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형 슈퍼마켓 모리슨스가 교사들에게 할인 행사를 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간 것에 감사하며, 초·중등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보조교사·행정인력·식당조리원·청소부 등 모두에게 2021년 1월까지 전국 매장에서 쇼핑액의 10%를 할인해준다. 흐뭇했다. 더욱이 교사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이를 포함한 것도 고마웠다. 2020년 들어 학교의 중요성과 교사들의 노고를 체감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3월 도시 봉쇄로 등교수업이 중단되자, 많은 부모가 자녀와 같이 집에 갇혔다. 처음엔 홈스쿨링 등 야심 찬 계획을 세운 집이 많았으나, 그게 한숨과 좌절로 변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실감했다. 내 아이 건사하는 일이 이리 힘든데 그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돌보는 교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침부터 오후까지 생활하는 학교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얼마나 필요한지.
사람은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보통 시간의 규칙을 따른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아이들의 시간은 주로 학교 일정에 따라 흘렀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밥 먹고, 학교에 가서 사람 만나고,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받고, 점심 먹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극히 평범한 일상, 그것이 깨지자 규율이 사라졌다. 아무 때나 자고 일어나고, 아무거나 먹고 (혹은 먹지 못하고) 종일 오락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안타깝게도 보호자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이일수록 그런 일이 심했다.
영국이 지금 2차 봉쇄 상황에서도 등교수업을 강행하는 건 이들의 안녕과 교육을 더는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는 1차 봉쇄 때도 문을 열고 필수노동자 자녀를 맡았다. 의료진이나 배달노동자처럼, 교사도 이 시기에 꼭 필요한 필수노동자다.
교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업무의 내용적인 변화를 가장 많이 겪은 직업” 중 하나다.(<코로나19와 교육>, 경기도교육연구원) 모든 교사가 본인의 디지털 역량과 무관하게, 준비할 시간도 별로 없이 온라인수업을 했다.
나도 교사가 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뒤 교직을 선택했으면, 지금쯤 중·고등학교에서 30년차 교사로 일했을 거다. 그랬다면 참 힘들었겠다. 상상이 된다. ‘온라인수업을 해야 하는데 디지털 역량이 저열하다. 겨우 자료를 만들었는데 마음에 안 든다.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학부모가 본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다. 그들은 교육방송(EBS)과 인터넷 강의에 익숙해서 원격수업의 기대치가 높을 텐데, 내 수업을 보고 욕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찌어찌 온라인수업을 시작한다. 다시 번뇌에 휩싸인다. 내가 지금 독백을 하고 있나? 이 아이들은 나와 함께 있긴 한 걸까? 걱정과 자책이 뒤엉킨다.’
상상 속 나는 이 상황을 ‘개인’이 맞닥뜨린 시련처럼 생각하고 교사로서 자존심이 다칠까봐 걱정한다. 그런데 현실 속 교사들은 좀 달랐던 것 같다. 많은 이가 난관을 ‘함께’ 헤쳐나갔다.
서울시교육청의 아는 장학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개학이 연기됐을 때만 해도 교육계는 무겁고 무기력하고 답답했다. 4월부터 원격수업을 한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곧 속도전이 시작됐다. (한국의 기운이 느껴진다!) 교육지원청은 온라인 커뮤니티로 원격수업지원단을 구성했고, 교장은 교내 원격교육 인프라를 정비했고, 교사들은 공부를 시작했다. 학년별 교과별로 디지털 역량이 뛰어난 젊은 교사가 나이 많은 경력 교사를 가르치는 ‘역멘토링’이 벌어졌다. 플랫폼 운영, 자료 제작, 실시간 쌍방향 수업 팁뿐만 아니라 패들렛·라이브워크시트 같은 프로그램을 같이 배웠다. (협력은 사실이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조사에서도 교사의 75%가 지금이 ‘코로나19 이전보다 학년(교과) 내 협력이 잘 이뤄진다’고 답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이다. 처음엔 원격수업용 콘텐츠를 만들어 탑재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목표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수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원격수업에서도 학생의 배움이 일어날 수 있을지 등을 묻고 고민하는 교사가 많아졌다. 온라인수업이 장기화하면서 확연히 드러난 학력 격차, 특히 “중간층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복합 요인으로 학습하지 않는 학생들의 심각한 학습 결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고민이 깊다.
2020년 초만 해도 많은 이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학교가 축소되고 온라인학습이 대세가 될 거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이 완전히 없어지지도, 없어져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에서는 수업뿐만 아니라 돌봄, 보호, 규율, 사회화, 소통, 친교, 급식 등 여러 일이 일어난다. 그런 공간을 없앨 수는 없다. 단 변화는 불가피할 거다.
지금처럼 온라인수업과 대면수업의 병행, 즉 블렌디드(Blended) 수업이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각 학교에는 교육청에서 만든 블렌디드 수업 자료가 이미 전달됐다. 자료 제작에 참여한 교사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지금 서울교육> 2020년 가을호) 한 선생님은 교사들에게, 단순히 어떤 플랫폼을 사용하고 플랫폼의 숨겨진 기능은 무엇인가 같은 기술 분야를 넘어 ‘어떻게 학생들의 성장을 격려하고 지지하고 이끌어줄 것인가’에 관심 갖고 활용해달라고 당부했다. 다른 선생님은 이 작업이 고군분투했던 1학기를 성찰하고 정리하는 좋은 기회였다며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학생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교사들에게 이런 질문과 고민을 하게 했다면, 그건 재앙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학교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란 질문은, 그 고민을 누가, 얼마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시작은 좋다. 교사들이 ‘함께’ 고민하고, 직급·나이와 무관하게 서로 배우고, 교육에 대해 잊고 있던 질문을 하는 경험은, 좋은 학교를 만드는 동력이 된다. 바람이 있다면, 교사들의 이 힘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른 중요한 일, 특히 ‘돌봄’을 담당하는 교사들과의 협력과 연대로도 발전할 수 있다면, 그래서 ‘모든’ 학생의 배움과 성장을 함께 도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사족: 한국의 대형마트도 교사 할인 행사를 한번 해보시라.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한다면,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내고 안심하는 학부모들은 소비자가 되어 그 감사함에 연대할 거다.
이스트본(영국)=이향규 <후아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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