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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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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라의 운명, 칼리드의 운명

고대 유적지 팔미라의 수호자 고고학자 칼리드 알아사드(1932~2015), IS에 참수되어 팔미라 유적에 내걸리다
등록 2015-09-17 18:17 수정 2020-05-03 04:28

시리아의 고대 유적지 팔미라를 연구·관리하는 데 온 삶을 바친 고고학자가 결국 팔미라에서 잔혹한 최후를 맞았다. 지난 8월18일 시리아의 고고학자 칼리드 알아사드가 이슬람 수니파의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참수됐다. IS는 그의 주검을 팔미라 유적지의 돌기둥에 매달았다. 향년 82.
팔미라는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선 교역도시 중 하나로, 2천 년 전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동의 가장 장대하고 아름다운 고대 유적지로 꼽힌다. 알아사드는 팔미라에서 태어나 50여 년간 팔미라 유적의 연구와 관리에 매진했다. 그는 딸의 이름을 1700년 전 팔미라를 통치한 여왕의 이름을 따 ‘제노비아’라고 지을 정도로, 팔미라를 사랑했던 인물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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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께에는 ‘죄목’ 적은 종이가

알아사드의 친구이자 시리아의 문화재청장인 마문 압둘카림은 그가 한 달 넘게 IS에 억류돼 심문을 받았다며 “유적 연구에 몸 바친 학자가 자신이 헌신했던 유적지에서 참수돼 주검이 내걸렸다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IS는 이라크와 시리아 내 점령지역의 고대 유적들을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이를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IS가 팔미라 지역을 점령한 것은 지난 5월. 시리아 정부는 IS 점령 전에 수백 개의 고대 조형물을 비롯한 유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밝힌 바 있다. 알아사드는 팔미라 함락 전날 밤, 가능한 한 많은 유물을 4개의 트럭에 나눠 실어 대피시키는 것을 도왔다.

알아사드의 조카인 칼리드 알홈시는 “우리는 그들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며 가족들이 줄곧 함께 떠나자고 알아사드를 설득했다고 영국 일간 를 통해 전했다.

“우리는 참호와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는 것을 함께 바라보며 서 있곤 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어요.”()

알아사드는 가족들의 간청에도 고향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는 팔미라가 함락되던 5월21일 아들 왈리드와 함께 IS에 붙잡혔다 풀려났고 다시 붙잡혔다. 두 번째로 억류돼 죽기 전까지 한 달여간, 그는 유물이 숨겨진 장소를 추궁받았다. IS는 유물을 밀매해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아사드는 끝내 위치를 밝히지 않았다.

에 따르면 지난 8월18일 조카 알홈시는 IS에 잡혀갔던 알아사드가 밴에 실려 시장 근처의 광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알아사드는 이전에 참수된 많은 이들이 입었던 오렌지색 점프슈트가 아닌 일상복을 입고 있었다. IS 대원 한 명이 나와 알아사드의 5가지 죄목을 읊었다. 그가 “우상숭배의 수장”이며, “이교도의 콘퍼런스”에서 시리아를 대표했고, 이란 시아파의 유력 집단을 방문했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뒤 또 다른 대원이 칼을 꺼냈고, 이때 알홈시는 그 장면을 도저히 볼 수 없어 광장을 떠났다고 전했다.

IS는 팔미라 유적지 인근 마을의 박물관 앞 광장에서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아사드를 참수했다. 그리고 두 동강 난 주검을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팔미라 유적지의 돌기둥에 내걸었다. 허리께에는 ‘죄목’이 붉은 글씨로 적힌 종이가 걸려 있었다. 박물관과 유적지 모두 알아사드가 평생 동안 거의 매일 드나들던 곳이었다.

고대 서아시아 공용어 ‘아람어’를 유창하게

칼리드 알아사드는 ‘미스터 팔미라’로 불릴 만큼 팔미라 고고학의 권위자였다. 그는 1963년부터 2003년 퇴직할 때까지 40여 년간 팔미라 유적지의 관리책임자였고, 이후에도 줄곧 팔미라 문화재와 박물관 분야의 전문가로 일해왔다.

“알아사드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는 팔미라의 역사를 쓸 수 없을 것이다. 누구도 팔미라에 대해 그처럼 속속들이 정통하지 않았다. 그는 대체 불가능하다.” 미국 쇼니주립대학의 교수이자 시리아 문화재 담당 관리를 지낸 암르 알아짐은 말했다. 팔미라 유적에 대한 알아사드의 업적은 “하워드 카터(투탕카멘 왕묘를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를 빼놓고 이집트학을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그는 덧붙였다.

알아사드는 1932년 1월1일 팔미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이슬람 수니파였고, 오랜 세대에 걸쳐 팔미라 지역에서 살아왔다. 수도인 다마스쿠스의 대학에서 역사학과 교육학을 전공했으나, 팔미라에 대한 그의 지식은 대부분 고향에서 독학한 것이었다. 그는 시리아의 고고학자들 중에서도 드물게, 고대 서아시아의 국제공용어인 ‘아람어’를 유창하게 했다. 이것은 그가 팔미라 유적에 새겨진 말들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31살이던 1963년 알아사드는 팔미라 유적지의 관리책임자가 되었고, 팔미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팔미라의 고대 원형극장, 성곽, 테트라필론(교차로에 세워지는 4개의 출입구가 있는 건조물) 등의 복원 프로젝트를 지휘했으며, 팔미라 박물관장이 되면서 소장품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알아사드는 독일·프랑스·미국·일본·이탈리아·폴란드 등의 해외 고고학자들과 수십 년간 공동 발굴 연구를 진행했으며, ‘문화 외교관’을 자처하기도 했다. 영국 대영박물관의 중동 지역 담당자 조너선 터브는 에 기고한 글에서 “팔미라 방문객이라면 그의 책 을 소장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책은 1982년 출간된 이후 팔미라에 대한 최고의 가이드북이 되었다”고 썼다.

조너선 터브는 알아사드의 오랜 친구로 2008년까지 시리아를 매년 방문했다며 “팔미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결코 말살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터브는 “알아사드가 자신의 작은 사무실로 나를 안내한 뒤, 내가 앉을 의자를 ‘발굴’하기 위해 바닥에 쌓인 책과 종이들을 치우는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며 “그는 내가 도착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최근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놓곤 했다”고 말했다.

알아사드가 학자로서 관심을 가진 고유한 연구 분야는 고대 공동묘지의 장례 조형물이었다. 이 시기 무덤들 안에는 벽으로 구획된 방이 있으며, 각각의 방에는 죽은 이의 초상조형물과 짧은 헌정사가 새겨진 명판이 함께 묻혀 있었다. 알아사드는 이 개인 고유의 특성을 간직한 초상조형물에 큰 매력을 느꼈고, 이 분야의 연구에 공헌했다.

알아사드는 아들 여섯과 딸 다섯을 두었다. ‘가족사업’이라고 할 만큼 많은 가족들이 팔미라 유적에 관련돼 있다. 큰아들 왈리드는 2003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팔미라 유적지 관리책임자가 되었고, 딸 제노비아는 팔미라 박물관 소장품 관리자로 일했다. 제노비아의 남편 칼릴 하리리는 2006년 박물관장을 지냈다. 또 다른 아들 우마르와 모하메드 역시 유적지 관리팀에서 함께 일했다.

‘가족사업’이 된 팔미라 유적

팔미라는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도시다. 오아시스를 따라 만들어졌으며 ‘야자수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오갔던 무역상들의 중개 거점으로, 의 저자 피터 프랑코판은 팔미라를 ‘모래 위의 베니스’로 불렀다.

3세기 중반 제노비아 여왕은 점령군 로마에 항거해 팔미라가 자유도시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273년 이 거대한 사막도시는 로마군의 침략을 받아 파괴된다. 그 뒤 1089년의 지진으로 남은 돌기둥들마저 쓰러져 폐허가 되었고, 1400년에는 ‘이슬람의 칼’ 티무르 군대에 점령돼 많은 로마 건축물들이 파괴되었다. 이 와중에도 태양신의 신전 ‘벨 신전’만은 화를 면했다.

알아사드가 살해되고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8월31일, IS는 30t이 넘는 폭탄을 이용해 벨 신전을 완전히 파괴했다. 갖은 고난에도 2천 년 이상 살아남은, 1세기 말 축조된 팔미라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자, 알아사드가 생전에 가장 주요하게 돌보았을 곳이다. 이들은 일주일 전인 8월23일, 팔미라의 또 다른 대표적 신전인 바알샤민 신전 곳곳을 폭파하는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팔미라 함락 전 알아사드가 올린 마지막 페이스북 게시물은 “자신의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은 수만 명의 순례자들이 향기로운 사원으로 모여들었던 고대의 봄과 여름을 떠올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로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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