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봄이 왔다. 유달리 춥고 길었던 겨울이 끝난 것만 해도 신나는데, 코로나19 백신 접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곳 영국은 2020년 12월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지금은 하루에 50만 명씩 맞는다. 이제 지병이 없는 50대 인구집단까지 순서가 내려와서 나도 2월 말에 1차 접종을 마쳤다. 지금까지 2천만 명 넘게 1차 접종을 했고,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도 80만 명이 넘는다(2021년 3월1일 기준).
그 덕분에 상황은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다. 이제 신규 확진자는 하루 6천 명 수준이고, 하루 사망자도 200명대로 줄었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이 수치가 무슨 희소식이냐고 할 만한데,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하루에 감염자가 6만 명씩 증가했고 1200명씩 사망했다. 호되게 앓았다. 다행히 회복 중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여름이면 그동안 금지됐던 거의 모든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터널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영국 정부는 2021년 2월22일 조심스럽게 록다운(봉쇄) 완화 이행안을 발표했다. 첫 번째 조치는 등교수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3월8일부터 학생들이 모두 학교로 돌아간다. 그동안 학교에 가다 안 가다 참으로 어수선하게 지냈다. 안 간 날이 훨씬 더 많았다. 고등학생인 우리 딸만 해도 지난 1년 동안 학교에 간 날이 50일도 안 된다. 백신 접종을 시작했으니, 이제 학교 문 닫는 일은 없을 듯하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차근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교육부는 2020년 7월, 팬데믹으로 인한 교육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캐치업 기금’(Catch-up Fund) 총 10억파운드(약 1조5천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취약계층 학생들의 학습을 일대일로 지원하는 ‘내셔널 튜터링(전문지도) 프로그램’과 학교에서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캐치업 프리미엄’ 사업이 계획됐다. 그러나 11월 최악의 3차 유행이 닥쳐서 모든 수업이 다시 온라인으로 전환돼, 지금까지 제대로 ‘캐치업’을 할 수 없었다.
2021년 2월3일 총리는 ‘교육 회복 총괄감독관’(Education Recovery Commissioner)을 임명했다. 전직 교사이자 교육운동가인 케번 콜린스 경이 캐치업을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그동안 어려움을 겪은 학교가 회복되도록 돕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팬데믹으로 아이들의 배움은 “엄청난 쇼크”를 겪었고, 그 회복을 위해 “4~5년은 족히 걸릴 것”이며, 지속적인 추가 예산과 교육과정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파이낸셜타임스> 2021년 2월10일).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9월 새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에 우려가 크다. 여러 방안이 논의된다. 튜터링을 지속해서 실시하는 것, 방학을 줄이고 수업일수를 연장하는 것, 여름방학에 특별수업을 하는 것, 심지어 한 학년을 다시 다니는 것까지 고려했다. 튜터링과 함께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떠오르는 건, 학교가 여름방학에 ‘서머스쿨’을 운영하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은 9월에 중학교로 진학하는데, 중학교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여름방학에 잘 준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어울려 노는 것, 연극에 몰두하는 것…결손에 대한 보충을 누구에게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는 학교가 결정한다. 아이들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교사의 역할이 크다. 많은 사람이 학생들의 학력 저하뿐만 아니라 오랜 고립으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를 우려한다. 의사소통이나 팀워크 같은 ‘소프트 스킬’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그들이 누리지 못한 가장 중요한 학습은 ‘친구들과 같이 노는 일’이었다. 콜린스 경도 “캐치업이 단지 교과 보충수업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포괄적 필요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에겐 “어울려 노는 것, 스포츠 경기나 음악, 연극에 몰두하는 것” 같은 활동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활동이야말로 아이들이 발달과정에서 놓쳐버린 가장 결정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2020년 2월8일)
이제 ‘회복’에 대해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회복’이란 말이 마치 전쟁이 끝나(가)고 잿더미에서 재건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한국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교육부의 ‘2021년 업무계획’을 보니 첫 번째 핵심 추진 과제가 ‘학교의 일상 회복’이다. “준비된 방역으로 학생들이 보다 많은 시간을 등교할 수 있게 지원하고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발생한 학습·정서적 결손을 보완할 수 있는 안전망으로 교육의 회복탄력성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안도 많다. 굵은 글씨로 강조된 것만 세어봐도 수십 가지다.
나열하자면, 탄력적 학사 운영으로 대상별 등교수업일 확대, 방역물품 비축과 관계 기관 핫라인 유지, 24시간 대응상황반 가동, 과밀학급 집중지원, 기초학력 협력수업 실시, 기초학력 집중지원 교사 2천 명 지원, ‘국가기초학력지원센터’ 신설, ‘기초학력 보장법’ 제정 추진,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 구축, ‘두드림학교’(5천 개교), 학습종합클리닉센터(140곳), 기초학력 부족 학생을 위한 학습지도 가이드라인 개발 보급, EBS 교재 무상지원, 인공지능(AI) 활용 학습시스템 확대 개발 보급, 코로나19 영향 추적 종단연구, 심리전문가(145명) 학교 방문으로 정서적 위기 학생 관리 지원, 상담교사와 학생 간 화상상담 시범운영, 초등학교 전문상담교사 확대 배치, 교직원을 위한 심리회복 지원…. 아직 절반도 못 썼는데 지면 관계상 여기까지.
분명 한국에서는 1년 동안 이 모든 일을 다 해낼 거다. 그 역량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약간 숨이 차면서 기우가 앞선다. 나는 이 회복 프로젝트가 숨 고르며 찬찬히 이뤄지면 좋겠다. 교육부가 세세한 계획을 짜서 내려보내지 말고, 학생들을 가장 잘 아는 교사와 학교가 아이들 곁에서 좋은 방안을 만들고 교육부는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함께 놀 시간을 주면 좋겠다.
욕심을 더 내자면, 교육에서 ‘회복’이 팬데믹 이전 ‘학교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참에 우리 아이들이, 우리 교육이 더 건강해지는 회복이라면 좋겠다. 그런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거다. 어쨌든 봄이 왔다.
이스트본(영국)=이향규 <후아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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