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15일 오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조합원들과 특성화고 재학생들이 정부서울청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가톨릭교회에는 ‘고백 기도’가 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라고 말하고 “제 탓이오”라며 가슴을 친다. 라틴어 기도문을 번역한 것인데 나라마다 표현이 조금 다르다. 영어로는 “생각과 말과 내가 한 일과 하지 않은 일(in what I have done and in what I have failed to do)”을 반성한다.
고백한다. 나는 그동안 교육 문제를 다루면서도 직업계 고등학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잘못을 일깨워준 이는 허태준이라는 젊은 작가다. 그는 마이스터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생으로 공장생활을 시작해서 졸업 뒤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를 마칠 때까지 4년 가까이 노동자였다. 그가 쓴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호밀밭, 2020)를 읽으면서 내내 부끄러웠다.
‘수능은 좋은 시험이어야 한다’(제1342호)라는 글에서 나는 이런 입시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겪는 청소년기의 통과의례 혹은 성년식 같다고 말했다. 국가와 사회가 그날의 수험생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에 대해서도 적었다. 쓰면서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대부분’이라는 게으른 표현을 쓴 것은 내가 누락시킨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하 인용글은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브런치 페이지(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거리 가득한 축제 분위기에서 자꾸만 우리를 소외시키는 것 같았다. 입시를 준비하지 않았던 열아홉의 나는 수고하지 않았던 걸까? …열아홉 할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공장에서 일하던 나에게… 어쩌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어른이 되어야 했던 누군가에게도 이 거리가 조금은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소외받지 않는 세상은 없는 건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혼자 생각하며, 나는 불빛이 잦아드는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내가 잊은 사람이 몇 명인지 계산해봤다. 2020년 고3 학생 수는 약 44만 명이었다(‘2020 교육통계연감’). 이 중 약 34만7천 명이 수능 원서를 냈다(‘2021학년도 수능 응시원서 접수결과’, 한국교육평가원, 2020년 9월21일). 2021학년도 수능 결시율이 13%나 되었으니 실제 시험 본 인원은 더 적다. 이래저래 따져보니 그날 열아홉 삶의 ‘수고’를 제대로 축하받지 못한 젊은이는 13만 명이 넘는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하는 조언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말하는 사람은 잘 모른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어도, ‘팩트’를 말하는 것이어도, 듣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잘해야 공허한 말이고, 잘못하면 모욕이 된다. 어느 유명 인터넷 강사가 “수학 7등급이면 용접 배워서 호주 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마 그건 실수였을 것이다. 학창 시절 우등생으로 열심히 공부했다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갔다면… ‘입시’ 이외의 노력과 성취를 마주한 적 없는 인생이라면 그건 분명 실수였을 것이다. …화가 나기보다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용접을 하거나 기계를 고치고 있을 누군가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구나. 아직도 그들의 전문성과 진지함이 무시되고 있구나.
나도 직업계 고등학생들에게 “전기나 배관, 자동차정비처럼 기술이 있으면 해외 취업을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20년 전 영국 런던에서 살 때, 집주인은 전기기술자였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가난했다. 그때 나는 한국에서 미용이나 도배 기술을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집 앞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가서 간증이라도 하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해 해외에 나갈 생각을 해보라고. 진심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영국에서 중학교 졸업 뒤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를 본다. 부러운 마음에, 우리 사회의 직업교육 문제를 함께 해결해보려는 대신, ‘망명’을 권하려 했다. 학생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그때 그 말을 뱉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 등 직업계 고등학교 졸업생은 약 9만 명이다. 2020년 이 중 겨우 2만5천 명이 취업했다(‘직업계고 졸업자 취업통계’, 교육부, 2020년 11월27일).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2021년 졸업생 상황은 훨씬 열악하다. 코로나19로 실습을 제대로 못했고, 자격증 시험도 일정이 미뤄지거나 취소됐다. 곧 졸업인데 일자리 자체가 없다. 언론은 청년실업을 다루면서 대졸자만 걱정한다. 결국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은 2020년 11월부터 매주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특성화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온 까닭 “반에서 취업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매일노동뉴스>, 2020년 12월28일).
9만 명은 적은 수일까? 이른바 ‘스카이 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모집 인원을 합하면 약 1만 명에 불과하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인서울’) 전체 모집 정원은 7만2천 명이고, 정원 외 입학자를 포함해도 8만5천 명 정도다. 정부가 ‘정시 확대’를 요구한 서울 16개 대학의 정시 모집 인원은 늘어도 2만 명 수준이다. 그런데도 교육 관련 뉴스는 온통 이 얘기를 한다. 이러다간 이들을 제외한 수십만명 학생은 매년 대책 없이 어른이 되고 아무 준비 없이 삶의 현장에 던져질 것이다. 대학생이 된 친구에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이 9만 명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안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해결될 것이다. 그렇게 해야 모두가 자유로워질 거다.
이스트본(영국)=이향규 <후아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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