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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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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더 오른쪽으로

일본 우익 민간단체 ‘일본회의’에 끌려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개헌 움직임
등록 2017-05-25 17:37 수정 2020-05-03 04:28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20년까지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AF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20년까지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AFP 연합뉴스

5월3일은 일본국헌법이 시행된 지 70년이 되는 해였다. 이날 도쿄에선 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는 ‘개헌파’의 집회가 있었다. 집회의 핵심은 아베 신조 총리가 보내온 축하 영상이었다. 단상의 대형 스크린 너머로 히노마루(일장기)가 펄럭이고 총리의 모습이 영상에 나왔다.

“도쿄올림픽이 개최되는 2020년이 새로운 헌법이 시행되는 해가 되기를 강하게 기원합니다. 헌법 개정을 향해 함께 노력합시다.”

군비를 포기하고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헌법 제9조를 2020년에 개정하겠다는 호소였다. 총리 자리에 있는 사람이 헌법 개정 시기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를 입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집회장은 기쁨으로 들끓었다. 1천 명 넘는 참가자가 성대하게 박수를 보냈다. “좋아!” “훌륭하군!”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열기와 흥분이 대회장을 지배했다

난 차가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개헌’이라는 중대사를 국민 전체가 아니라, 일개 민간단체의 집회에서 그것도 동영상 메시지라는 형식으로 총리가 발표한 것이다. 국민을 완전히 업신여기는 행태였다.

이 집회의 주최자는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우익계 조직 ‘일본회의’의 계열 단체였다. 일본회의는 신사 관계자 등 종교 우파, 보수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조직한 것이다. 지금까지 헌법 개정뿐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애국교육을 실시할 것과 군비 증강 등을 주장해왔다. 이른바 ‘전전(戰前)의 일본’(대일본제국) 국가관에 물든 사람들의 모임이다. 발족 직후인 1990년대 후반엔 열광적이고 광신적인 우익 조직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아베 내각) 각료 대부분이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멤버로 채워지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래서 아베 내각의 별명은 ‘일본회의 내각’이다. 오른쪽으로, 그리고 더 오른쪽으로. 자민당 정권은 일본회의의 주장에 끌려가듯이 내셔널리즘을 비대화해갔다.

물론 그것은 자민당만의 책임은 아니다. 일본 사회에도 전쟁의 아픔이나 피해, 가해의 경험을 잊고 이웃 나라를 적시하는 분위기가 침투하고 있다. 총리의 개헌 발언도 그런 여론을 등에 업은 것으로 보인다. 즉, 총리는 ‘지금은 뭘 해도 용납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내 취재에 이렇게 답했다. “예전의 자민당이 그립다. 돈 문제 등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우익적이고 배타적이진 않았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도 용서하기 힘든 일이지만,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우익 정치가는 그보다 더 곤란한 존재다.

5월3일은 (1948년 일본 헌법이 처음 시행된) ‘헌법기념일’이지만, 일본 언론인에게는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 날이다. 30년 전 이날 한신지국(고베현)이 (우익 단체의) 습격을 당했다. 젊은 기자 한 명이 산탄총에 맞아 숨졌다.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반일’ 은 용서할 수 없다”는 성명문이 현장에 남아 있었다. 그날 일본 기자들은 (각자의) 입장을 뛰어넘어 분노를 표명했다. 권력에 의한 언론 탄압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맹세였다.

그러나 지금 일부 언론은 권력에 아양을 부리며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을 ‘반일’이라고 비판한다. 올해도 사옥 앞에는 히노마루를 손에 든 ‘넷우익’이 모여 30년 전 사건을 ‘의거’라며 찬양했다. 언론은 폭력을 찬미하는 이들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일본이 헌법을 통해 ‘항구 평화’를 맹세한 지 70년을 맞는다. 또 기자가 총에 맞아 숨진 지 30년이 지났다. 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없고, 더는 (일본 사회가) 파괴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 총리는 “일본을 되돌려놓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아니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바라지 않는 우리는 외치고 싶다. ‘총리로부터 일본을 되돌려놓고 싶다!” 5월3일에 해보는 맹세다.

야스다 고이치 일본 독립언론인 *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의 ‘일본 사회’가 3주에 한 번씩 독자를 찾아갑니다. 야스다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일본 사회의 다양한 움직임을 한국 사회에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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