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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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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섹시한 것이 돼야 한다”

마을 만들기, 사회적 기업, 공정여행 결합한 가와드 칼링가 ‘마법에 걸린 농장’…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 위해 농업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비즈니스도 배워가
등록 2015-05-28 17:42 수정 2020-05-03 09:54
아이들 얼굴에 머금은 미소와 장난기가 ‘가와드 칼링가 마법에 걸린 농장’이 주민들에게 한 일을 말해준다. 2년 전 이사온 한 꼬마는 “여기가 왜 좋으냐”고 물으니 “재밌어서”라고 답했다.

아이들 얼굴에 머금은 미소와 장난기가 ‘가와드 칼링가 마법에 걸린 농장’이 주민들에게 한 일을 말해준다. 2년 전 이사온 한 꼬마는 “여기가 왜 좋으냐”고 물으니 “재밌어서”라고 답했다.

“살이 쪘어요, 하하하.”

띠따 할머니는 “가와드 칼링가 마법에 걸린 농장(Gawad Kalinga Enchanted Farm·이하 가와드 칼링가 농장)에 살면서 생긴 변화가 뭐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이렇게 답했다. 웃으며 말해도 울면서 듣게 되는 말이다. 할머니가 매우 평균적인 현재의 몸을 갖기 전에 살아온 환경이 단박에 짐작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음식이 귀한 상황에서 살았으면 그럴까’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는 “농장 식당에서 일하며 좋은 음식을 먹게 돼 살이 쪘다”고 했다.

기획 연재


아시아의 사회적 경제


첫 번째 집과 안정된 일자리

띠따는 2011년 54살에 난생처음 ‘우리 집’을 가졌다. 가와드 칼링가 농장으로 이주하면서 생긴 집이다. 농장이 위치한 필리핀 불라칸 앙갓에 살았던 그녀는 집도 직장도 없었다. 허름한 집에 세들어 살았지만 철거를 당해 쫓겨났고, 다니던 공장은 중국으로 이전해 일자리를 잃었다. 막내딸은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지인의 소개로 가와드 칼링가 농장으로 이주하면서 식당일을 얻었고, 땅콩버터를 만들어 파는 사회적 기업의 일원이 됐다. 그녀는 “나와 친구의 비법으로 만든 땅콩버터가 인기가 좋다”며 웃었다. 그렇게 가와드 칼링가 농장에는 ‘엄마의 손맛’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그렇게 농장에서 4년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고정적 수입이 있고, 자녀들은 학교에 다니거나 농장일을 한다. 띠따는 “나의 꿈이 실현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5월15일 저녁 8시, 에리카의 남편은 집에서 봉제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네자 “들어오라”고 한다. 빨래를 마친 에리카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5살, 4살, 3살, 1살. 네 명의 아이가 낯선 이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쳐다봤다. 평상 하나, 작은 텔레비전 그리고 식탁만으로 가득 차는 집이다. 방과 거실을 겸하는 공간 뒤로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다. 남편은 농장일을 하고, 아내는 인형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플러시&플레이’(Plush&Play)에서 일한다. 매주 남편은 1600페소(약 4만원)를 벌고, 아내는 1천페소(약 2만4천원)를 번다. 한국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그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수입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집에서 안정된 직장을 갖고 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와드 칼링가 농장 운영팀의 조니는 “농장 주민은 대부분 예전에 수입이 거의 없었던 이들”이라며 “농장에서 일하니까 교통비가 따로 들지 않아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와드 칼링가 농장에는 현재 25개 집에 50가족,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집은 하나의 지붕 아래 벽을 만들어 두 가족이 각각 사는 형태다. 조니는 “집을 지어주지 않고 집 짓는 일부터 주민과 함께 한다”며 “시혜가 아니라 동등한 사람으로 만나서 가난을 함께 이겨내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와드 칼링가는 가난 극복이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라 믿는다.

집 짓는 일부터 주민과 함께
인턴십을 하러 온 필리핀 비사야제도의 카피스대학 학생들이 농장에서 망고를 따고 있다.

인턴십을 하러 온 필리핀 비사야제도의 카피스대학 학생들이 농장에서 망고를 따고 있다.

“가장 가난한 사람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던 거죠.” 다니던 성당의 신부 소개로 가와드 칼링가 농장에 이주하게 됐다는 마리 아주머니가 농장 마을의 노점에서 파는 음료를 건네며 말했다. 옆에서 일하던 딸은 “마을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사는 사촌한테 가서 대학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들은 자주 ‘꿈’을 말했다. 뜨거운 한낮에 전기일을 하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러 온 19살 청년 데릭에게 “왜 가까운 마닐라로 살러 가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마닐라는 위험하고 평화롭지 않은 곳”이라고 답했다. 가와드 칼링가는 가난한 이들이 무작정 도시로 가서는 희망이 없다고 믿는다.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사람과 우리의 자원을 활용해 가난을 극복하자고 제안한다.

가와드 칼링가 농장은 마을이자 일터이자 기업이자 학교다. 특히 사회적 기업을 배출하는 허브 기능을 강조한다.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1시간30분 떨어진 ‘깡촌’에 있는 이 농장에는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 온 젊은이가 많다. 이들은 여기서 가난 극복을 위한 사회적 기업의 아이템을 생각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배운다. 마을 주민 에리카가 일하는 ‘플러시&플레이’는 가와드 칼링가 농장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이다.

프랑스인 파비앙은 필리핀 엄마들의 바느질 능력을 활용하면 훌륭한 장난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장난감 사업은 농장 엄마들의 일감이 됐다. 잘나가던 직장을 버리고 이곳에 온 이도 있다. 필리핀 명문대학 교수였던 빌리는 이곳에서 ‘황금 오리알’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세웠다. 가와드 칼링가 농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기른 오리가 낳는 알을 이용해 필리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품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든 제품은 가와드 칼링가 농장은 물론 필리핀 편의점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스무 살 에릭은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다. 필리핀계 미국인 2세인 그는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파괴된 마을을 복구하는 자원봉사를 갔다가 가와드 칼링가 설립자 토니 멜로토를 만났다. 에릭은 “필리핀은 넓은 대지, 풍부한 인력이 있는데 가난할 이유가 없다는 토니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방학을 이용해 3개월간 농장에서 인턴십을 한다. 여기서 조경 관련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에릭의 부모는 1974년 마르코스 독재정권 시절 필리핀을 떠났다. “부모님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외국으로 떠났지만, 다음 세대인 나는 필리핀으로 돌아와 가난 극복에 기여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이렇게 가와드 칼링가는 떠나간 이들을 다시 부르고, 농장 밖에 있는 선한 이들과 마을 안에 있는 주민을 연결한다.

농장을 배우러 오는 싱가포르 학생들
마을 주민 에리카는 자녀 넷을 돌보며 인형 만드는 일을 한다.

마을 주민 에리카는 자녀 넷을 돌보며 인형 만드는 일을 한다.

5월15일, 농장에서는 망고 수확이 한창이었다. 35℃가 넘는 한낮에 일을 하다 쉬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저희는 파나이섬 카피스대학교에서 왔어요.” 10여 명의 청년 중 1명이 말했다. 이들은 가와드 칼링가 농장에서 4주간 머물며 인턴십을 한다. 농사와 함께 사회적 기업도 공부한다.

“대나무 궁전 보셨어요? 여기에 대나무 종류가 31가지나 있어요.” 크리스는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다양한 대나무 활용법을 말했다. 이 농장은 대나무로 울창하다. 이렇게 대나무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가와드 칼링가 농장 운영팀 프랭크는 “빨리 자라고, 쓸모 있고, 시원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나무로 지은 2층 건물도 있다. 여기에 들어가면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시원하다.

가와드 칼링가가 대학생들을 인턴으로 초대한 이유는 농장 모델이 필리핀 전역으로 확산되길 바라서다. 그래서 가와드 칼링가 농장은 “쇼케이스”라고 불린다. 앞으로 가와드 칼링가는 필리핀 20여 개 지역에 ‘마법에 걸린 농장’을 만들려 한다. 이들은 2024년까지 500만 명의 ‘가난을 끝내겠다’(Ending Poverty)는 원대한 목표도 세웠다.

가와드 칼링가 농장은 공정여행 여행지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농장을 둘러보고 친환경 농법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에는 매일 수십 명의 사람이 참여한다. 농장엔 숙소도 있어서 며칠을 머물며 농장일을 체험한다. 5월15일에는 싱가포르 국립대 학생들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렇게 필리핀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가와드 칼링가를 방문한다. 공정여행을 통해 주민 일자리 창출 기능도 하는 것이다.

가와드 칼링가는 마을학교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농업을 배운다. 학교와 농장이 하나로 연결돼 학습 기능을 한다. 가와드 칼링가 운영팀의 빌리는 “농업이 섹시한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업을 수익으로 연결하기 위한 비즈니스도 배운다. 환경을 염두에 둔 사회적 기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들려 한다. ‘땅 없는 자들이 땅을 가지고, 집 없는 자들이 집을 가지는 것’이 가와드 칼링가의 기본 목표다. 가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는 마을과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기업을 연결하는 작업도 한다.

“사회를 바꿔서 정치를 바꾸려”

원래 가와드 칼링가는 빈민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단체로 유명하다. 1995년 마닐라의 슬럼가 바공실랑안에서 소년범을 위한 캠프를 열면서 시작된 역사는 2003년 가와드 칼링가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가와드 칼링가는 타갈로그어로 ‘보살핌을 주다’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3천여 개 마을을 만들었고, 2천여 개 마을에서 6만여 가족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난은 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와드 칼링가는 지속 가능한 마을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한다. 사회적 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확보하고 이익을 내려 애쓴다. 이들은 ‘마법에 걸린 농장’을 사회적 기업의 실리콘밸리로 키우고 싶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난 극복을 막는 정치는? 가와드 칼링가 농장 운영팀의 프랭크는 “우리는 정치를 바꿔서 사회를 바꾸는 방향이 아니라 사회를 바꿔서 정치를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앙갓(필리핀)=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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