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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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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원래 백인의 나라?

미 대선 트럼프 승리 충격받은 미국 언론

언론 통해 세상 바라보던 독자들도 충격
등록 2016-11-15 23:26 수정 2020-05-03 04:28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선거 투표 당일까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을 85%로 점쳤다.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선거 투표 당일까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을 85%로 점쳤다.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플라이오버 컨트리’(Flyover country)라는 말이 있다.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 지역에 대도시가 모여 있는 반면, 중부 지방은 농업이나 사양화된 공업지대만 남아 ‘그저 비행기 타고 지나는 곳’이란 뜻이 담긴 일종의 비하성 단어다. 지난 11월8일,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건 바로 ‘플라이오버 컨트리’의 백인 유권자들이었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위스콘신, 아이오와, 미시간 등 이른바 ‘러스트벨트’(Rust Belt)에 속하는 선거인단은 총 70명이다. 2008년,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는 이 다섯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얻었다. 이번에는 이들이 고스란히 트럼프의 몫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전국 득표에서 근소하게 앞섰지만 538명 선거인단 가운데 이곳에서 무려 70명을 빼앗겨 완패했다.

를 비롯한 외신들은 백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트럼프 당선의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클린턴이 원래 오바마가 얻었던 만큼 표를 얻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 유권자 집단이 있었다. 흑인들이 대표적이었고, 젊은 유권자들도 그랬다. 대신 클린턴은 대졸 여성이나 라티노(Latino) 유권자에게 많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클린턴은 어느 유권자 집단에서도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트럼프는 라티노에게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인 밋 롬니보다 표를 더 얻었다. 무엇보다 백인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수많은 여론조사에서는 “지지 후보 없음” 부류에 숨었던 이들이 막판에 투표소로 몰려간 것인지, 트럼프가 늘 주장하던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가 표로 드러났는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는 “강력한 미국을 되찾자”며 미국은 원래 백인의 나라라는 암묵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흘려보냈다. 여전히 등록 유권자의 70%를 차지하는 백인은 트럼프의 메시지에 응답했다.

대선 결과가 나온 뒤 대도시 젊은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리로 나섰다. “트럼프 아래서 못 살겠다”며 캘리포니아만 독립하겠다는 ‘캘렉시트’(Calexit)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다음 대통령은 정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1월10일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 만난 자리에서 정권을 안정적으로 넘겨주도록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민주당 지지자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건 미국 언론이다. 이들은 일제히 클린턴의 낙승을 예상했다가 엄청난 오보를 낸 꼴이 됐다. 개표 직전 데이터 저널리즘 사이트 ‘업샷’의 당선 가능성은 힐러리 85%, 트럼프 15%였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한 번도 바뀐 적 없던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언론사의 예측 판세는 개표 몇 시간 만에 트럼프 쪽으로 뒤집혔다. 그리고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미디어 칼럼니스트 짐 루텐버그는 “많은 유권자가 이번 투표를 통해 드러낸 분노와 소외감, 배신감, 불신을 언론이 사전에 전혀 읽어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이들은 ‘나를 대변해줄’ 세력을 찾지 못해 지쳐 있었다”고 풀이했다.

여론조사 방법 자체의 문제나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올바로 분석해 민심을 읽어내지 못한 언론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언론은 ‘트럼프가 이길 것’이라고 믿는 지지자들을 “뭘 잘 모르는 안타까운 사람”처럼 그렸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 언론이었다. 결국 전체 득표에서는 클린턴이 앞섰으니 근소한 차이로 예측이 빗나갔을 뿐이라고 애써 위로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독자들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미국과 세계가 치러야 할 대가가 생각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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