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23일 일요일, 이제 막 점심을 먹었거나 먹는 중이던 중국인들의 시선은 온통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꽂혀 있었다. 정오쯤 중국 새 지도부가 베이징 인민대회당 기자회견장에 첫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장막 뒤에서 걸어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10월16~23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이하 제20차 당대회)의 ‘역사적인’ 결론을 압축하고 있기도 하다.
2013년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은 제20차 당대회가 열리기 훨씬 전부터 예견된 상황이라, 모두의 관심은 자연히 그의 뒤를 따라 나올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의 면면에 쏠렸다. 가장 큰 궁금증은 리커창 총리의 후임이자 권력 서열 2위로 과연 ‘누가’ 나올까였다. 그 자리에 어떤 인물이 등장하느냐에 따라 시진핑 3기의 통치 성격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지고 시진핑 주석을 선두로 나머지 6명의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이 차례로 나왔다. 그와 동시에 화면 속 기자석에서 ‘아’ 하고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밥과 반찬을 우물거리며 그들의 등장을 기다리던 나의 터질 듯한 볼에서도 ‘아’ 소리가 튀어나왔다. 두 눈도 튀어나올 듯했다.
중국에서 어영부영 산 지도 20여 년. 장쩌민의 ‘3개 대표 중요사상’ 시대와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 시대를 거쳐 지난 10년간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 시대를 살았지만 이번 당대회처럼 뒤통수를 맞은 듯 강렬한 충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설마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줄줄이 나왔다.
그중 압도적인 충격은 시진핑 바로 뒤에 나온 차기 총리 예정자이자 권력 서열 2위로 떠오른 리창 전 상하이시 당서기였다. 그가 시진핑의 최측근이자 심복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2022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전세계를 경악하게 한 상하이 봉쇄 사태의 책임자였기에, 정치국 상무위원 입성은 ‘언감생심’이라고 여겼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리창이 권력 서열 2인자로 등장했다.
리창의 뒤를 따라 나오는 정치국 상무위원 모두 역시 시진핑의 충실한 심복이었다. 덩샤오핑 이래 암묵적으로 유지되던 집단지도체제라는 제도적 묵계가 깨지고 다시 1인 집중 영도체제로 돌아갔다. 리창의 번질번질한 얼굴 위로 당대회 기간 내내 영혼 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던 리커창 총리와 폐막식날 시진핑의 지시로 중도에 강제 ‘퇴장당한’ 후진타오 전 주석의 굴욕적인 모습이 오버랩됐다.
제20차 당대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당장(당헌)을 개정해 △시진핑의 당내 핵심 지위와 시진핑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통일 영도를 확립하고 △향후 중국 공산당의 지도 방침으로 ‘시진핑 사상’을 확립해야 한다는 ‘두 개의 확립’을 명시해 시진핑의 무한 장기집권 가능성을 예고했다. 마오쩌둥 이후 중국에 두 번째 ‘붉은 태양’이 떠오른 것이다.
시진핑의 ‘역사적인’ 3연임은 숙청과 정풍운동 등을 통해 피바람을 일으키며 자신의 정적을 제거해간 마오쩌둥의 권력 장악 과정과 통치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1945년 4월23일 산시성 옌안의 양자링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7차 당대회에서 마오쩌둥은 권력투쟁의 최종 승리를 선언하며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라고 천명한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지도사상으로 확립한다는 내용을 새로운 당장에 명기하며 1인 통치 시대를 열었다.
마오쩌둥은 오랜 정적을 숙청과 정풍운동 등으로 차례차례 제거했고, 제7차 당대회에서는 가장 큰 정적이던 왕밍과 보구 등에게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할 것을 요구하며 마오쩌둥식 공포정치의 마지막 권력투쟁을 마무리했다. 당시 제7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정치국 위원과 중앙위원회는 마오쩌둥의 정치적 승리와 새로운 권력질서를 알리는 신호였다. 신임 정치국 위원은 모두 마오쩌둥의 심복이었다. 특히 권력 서열 3위로 호명됐지만 실제 2인자에 가까웠던 류사오치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당대회 개최 전인 1943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중국혁명을 실제적으로 결합한 산물’이라며 ‘마오쩌둥 사상’을 중국 공산당 내에 공식적으로 개념화·이론화한 류사오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마오를 찬양하고 숭배하는 데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마오의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하지만 그는 훗날 문화대혁명 와중에 자신이 직접 ‘사상’이라 이름 붙이며 숭배한 마오쩌둥의 눈 밖에 나서 비참하게 맞아 죽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마오와 함께 오랜 기간 혁명운동을 한 사람들은 마오가 ‘자신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믿지만, 자신에게 이견을 내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제거했다’고 술회했다. 마오의 무자비한 ‘독재 스타일’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마오를 일컬어 ‘당 황제 사상’을 가진 봉건 전제군주와 다를 바 없다고도 한다. ‘21세기 마오’를 자처하는 시진핑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제20차 당대회 직후 모습을 드러낸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의 면면도 시진핑에게 ‘이견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에게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마오에게 당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반부패 운동을 빌미로 제거됐다. 마오의 정적 왕밍 등이 제7차 당대회에서 공개 자아비판을 ‘당하며’ 정치 무대 뒤로 사라졌듯이, 시진핑은 후진타오를 공개적으로 ‘퇴장시키며’ 자신의 반대파에게 공개 경고장을 보냈다.
시진핑은 당대회 직후인 10월27일 신임 상무위원을 대동하고 ‘보란 듯이’ 마오가 최종 권력을 장악했던 옌안에 가서 ‘옌안 정신’을 강조하며 ‘새로운 분투 목표를 향해 이곳 옌안에서 출발하자!’고 선언했다. 마오 사상이 탄생한 요람이며 피바람 휘날리던 ‘옌안 정풍운동’을 통해 마오의 권력투쟁이 승리한 곳에서 시진핑은 ‘21세기 중국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정수’라고 온종일 선전하는 ‘시진핑 사상’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 절망이 교차감염되는 것 같다. 모두가 공황상태다. 이를 구제할 수 있는 건 없다.” 제20차 당대회가 끝난 직후 중국 친구들의 소셜 커뮤니티는 ‘멘붕’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불순한 내용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낌새가 보이면 게시물과 글이 바로 삭제되고 더 심하게는 계정이 영구적으로 취소되기에 모두 ‘머리를 굴려서’ 삭제되지 않을 정도의 어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우울과 절망감을 표현했다.
상하이에 사는 친구는 “나는 오늘 모든 희망을 버렸다”고 딱 한마디만 써서 올렸다. 현재 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은 제법 긴 글을 남겼다. “나는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떠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서둘러서 떠나라. 언제 그 마지막 문도 닫힐지 모른다.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10월23일 텔레비전 화면에서 다 보지 않았느냐!” 덩달아 나도 가만있으면 안 될 듯해 한마디 남겼다. 하지만 한 줄도 안 되는 내 게시글은 바로 삭제‘당했다’. ‘시진핑 주석 만세!’라고만 썼는데 그게 불온했는지 게시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모든 소셜 커뮤니티에서 ‘시진핑’이 들어가는 문장은 허용된 관방매체나 몇몇 인물 외에는 검열에서 원천봉쇄된다.
당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 베이징 시내의 한 다리 위에서 ‘반시진핑’ 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내걸고 시위하는 사진을 친구들에게 마구 ‘퍼다 날랐던’ 친구는 소셜네트워크 계정이 영구 취소되는 ‘보복’을 당했다. 나중에 그는 아내 명의로 다른 스마트폰을 마련해서 계정을 만든 뒤 연락했다. “나처럼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고, 절대로 정치적인 게시물이나 글을 올리지 마라. 후폭풍이 감당 안 되니까!” 하지만 나는 일명 ‘브리지 맨’이라 부르는 다리 위 펼침막 시위자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게시판에 ‘시진핑 주석 만세’ 같은 글도 허용되지 않는데 오죽 답답하면 직접 ‘오프라인’ 세상으로 뛰쳐나가 펼침막을 내걸 생각을 했을까.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보다 더는 참을 수 없는 절망이 앞섰기 때문이 아닐까.
‘그 주석에 그 상무위원들’ 체제는 당대회 이후 봉쇄와 격리로 일관하는 ‘제로코로나’ 정책을 완화할지도 모른다고 믿은 많은 사람의 실낱같은 희망도 봉쇄해버렸다. 더군다나 리창이 시진핑 제로코로나 정책의 가장 충실한 신봉자이자 실행자임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중국 정부는 제로코로나 정책을 완화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당대회를 전후해 전국에 재확산되던 코로나19는 당대회 직후 봇물 터지듯 확진자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상하이 봉쇄를 능가하는 대도시 격리와 봉쇄 정책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재연되고, 아이폰 생산 공장이 있는 정저우에서는 노동자 대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상하이와 우한, 광저우, 선전 등에서도 대규모 봉쇄와 격리가 주기적으로 이뤄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절정에 이르렀다.
서부 지역의 주요 도시인 란저우에서는 격리시설이 부족해 무방비 상태의 야외나 화장실도 격리 장소로 활용하는 영상이 올라온다. 봉쇄 80일이 넘어가는 신장 지역에서는 대규모 축사를 격리시설로 쓰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간적인 봉쇄와 격리 정책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으면 부모나 동거 가족이 타지로 출장 가서 돌아오면 해당 학생에게 일주일간 등교 금지와 자가격리 지시를 내리고, 격리 기간이 지나 등교할 때는 모든 가족 구성원의 유전자증폭(PCR) 검사와 행적 증명서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이렇게 하다가는 20년 이상이 지나도 중국에서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탄식이 쏟아지고 ‘중국에서 유일하게 코로나19 감염자가 없는 청정지역은 정부 주요 요인들이 사는 중난하이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아냥이 터져나오지만,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새 정부는 여전히 출구 없는 무한반복 제로코로나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제20차 당대회 잔치는 끝났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가득 메웠던 각지의 공산당 대표들은 마지막으로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한 뒤 각자 가방을 챙겨 들고 사라졌다. 그들은 알까. ‘누군가는 홀로 마지막까지 남아 그들 대신 잔칫상을 치우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리라’는 것을. 나는 알 것 같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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