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14일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상하이 봉쇄 중 한 여성이 식품을 사려고 바리케이드 틈을 들여다보고 있다. REUTERS
꼬박 15년을 살아왔던 도시다. 아이궈(가명)는 이 도시가 모든 방면에서 중국에서 가장 개방적이며, 그나마 ‘말이 통하고’ 생각이 ‘깨어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라고 믿었다. 나고 자란 고향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한 도시였고 별일 없는 한 평생 이곳에서 살아가리라고 생각했다. 중국 여러 도시를 유목민처럼 유랑하듯 살다가 2007년 이 도시에 발을 디딘 뒤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아이궈는 이 도시의 한 귀퉁이를 빌려서 작은 서점을 차렸다. 차츰 그 주변으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크고 작은 독립서점이 생겨났고 그 도시에서 제법 유명한 서점 골목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 없지만 서점을 폐업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서점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입은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꿰매주는 곳이자, 오가며 잠깐씩 들러서 정신을 충전하는 장소로 여겼다. 중국 사회에 병폐를 지닌 사람이 많이 살지만, 도시 한구석에 자신의 서점이 있다면 언젠가는 그 상처를 꿰매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궈의 이런 신앙 같은 믿음이 깊은 상처를 입었고 10년 이상 이를 악물고 지켜온 작은 서점도 폐업 선언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가 15년간 정착하며 의지하고 사랑했던 이 도시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하루에도 수십 차례 소셜미디어에 이 도시를 저주하고 욕하는 글을 올린다. 아이궈가 사는 이 도시의 이름은 상하이(上海)지만, 그는 자신에게 상해를 입힌 곳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동음이의어인 상하이(傷害)라고 부른다. 최근 들어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서 가장 핫한 유행어도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뜻으로 부르는 도시 ‘상하이’다.
2022년 3월 이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본격적으로 중국에 상륙했다. 동북지방의 지린성 성도인 창춘에서 심각하게 창궐하다가 차츰 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상하이가 2020년 2월 우한처럼 도시 자체가 완전 봉쇄되리라고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창춘을 한 달 가까이 봉쇄하고 다른 크고 작은 도시를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2~3주 봉쇄했을 때도 자신들의 도시는 ‘영원히’ 봉쇄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정부 당국도 ‘상하이 봉쇄는 절대 없다’고 확언했다. 상하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경제지표를 좌지우지하는 ‘국제적’ 위상을 지닌 거물급 도시이다. 상하이 봉쇄는 중국이 봉쇄된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기에, 상하이 주민뿐만 아니라 모든 중국인이 상하이 봉쇄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3월28일 상하이시 정부는 푸둥과 푸시 지역을 차례대로 일주일씩 전면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전날 ‘절대 봉쇄는 없다’고 한 공언은 하루아침에 ‘새빨간 거짓말’이 됐다. 이후 약속한 일주일이 지나도 봉쇄는 해제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으며 상하이 전면 봉쇄가 선언됐다. 약 2500만 명이 사는, 전세계 제조업과 자동차산업, 국제물류 중심 도시가 한순간에 강제로 숨을 멈췄다. 곳곳에서 ‘비정상적인’ 죽음이 잇따랐고 상하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상하이 봉쇄 뒤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는 매일 상하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믿기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올라오는 족족 실시간 검열로 순식간에 삭제된다. 2020년 우한 봉쇄 때의 언론·인터넷 통제를 능가하는 ‘역대급’ 검열과 여론 통제가 실시되고 있다. 다음은 상하이 봉쇄 뒤 중국 소셜미디어 등에서 많이 퍼져나간 내용을 ‘삭제되기 전’에 갈무리해둔 것이다.

코로나19로 봉쇄 중인 상하이 거리에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만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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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넓은 도로와 가장 발달한 지하철, 가장 빠른 자기부상열차를 가진 곳. 비행기가 가장 많이 이륙하고 착륙하는 곳. 인터넷 기반 시설이 가장 발달하고 배달기사들이 가장 바쁘게 달리던 곳, 그곳은 바로 과거 기억 속의 상하이다. 지금의 상하이는 느릿느릿 달리는 한 편의 낡고 오래된 기차, 구식 손목시계처럼 변했다. (…) 2022년,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던 이곳은 지금 수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지 못하는 걸 걱정하고, 매일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종일 (스마트폰 장보기 마트 앱을 통해) 식료품 쟁탈전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그마저도 물건이 없거나 배달 불가로 실패할 때가 많다. 주민들은 대부분 나흘이나 일주일 정도만 봉쇄한다는 당국의 말을 믿고 식료품을 넉넉하게 사두지 않았다가 이런 낭패를 당했다. (…) 도처에 편의점과 카페가 가득했고 코로나19 기간에도 디즈니랜드의 폭죽이 꺼지지 않았던 도시. 유행의 첨단을 주도하던, 그토록 우아하고 섬세하던 도시였지만 지금 상하이는 퇴락했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존엄마저 상실했다. (…) 팡창(方艙·경증과 무증상자, 밀접접촉자 등을 집단격리하는 임시시설)에 갇힌 사람들은 개인 프라이버시도 없고 거의 씻지도 못한 채 마치 죄수들처럼 그 어떤 존엄한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기억 속의 상하이는 희망의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이 상하이를 사랑했던 이유는 이 도시가 자신의 꿈을 이뤄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모든 사람의 희망과 꿈으로 가득 찼던 상하이는 지금 절망의 도시가 되었다. (…) 우리 기억 속 상하이는 2022년에 죽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상하이는 ‘비정성시’가 되었다. (방역요원들에게) 길거리에서 맞아 죽는 개들. 열이 40도까지 오른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한밤중에 울먹이며 이웃들의 문을 두드리면서 해열제를 구하러 다니는 엄마들. 고열에 시달리다가 겨우 주민위원회에 전화해 구조를 요청하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절망하는 어느 노인의 절규. 식료품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나는 상하이에 살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선진적인 의료자원과 설비가 있고 가장 우수한 의사와 약을 보유한 곳이다. 하지만 내 남편은 4월4일 새벽에 나와 5살 딸을 남겨두고 영원히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암환자였고, 죽기 전날 밤 응급상황이 발생했지만 열이 난다는 이유로 그 어떤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 지금은 2022년이고, 이곳은 상하이다.”
“우리는 푸둥 신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다. 사흘 전에 갑자기 관리사무소가 주민들에게 그날 밤 당장 짐을 싸서 집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우리 아파트를 격리시설로 징발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거절하자 관리사무소 쪽은 정부 당국자와 협상하겠다고 했지만, 이틀 뒤 한 무리의 경찰이 아파트 단지로 들이닥치더니 반항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지금 상하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2022년에 정말로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컵라면으로 며칠을 버티고, 배추 한 포기가 금보다 더 귀한 물건이 되고 (…) 이 모든 비극이 2022년 상하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기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모든 것이 다 ‘유언비어’라고 말할 뿐이다.”
“2022년 4월12일 오후 1시19분, 첸원슝(55살, 상하이 훙커우구 위생건강위원회센터 주임, 의사) 동지가 불행하게 사망. (사인은 자살)”
“봉쇄, 감시, 금족, 행동제한… 정부와 관료기구가 광적으로 우리 생활을 침해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미친 듯이 외친다. ‘너희는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이에 우리는 선언한다. 더는 참을 수 없다!”
“내가 모든 상하이 사람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많은 상하이 사람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고 여긴다. 지금 당장 ‘방역’이라는 미명하에 상하이 시민들의 권리와 존엄을 함부로 짓밟는 행위를 중지하라! 마치 나병 환자나 강제수용소 죄수를 대하는 것처럼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와 사람들을 자기 집에서 강제로 끌어내 이른바 ‘팡창’이라는 집중 격리시설로 끌고 가는 것을 중지하라! 모든 상하이 사람에게 자유로운 생활과 일할 권리, 충분히 먹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돌려달라!”
상하이 봉쇄 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2022년 상하이 사망자 명단’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널리 유포됐다. 봉쇄 이후 적절한 치료와 구호를 받지 못해서 죽거나 자살한, ‘비정상적’인 죽음을 기록한 문서다. 매일 새로운 사망자 명단과 사인이 올라왔고 100명 가까이 올라왔을 무렵 당국의 검열로 삭제됐다. 그런데 ‘사망자 명단’으로 발표된 첫 번째 사망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상하이’다. 다른 사망자들과 달리 ‘상하이’의 사인은 명시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사망한’ 상하이의 사인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모두 짐작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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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꿰매주고 싶어서 도시 한 귀퉁이에 작은 서점을 열었던 아이궈는 봉쇄가 풀리면 가장 먼저 이 도시를 뜨고 싶다고 했다. 될 수 있으면 상하이에서 가장 멀리, 가능하다면 중국 밖으로 멀리멀리 이민을 가고 싶다고. 1950~1960년대 대약진운동처럼 명령과 지시로 일관하며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는 비인간적인 방역정책과 단 한 치의 자유로운 목소리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여론 검열과 감시를 겪으면서 이 도시에 대한 희망이 모두 사라졌단다.
중국 지식 공유 플랫폼 즈후(知乎)의 조사를 보면, 상하이 봉쇄 직후인 3월28일부터 4월3일까지 상하이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는 ‘이민’이다. 구체적으로 ‘캐나다 이민 조건’과 ‘어느 나라로 가면 좋은가’ 등의 내용이 가장 많이 검색됐다고 한다.
아이궈는 며칠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런 내용을 올렸다. “정부의 칭링(淸零·제로 코로나) 정책은 우리의 권리와 존엄까지 제로로 만들겠다는 정책이다.” 그의 서점은 한 달 동안 닫혔고, 조만간 폐업할 예정이다. 더는 임차료 낼 돈이 없어서 어차피 망할 운명이라고 했다. 2022년 봄, 수많은 사람의 기억 속 상하이도 죽고 그의 서점도 곧 사망할 예정이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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