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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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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약물중독, 왜 그걸 물어보지 않았을까

1킬로그램이 안 되는 초미숙아, 알고보니 인신매매 피해자 아기였네
등록 2023-04-07 22:33 수정 2023-04-13 08:01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병원 인큐베이터에 미숙아가 누워 있다. REUTERS 연합뉴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병원 인큐베이터에 미숙아가 누워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가 소방관이 되면 저런 모습일까.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린 구불거리는 수염, 하얀 반팔 셔츠와 헐렁한 멜빵바지가 꽤 잘 어울리는 응급 의료요원의 모습이 눈앞에 들어왔다. 커다랗고 두툼한 손에는 희멀건 아기 싸개가 들려 있었다. 멍하니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다 번뜩 깨달았다.

‘어머나 세상에, 저 아기가 내 환자구나!!’

약에 취해 있는데 아기가 나왔다?

이른 새벽 나에게 날아든 문자에는 ‘집에서 낳은 아기, 분만실 8’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때를 놓쳐 집에서 낳은 만삭아이겠거니 하고 어기적어기적 걷다 내가 마주한 건 해그리드 소방관과 그 큰 품에 안긴 1킬로그램이 채 안 되는 초미숙아였다. 서둘러 아기를 방사보온기에 안착시키고 생체 징후를 확인했다. 얼핏 봐서는 죽은 아기 같았다. 다행히 심장은 뛰었으나 호흡이 약했다. 아기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 숨을 불어넣었다. 1~2분쯤 지나자 다른 의료진도 도착했다. 아기의 상태는 곧 호전됐다. 이제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산모를 바라봤다. 10대 후반쯤 됐을까. 창백하기까지 한 새하얀 얼굴에 회갈색 눈동자, 그 위로 긴 갈색 머리가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방금 응급실에서 올라온 터라 코로나19 테스트도 거치지 않았고 마스크도 끼지 않았다. 감염이 염려돼 가까이서 문진하기가 꺼려졌다. 보통은 산모와 가족에게 마스크를 껴달라고 요청하는데, 분만 중이나 직후에는 그런 요청이 쉽지 않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겐 무리한 요청 같아서….

“산모님, 아기는 안정적입니다. 호흡만 도와주고 있어요. 곧 신생아 중환자실로 갈 거예요. 어떻게 낳았는지 알려주실래요?”

창백한 얼굴에 살짝 핏기가 돌았다. 아마도 아기가 괜찮다고 하자 안심한 것이리라.

“아, 정말 다행이에요. 아기를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코에는 마스크가, 머리에는 모자가 씌어 있어 아기의 얼굴은 반절밖에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얼굴은 핑크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임신한 줄 몰랐다고 했다. 새벽에 약에 취해 누워 있다 갑자기 아기가 나왔다고 답했다. ‘집에 있는 여자’가 911을 불렀다고 했다. 응급 상황을 자주 겪은 산부인과 의사 줄리앤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애달픈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선생님과 같이 당직 서면 별일을 다 겪는 것 같아요. 참, 아기 엄마가 두어 가지 약물을 하고 있었대요. 소변 약물검사가 진행 중이에요.”

줄리앤은 나에게 어깨동무하며 간단한 정보를 흘려주고는 저 멀리 사라졌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전화 걸어 물은 말

캘리포니아의 붉은 해는 탁한 스모그를 뚫고 무심히 떠올랐다. 업무 인계를 마치고 집에 도착해 시원한 샤워 줄기를 맞으며 병원에서 묻은 병원균을 씻어내고 있었다. 문득 뇌가 물줄기를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아! 이런! 아기 탯줄을 무엇으로 잘랐는지 물어보지 못했네!’

더러운 가위로 탯줄을 자르면 아기에게 파상풍의 위험이 있기에 늘 확인한다. 이번엔 갑자기 새벽에 들이닥친데다 워낙 작은 미숙아라 서둘러 중환자실로 가는 바람에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산모님, 좀 어떠신가요? 아까 분만실에서 만난 닥터 황입니다. 아기는 지금 안정적인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어요. 아기 탯줄 자른 사람이 누군지, 어떤 가위인지 확인이 필요해 전화드렸습니다.”

“911 대원이 가지고 온 가위로 직접 잘랐어요. 아기는 괜찮은 거죠?”

“네, 꽤 괜찮은 상태입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담당의가 바로 전화드릴 겁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주세요. 중환자실 방문도 가능하고요.”

짧은 대화로도 아기를 염려하는 엄마의 마음이 전해졌다. 엄마가 임신 중 약물중독이었으니 아기는 퇴원하더라도 엄마에게 갈 수 없다. 약물중독을 이겨내면 언젠가 아기를 데려갈 수 있으려나. 그런 염려가 샤워 물줄기에 녹아들었다.

도와줄 가족이나 친구 있는지 물어봤더라면…

다음날, 엄마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은 그녀가 어느 큰 인신매매 조직의 피해자라고 했다. 몸에 새겨진 문신은 인신매매 조직의 표식과 일치했다. 그 조직은 피해자를 억지로 약물에 중독시켜 마음도 묶어둔다고 했다. ‘집에 있던 여자’는 인신매매의 무리, 감시자였다. 약물중독자라길래 그저 약물을 하던 사람일 거라 추측했다. 자세히 묻지 않은 내가 한없이 미워졌다. 어찌하여 나는 10대 여자아이가 아기를 낳았을 때 ‘집에 있던 여자’가 왜 엄마가 아니었는지,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인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왜 그곳에 있었는지, 아기 아빠는 누구인지, 도와줄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지 물어봤더라면, 그녀는 마음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의료진은 관심을 기울였을까? 아니면 임신 중 약에 중독된 철없는 10대 아이로 치부해버렸을까?

유난히 핼쑥했던 얼굴이 잠시나마 옅은 분홍빛을 띠던 그 순간이, 눈동자에서 잠시나마 솟았던 희망이 떠올랐다. 전화기 너머 전달되던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만 맴돌았다. 나는 그날 졸지에 엄마를 잃어버리게 한, 그 어린 10대 엄마의 엄마를 찾아주지 못한, 그저 그런 무책임한 어른 중 한 명이 되고 말았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스텔라 황 교수는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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