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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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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돌봄사회’ 시작되길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영국,
오랜 병가를 낸 ‘보조교사’ 남편의 해고 과정을 지켜보며
등록 2021-02-14 00:39 수정 2021-02-18 08:45
2021년 1월 영국의 한 초등준비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온라인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

2021년 1월 영국의 한 초등준비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온라인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

남편은 초등학교 보조교사가 됐다. 한국에서는 대학교수였으니 새로운 일자리가 섭섭할 수도 있는데, 기뻐했다. 아무리 자기 나라라지만 20여 년 만에 돌아온 자리에선 이민자나 다름없었고, 쉰을 훌쩍 넘긴 나이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학교에서 일하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었다. 2019년 11월 첫 출근을 했다. 그는 2학년을 맡았다. 만 6살, 한국으로 치면 아직 유치원생이다. (여긴 5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수업시간에는 교실에서 집중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학교가 끝나면 방과후 클럽에 남은 학생을 돌보는 일을 했다. 꼬맹이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는 매일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오래가지 못했다. 여러 요인이 겹쳤다. 대부분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2020년 3월, 천식이 있는 그가 기침하자 코로나19로 잔뜩 긴장한 교장이 조퇴를 권했다. 병가를 쓰는 상황에서 영국 전역이 록다운(봉쇄)됐다. 학교는 돌봄이 필요한 학생을 위해 문을 열었지만 건강한 스태프를 중심으로 순환근무를 했다. 그는 3월 이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9년 11월 첫 출근, 2020년 3월 마지막 근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이걸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하긴 했다. 온종일 계단을 오르내리고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것이 힘에 부쳤다. 해야 할 업무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났다. 교장은 업무평가를 하면서 이 점을 지적하고 메모장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목에 걸 수 있는 작은 수첩과 펜을 사서 남편에게 주었다. 출근길에 그걸 목에 걸면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이 슬퍼졌다. 파킨슨병은, 전에는 문제없이 할 수 있던 일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자꾸만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채용 인터뷰 때 남편은 자신의 병을 말했다. 그때만 해도 학교도 그도 업무 수행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병가가 장기화하자 교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업무 수행이 어려운 때 조언해주는 전문기관(Occupational Health Service) 의견을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학교 쪽 의뢰로 그 절차가 진행됐다.

7월에 ‘업무 건강 상담사’와 첫 상담을 했다. 일주일쯤 뒤에 리포트를 읽을 수 있었다. “평등법이 적용되는 사례인가?” 보고서 상단에 있는 이 질문에 상담사는 “그렇다. 평등법은 장기간에 걸친 질병에도 적용되며 이 경우 그에 해당한다”고 적었다. 영국의 ‘평등법’(Equality Act 2010)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나이, 성별, 장애, 인종, 임신과 출산, 종교 또는 신념, 혼인 또는 동성결혼, 성전환, 성적 지향 등을 차별로부터 ‘보호받는 특징’(Protected Characteristics)으로 규정한다. 이런 특징을 이유로 일터, 교육, 보건, 교통, 기타 모든 서비스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법이 보호한다. 이 일은 평등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졌을 것이다.

상담사는 남편이 말한 일터에서의 어려움을 상세히 기록하고 마지막에 이런 ‘제안’을 했다. 가능하면 건물 아래층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할 것, 행정 업무를 감면할 것 등등. 덧붙여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의사의 추가 면담이 필요하다고 적고 이 사례를 ‘업무건강의’(Occupational Health Physician)에게 이관했다. 며칠 뒤 의사와 통화했다. 의사는 한 시간 넘게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학교 쪽에 “업무 스트레스가 그의 건강을 악화시킬 것이 우려된다”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고 통지 할 줄 알았는데…

9월에 학교 인사담당관이 세 차례 집을 찾았다. 처음은 초등학교 교장과 같이 왔다. 해고 통지를 할 줄 알았는데, 학교는 근무시간과 업무 공간 조정 등 편의 제공을 제안했다.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우리였다. 두 번째는 인사담당관 혼자 와서 앞으로의 절차를 의논했다. 세 번째는 서명할 서류를 가지고 방문했다. 이번에는 이 학교의 전체 총괄교장이 함께 왔다. (이 학교는 초·중·고등학교 과정이 다 있는 제법 큰 학교다.) 그는 일이 이렇게 돼 유감이라며 급여는 11월까지 지급될 거라고 했다. 남편은 “내 사례 때문에 앞으로 장애나 질병이 있는 직원 고용을 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들은 그럴 리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에서 그를 존중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그들이 장애를 가진 계약직 보조교사를 ‘해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학교는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미래에 노동자가 될 학생이 일터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학교는 학생이 돌봄을 받는 곳일 뿐만 아니라, 돌봄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12년 동안 학교에서 그것을 보고 배우면, 어른이 된 그들은 돌봄이 당연한 세상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초등 돌봄교실을 둘러싼 갈등을 기사로 보면서, 나는 자꾸 ‘교육’과 ‘돌봄’을 구분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교육은 학교 몫이고 돌봄은 지자체 몫이라는 것도,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므로 돌봄까지 떠안을 수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교육’이 교과 수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돌봄’이 방과후에 아이들을 맡아 먹이고 보살피는 일이 아닌 이상, 이 둘은 애초에 구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 약자를 보호하는 일,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일, 학교에 있는 어른들로부터 그것을 보고 배우는 일, 그것은 교육인가 돌봄인가?

돌봄과 교육은 그렇게 다른가

지난 1년간,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수많은 담론과 주장이 생산됐다. 사회를 ‘돌봄’ 중심으로 재편하지 않으면 인류는 절멸할 것이라는 예측은 차고 넘친다. 한국 학교는 학생을 잘 먹이고(유기농 무상급식) 방과후에도 맡아주는 일(초등 돌봄교실)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한다. 이제 그것을 넘어 돌봄을 더 큰 틀에서 보고, 돌봄을 중심으로 학교를, 교육을, 사회를 재편하는 것을 고민하면 좋겠다. 학교는 목하 인류의 과제인 ‘돌봄 중심 재편’을 가장 먼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회 제도이다. 그것을 멋있게 시작해보자.

이스트본(영국)=이향규 <후아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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