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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국 평등권 수정헌법안 반대 운동 벌였던 ‘반페미니즘’ 활동가 필리스 슐래플리
등록 2016-10-19 20:43 수정 2020-05-03 04:28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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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정당의 남성 대선 후보가 ‘자랑 삼아’ 성폭행을 자백했다.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지지율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이어,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미 역사상 첫 여권신장회의는 1848년 7월19~20일 뉴욕주 세네카폴스에서 열렸다. 시민으로서, 여성도 투표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급진적’이란 비판도 나왔지만,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출발이 이 회의인 건 분명하다. 땀과 눈물의 세월이, 그 뒤 오래도록 이어졌다. 1920년 8월26일 비준 절차를 마치고 발효된 미 수정헌법 제19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미 연방정부나 어떤 주정부도 성별에 따라 미국 시민의 투표권을 부인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

세네카폴스 회의 이후 장장 72년여가 흐른 뒤였다. 다음 차례는 무언가? 참정권 운동 지도자인 앨리스 폴과 크리스털 이스트먼은 1923년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평등한 정의를 누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성 차별 금지를 헌법에 명시하기 위한 ‘평등권 수정헌법’(ERA)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93년여가 흘렀다. 미국에서 오늘 여성은 평등한가?

필리스 슐래플리(Phyllis Schlafly)는 1924년 8월15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계 이민 3세인 아버지는 기계제작자로 일했다. 외할아버지는 변호사였다. 슐래플리가 6살 나던 해 여동생이 태어났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을 삽시간에 앗아간 건 대공황이었다. 그 여파로 1932년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었다. 슐래플리가 8살 나던 해였다. 한번 잃은 일자리를 되찾기는 쉽지 않았다. 집안을 지키던 어머니가 나섰다. 도서관 사서와 교사 등으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육남매 낳은 가톨릭 신자

영민했던 슐래플리는 일찌감치 대학에 입학했다. 19살에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1945년 명문 래드클리프여자대학(이후 하버드대학으로 통합)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애초 연방 공무원을 희망했던 그는 자리를 잡지 못하자 보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으로 잠시 일했다. 1946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공화당 클라우드 베이크웰 후보의 연방 하원의원 선거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권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25살 나던 해인 1949년 10월20일 그는 세인트루이스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 출신인 변호사 존 프레드 슐래플리와 결혼했다. 젊은 부부는 미시시피강 건너 일리노이주 앨턴으로 이주해 가정을 꾸렸다. 육남매가 차례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부는 한평생 종교를 애국심, 반공주의 등과 결합시켜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슐래플리는 1952년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도전장을 냈다. 민주당의 아성인 일리노이주 24번 선거구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당내에서 그의 입지가 조금씩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1960년 대선이 다가왔다. 민주당의 존 케네디 후보와 맞설 공화당 후보는 리처드 닉슨이었다. 그해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슐래플리는 닉슨에 반대하는 ‘도덕적 보수주의자’ 편에 섰다. 닉슨의 정책 방향이 지나치게 ‘온건하다’는 게 이유였다.

1967년 슐래플리는 공화당 전국여성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당내 ‘온건파’로 분류된 클래디스 오도넬에게 패했다. 당내 ‘온건파’는 그를 기피했고, 그는 당내 ‘기득권’ 세력과 날을 세웠다. 슐래플리는 1970년 다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이번에도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그 무렵이다. 슐래플리 시대의 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미 헌법 제5조를 보면, 헌법에 수정을 가하려면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연방 상·하원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수정헌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 그다음은 주의회의 비준이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4분의 3 이상, 최소 38개 주의회가 비준하면 비로소 효력을 가진다. 평등권 수정헌법안은 1972년 6월 상·하 양원을 통과했다. 전문은 이렇다.

“1항. 미 연방정부나 어떤 주정부도 성별에 따라 법 아래 평등한 권리를 부인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 2항. 의회는 입법활동을 통해 이 조항을 집행하는 권한을 갖는다. 3항. 수정헌법안은 비준 절차 완료 2년 뒤에 발효된다.”

슐래플리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구호 ‘우리의 특권을 빼앗지 말라’(Stop Taking Our Privileges)에서 문자를 따 ‘스톱 ERA’란 단체를 만들고 평등권 수정헌법 비준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1975년 ‘이글 포럼’으로 이름을 바꾼 이 단체는 가족중심주의와 반여성주의를 기치로, 8만여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거대 보수단체로 성장한다.

‘전문직 여성’ vs ‘가정주부’ 대결 구도 활용

“페미니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거부하고, 이를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슐래플리가 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그는 평등권 수정헌법이 비준되면, 여성에게 부여된 ‘특권’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정을 지키는 주부에게 보장된 각종 사회복지 혜택과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같이 당연시하던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게다. 전통적 ‘성 역할론’도 강조했다. 그는 각종 방송 토론에 출연해 “전쟁터에서 전투는 남성이 치러야 한다. 평등권 수정헌법이 비준되면, 군 면제란 여성의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 여성도 징집 대상이 되고, 전투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그는 평등권 수정헌법이 젊은 전문직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고 덧칠했다. 전문적 식견이라곤 전혀 없는 중년 이상의 가정주부들은 남녀 처우가 같아지면, 얻는 건 없고 잃을 것은 많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이혼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유리했던 자녀 양육권 문제도 남성과 동등한 쪽으로 바뀌고 위자료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을 보호해온 법 조항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그의 주장은 주로 중년 이상, 저소득층 여성들 사이에서 예상보다 울림이 컸다.

일리노이 주의회에서 평등권 수정헌법 관련 논의가 있는 날이면, 그는 단체 회원들과 함께 집에서 만든 빵과 잼, 애플파이 등을 의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외쳤다. “엄마와 애플파이를 위해 투표하세요.”

평등권 수정헌법은 결국 폐기됐다. 연방의회가 7년인 비준 시한을 10년으로 연장까지 했지만, 마지막까지 평등권 수정헌법을 비준한 주의회는 35개 주에 그쳤다. 정치학자 제인 맨스브리지는 1986년 펴낸 에서 이렇게 썼다. “필리스 슐래플리가 일찌감치 효과적으로 반대여론을 만들어내지만 않았어도, 평등권 수정헌법은 1975년 또는 1976년에 비준을 마칠 수 있었을 게다.”

평등권 수정헌법 싸움이 한창이던 1978년 슐래플리는 모교인 워싱턴대학 로스쿨을 졸업했다. 법을 수단으로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서기 위해서다. 그는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사건’에 대해 “태어나지 못한 수백만 아기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미 대법원 역사상 최악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선 “게이 로비스트가 자기들 생활 방식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슐래플리는 육남매 중 장남인 존이 1992년 를 통해 ‘아우팅’됐을 때, 아들의 성정체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도 세상을 보는 관점은 엄마랑 정확히 일치한다”고.

지난 3월 트럼프 지지 선언

애국주의와 버무려진 반공 이념과 가족주의에 기반한 보수적 가치관이 한평생 그를 이끌었다. 사형제를 신봉했고, 불법이민자 추방을 외쳤으며, 연방정부가 총기를 빼앗아갈까 의심했다. 끊임없이 공화당 주류와 불화하며, 외곽에서 세를 모아 내부를 쳤다. 그가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최신작 는 9월6일 출간됐다. 그 하루 전날, 슐래플리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

정인환 통일외교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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