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 계획은 ‘아이들과 함께 사는 지금을 매일 즐기는 것’이다. 그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올해 큰딸이 대학에 간다. 9월이 되면 집에 없다. 내년에는 작은아이도 떠난다. 그러면 우리가 모두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오늘같이 흔한 날이,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고 기다리는 특별한 날이 될 거다.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은 엄마가 된 것이다. 그건 살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는 드문 일 중 하나이다. 내 선택이 아니었다. 그건 막내가 알려줬다. 린아는 어릴 적부터 엉뚱한 말로 큰 웃음을 선사하곤 했다. 이런 식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이 처음 나왔을 때다. 내가 읽고 있는 책 표지를 슬쩍 보더니 방을 나가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애니팡.” 둘을 연결하는 데 2초쯤 걸렸다. (나는 그때 거의 중독 수준으로 애니팡 게임을 했다.) 그런 린아가 진지하게 해준 얘기다.
오래전 어느 날 내가 말했다. “엄마가 어쩌다가 너희를 만나게 됐는지, 정말 하늘의 선물 같다.” 그 말을 받았다. “엄마, 나 다 생각나. 하늘에서 우리가 부모를 고르고 있었거든. (그러면서 검지를 좌우로 움직이며 태블릿피시 스크린을 넘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언니랑 이 집을 골랐어. 누가 먼저 갈까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언니가 이겨서 먼저 태어난 거야.” 마치 자기가 경험한 것을 회상하듯이 거짓 하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왜 우리 집이었는데?” “그냥… 괜찮은 사람들 같았어.” 나는 이 말을 오래 새겼고, 믿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양육은 어차피 부모가 큰 책임과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즐거움에 관한 한 되도록 평등하려고 했다. 아이들에게 맞추느라고 어른의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어른한테 맞추느라 아이들을 지루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 식구는 아이들이 어릴 적에 종종 “유튜브 시간”을 가졌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식구들의 관심과 취향을 알 수 있는 좋은 오락이었다.
하다보니 규칙이 생겼다. 가족이 모두 모여 앉는다. 좋아하는 동영상을 돌아가면서 보여준다. 한 사람당 최대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20분이 넘을 때는 다음 돌아오는 차례에 보거나, 다른 사람 시간을 빌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룰은 다른 사람이 고른 것을 평가하지 않고 재미있게 봐주기다. 저녁 먹고 시작했는데 야식으로 과자 봉지를 뜯고 라면을 끓여 먹은 날이 많았다. 밤늦게까지 그렇게 놀면서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고, 우리는 아이들이 무엇에 웃는지를 알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 아버지와 이렇게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내리사랑이라고 아이들과는 자주 기꺼이 이렇게 놀면서 부모님과는 딱 한 번 그리했다. 그러고서 그제야 그분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았다.)
이 전통은 팬데믹 상황에서 다시 빛을 발했다. 코로나19로 등교수업이 중단되고 식구들이 모두 집에 갇혀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날이 계속되자 우리는 저녁을 먹고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보기로 했다. 식구 네 명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그날 볼 영화를 골랐다.
그렇게 2020년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200편의 영화를 봤다. 취향이 다 달랐다. 나 혼자는 절대로 보지 않았을 장르와 감독의 작품을 접한 것은, 영화와 시각예술에 관심이 많은 딸들의 기여가 컸다. 아이들이 고른 영화를 보면서, 이제 다 자란 젊은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흘러간 시간이 아쉽기도 했다. 아쉽다고 잡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조금씩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일단 아이들이 가르쳐준 이 방법을 실천한다.
② 반발짝 뒤에 선다극장이 문을 열었을 때 이야기니 벌써 2년 전쯤 일이다. 런던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 비싼 입장료가 아까워서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싶었다. 오래된 극장의 샹들리에와 창, 원형기둥과 계단을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맘에 들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주면 보람 있겠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온 휴대전화는 촬영 버튼을 누를 때마다 “찰칵” 소리를 냈다. 린아는 사람들이 흘끗대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나보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손가락으로 휙휙 돌려 보더니 “여기는 조명도 그렇고 어차피 잘 안 나와. 그냥 찍지 마”라고 말했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두세 장을 더 찍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마, 진짜 하지 마. 사진은 내가 찍어달라고 할 때만 찍어.” 알았다고 말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마음이 상했다. ‘너 좋으라고 한 일인데 싫다 이거지…. 이제 어디 찍어주나 봐라….’ 옹졸해진 마음이 입을 뾰족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린아가 내게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했다. 이제 안 입는 옷을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판다며 그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올려야 한단다. 태도는 한결 공손했다. 기억력이 나쁜 건지 모든 엄마가 그런 건지 나는 속도 없이 말했다. “물론이지!” 린아는 정확한 ‘작업 지시’를 했다. 목 아래부터 무릎까지 측면에서 찍으라든지, 사진 초점을 목걸이에 맞추라든지. 패턴을 클로즈업하라든지. 나는 시키는 대로 했고, 괜히 그 선을 넘어서 과하게 작품 사진을 찍으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 요청대로 해주니 린아는 고맙다고 했고 몇몇 사진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사랑한다고까지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다 쏟아졌다.
이날 배운 값진 교훈은 이거다. ‘나는 앞으로 부탁하기 전에 미리 해주(고 상처받)지 않으리라. 부탁하면 (더도 말고) 그것을 하리라.’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하고 뭘 보여주고 말을 거는 날이 많아졌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저 힘 빼고 반발짝만 물러서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앞으로 반발짝이 아니라 한 발짝 물러나 있어야 할 때가 올 거다.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물러나 있으면 어른이 된 그들이 어느덧 내 옆에 친구로 서 있지 않을까 하는…. 내가 엄마에게 해주지 못했던 그것을, 나는 감히 딸들에게 바라고 있다.
이스트본(영국)=이향규 <후아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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