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30개월 딸이 화제의 <font color="#C21A1A">‘트럼프 비디오’</font>(여성 비하 녹음파일)에 대해 물었다. 많은 부모가 흔히 그렇듯, 나도 ‘설마 알아듣겠느냐’는 생각으로 아이 앞에서 함부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는 듣고 있었다. 나는 대통령이 되려고 나온 사람이 나쁜 말을 해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가 눈물을 터뜨리는 바람에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사회적 태도 발달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로서 ‘이게 정말 괜찮은 일일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2차 TV 대선 토론에서 ‘트럼프 효과’라는 신조어를 소개하며 학교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정말 도널드 트럼프의 언행을 보고 인종, 종교, 성별, 장애에 따라 타인을 비하하는 일이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구체적인 질문에 답하려면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기존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답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문화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인다. 그 덕분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 걸맞은 성인으로 성장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규범을 익히는 것도 포함된다. 특정 사회집단의 지위와 가치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진 노골적인 시각, 또 덜 노골적인 시각도 모두 흡수하게 됨을 의미한다.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유치원 갈 나이가 되면 이미 어른들의 인종에 대한 태도를 습득한 상태다. 특정 집단을 높은 지위, 긍정적 이미지와 연결짓는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특정 집단의 사회적 지위를 습득하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한 실험실에서 아이들은 단 몇 분 만에 더 부유한 집단을 골라냈고 부유한 사람들이 더 좋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성별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아주 미묘한 신호도 날카롭게 포착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아이들을 성차별 없이 똑같이 대하되, 남녀 학생의 그림을 따로 걸게 하는 등 성별을 단순히 구분짓는 행동만 해도 몇 주 안에 아이들의 젠더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부정적 정보를 더 강렬하게 받아들인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내가 참여한 공동 연구에서 아이들은 타인의 긍정적 행동보다 반사회적 행동의 세부 사항을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처럼 어떤 집단 전체를 위험한 집단으로 단정짓는 화법이야말로 아이들이 내면화하기 좋은 사례다.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사회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편견을 불식하는 쪽으로 발전해왔고, 젊은 세대는 분명 자신과 다른 집단에 대해 더 포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집단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긍정적 정보를 꾸준히 접하면 바뀔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가 받을 영향은 정책적 영향 그 이상이라는 점이다. 미래 세대는 트럼프의 태도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클린턴이 대통령인 세상에서 소녀들이 과학자는 물론 대통령을 꿈꾸는 것과 사뭇 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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