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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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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가정에겐 잔인한 여름방학

방학 동안 벌어진 소득 계층 간 학업 격차 3년까지 차이 나
등록 2016-06-14 06:49 수정 2020-05-02 19:28
미국의 한 여름방학 캠프에서 어린이들이 서커스 연수를 받고 있다. 긴 방학 기간, 미국에서는 소득 계층에 따라 학업 격차가 벌어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REUTERS

미국의 한 여름방학 캠프에서 어린이들이 서커스 연수를 받고 있다. 긴 방학 기간, 미국에서는 소득 계층에 따라 학업 격차가 벌어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REUTERS

“올여름 자녀에게 어떤 뜻깊은 방학을 선물할 계획이세요?” 미국 학부모들에게 이 질문은 현실적으로 다음과 같이 들릴 수 있다. “이번 방학 때 아이를 어느 캠프에 보내세요?” 좀더 노골적으로는 이럴 수도 있다. “일주일에 얼마짜리 캠프에 보낼 계획이죠?”

여기서 ‘캠프’란 며칠 밤을 자고 오는 여행이 아니다. 여름방학 때 열리는 체험학습 혹은 보충수업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말한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여름방학이 두 달 반에 가까울 만큼 길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신날지 모르지만, 일하는 부모는 10~11주간의 여름방학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캠프가 준비돼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는 지난 6월4일 기사에서 “저소득층 학부모에게 여름은 특히 잔인한 계절”이라며 “소득 계층에 따라 아이들의 학업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름을 모든 학생이 제대로 보낼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를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더 큰 배움을 얻는다는 의미의 ‘방학’은 더는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게 아니다. 아이와 부모가 정원이 딸린 뒷마당에서 스프링클러로 물장난하며 더위를 식히는 즐거운 시간, 로봇 캠프에 간 아이들이 과학자의 꿈을 키우는 행복한 시간을 누리는 방학은 점차 부자부모를 가진 아이들만의 ‘특권’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여름방학을 길게 편성하는 전제 가운데 하나는 방학 동안 아이를 돌보고 지도해줄 부모가 적어도 한 명은 집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가정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 가정의 25% 정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맞벌이 부부 혹은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적잖은 아이들에게 방학은 ‘아무도 놀아주는 이 없는 집에서 할 일 없이 보내는 시간’에 불과하다.

2014년 조사에서 미국 부모들은 ‘여름방학에 아이 한 명당 평균 958달러(약 100만원)를 쓸 계획’이라고 답했다. 아이를 캠프에 보낼 여력이 없는 부모는 어떻게든 가족이나 친구에게 자신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것마저 어려우면 아이를 집에 혼자 두는 수밖에 없다. 6~12살 어린이의 11%가 여름방학 동안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혼자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름방학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과 배움에서 또래보다 뒤처지는 안타까운 시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학생이 책을 보지 않는 방학 동안, 특히 독해력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서 더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벌어진 격차는 방학이 끝난 뒤에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이런 격차가 쌓여 5학년이 끝날 때쯤이면 부잣집 학생과 저소득층 학생의 학습 수준 차이가 3년 정도 벌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여름방학 동안 방과후학교나 보충수업 같은 프로그램을 학교와 정부가 더 많이 개설하면 어떨까? 2013년 설문조사에서 학부모의 절반 이상은 ‘가격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학교 프로그램에 자녀를 보내겠다’고 답했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가계당 적정 교육비 지출’은 가계 수입의 10%를 넘지 않는 선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상류층이 아니고서는 이 기준을 좀처럼 맞추기 어렵다. 정부나 교육청이 주최하는 캠프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만큼 인기가 높아 ‘예약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는 긴 여름방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학부모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사회와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지적했다.

* 해당 뉴욕타임스 기사 ‘The Families That Can’t Afford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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