확률인 작은 좌심실 질환 아기의 죽음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1984년에야 장애아기 보호법 생겨

20세기 중반까지 대다수의 다운증후군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기관으로 보내졌다. 이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면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가족이 돌볼 수 없다고 여겼다. 시설로 보내진 아이들은 갇혀 지냈다. 1970년대에도 1980년대 초반에도 의사들은 생명을 살리는 수술을 권고하지 않고 다운증후군 아기들을 굶겨 죽게 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오늘날 의사가 저런 권고를 한다면 바로 의사면허 박탈에 감옥까지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1982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다운증후군 아기가 태어났다. 식도가 막혀 있었다. 지금이라면 수술하고 몇 주 뒤 퇴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다운증후군이라는 이유로 의사는 부모에게 아기의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기사화되자 다른 가족들이 아기를 입양하겠다고 나섰다. 부모와 의사 그리고 주고등법원은 아기를 굶겨 죽일 권리를 주장했다. 일주일 뒤 아기는 죽었다. 연방고등법원이 손쓸 시간조차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1984년 장애가 있어도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를 보류할 수 없는 법이 생겨났다.

우리 병원에 입원한 다운증후군 아기는 수도 없이 많다. 대부분의 아기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오지 않고 여느 아기처럼 모자 동반실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다 집으로 간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기가 다운증후군이 있다는 이유로 수술받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니 믿기 어렵다. 그 많은 다운증후군 아기는 집에 가지 못하고 시설에서 죽어 나갔다. 멀쩡히 살아 있는 아기를, 큰 장애도 없는 아기를 단체로 죽이고 그것을 묵과했다.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손이 떨린다.

20년 뒤 우리를 비난하게 되기를

그런데 그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 20년 뒤쯤 우리 후손이 현시대에 작은 좌심실을 갖고 태어난 아기를 보낸 부모, 이를 용인한 의사를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가깝고 먼 미래에는 이 심장 결함으로 아무도 죽지 않는 의료가 가능할까. 이 글을 쓰는 내가, 또 의사들의 부족함이 비난받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좌심실이 작아서 죽는 아기가 없기를. 또 그 아기의 죽음을 용인하다 못해 권고까지 하는 의사가 없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본다. 언젠가는 또 다른 크리스가 태어나 엄마 품에 안겨 세상과 싸우는 시대가 올 것이다. 크리스와 그의 가족이 걸어가야 할 깜깜한 밤을 빛나는 별로 인도할 그날을 기다린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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