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비싼 일본에서 돈 없는 청년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셰어하우스다. 셰어하우스는 말 그대로 ‘집을 나눠 쓴다’는 개념으로 방은 혼자 쓰는 대신 부엌과 화장실 등은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방마다 한 명씩 입주해 비싼 집세를 나눠 내는 셈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셰어하우스 ‘커넥트하우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셰어하우스에서 지내는 것을 뒤집어, 자신의 일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제공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일자리가 없으면 빈곤을 탈출할 수 없고, 열악한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커넥트하우스는 ‘현재 사는 곳’을 토대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청년 구직자나 창업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처럼 함께 살면서 사업이나 구직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보기 드물다.
흥미로운 구상을 시도한 양 폴 커넥트하우스 대표를 지난 5월22일 도쿄 중심가 롯폰기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사이 전자우편을 주고받을 때는 몰랐는데 그는 재일동포 3세였다. 그는 “한국계이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른 셰어하우스와 달리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고민한 게 특이했다.“미국에는 벤처회사가 많다. 젊은이에게 도전해보라고 자본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쉽사리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도 없고, 창업한다고 하면 위험부담이 크다고 말리는 사람이 더 많다. 실패는 할 수도 있다. 실패가 좋은 경험이 되어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은 ‘낙오자’ ‘실패자’라고 해버린다. 그러니 청년들에게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도전정신이 사라져버렸다. 셰어하우스를 구상할 때 그냥 사는 곳이 아니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했다. 열정이 있는 외국 청년들을 오게 해서 같이 생활하고 인맥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말이다. 이들끼리 신뢰를 쌓다보면 사업 모델도 찾고 함께 해볼 만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창업 정거장이 된 셰어하우스2011년 시작한 커넥트하우스는 현재 3곳이 운영 중이다. 하우스 거주자 가운데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의 비율은 30% 정도다. 커넥트하우스가 거주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창업 테마는 ‘음식’이다. 커넥트하우스는 스시 아카데미 등에서 강사를 초빙해 입주자들과 함께 음식도 만들고 나눠 먹는다.
“정보기술(IT) 분야는 기술이 필요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취업이나 창업에 뛰어들기 힘들다. 먹는 것이라면 누구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요리를 배우면 비교적 창업하기 쉽다. 일본의 식문화도 다양하니까 여기에 관심 있는 외국 청년도 많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창업을 고민하는 일본 청년이 많이 찾아오나.“일본도 한국도 그렇지만 부모들은 ‘의사나 변호사가 돼라’ ‘대기업에 들어가라’고 권한다. 젊은이들이 부모의 압력이나 사회적 시선에 못 이겨 이런 길을 택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실제 행복할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일본 청년들은 놀라울 정도로 도전정신이 부족한 것을 많이 경험했다. 처음 셰어하우스를 구상할 때는 일본 청년들이 모여 살며 네트워크를 만들고 창업까지 나아가는 것을 지향했는데 일본 청년들의 수요가 별로 없었다. 지금은 적극적인 외국인들이 먼저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이런 곳에 관심 있는 일본 청년을 합류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함께 사는 것의 힘을 경험하다쉬는 장소에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곳으로 셰어하우스를 확장시킨 데에는 그의 경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등학교 때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지는 기숙사 생활은 그에게 가족 같은 친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함께 사는 것을 통해 힘을 얻은 그로서는 히키코모리(주위와 소통 없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일본 젊은이)나 불안정한 일자리 탓에 집을 이리저리 전전해야 하는 일본 청년들이 안쓰러웠을 것이다.
“커넥트하우스의 월세는 6만~7만5천엔 수준이다. 일본 집은 가구가 모두 갖춰진 곳이 없는데 우리는 가방만 가지고 들어오면 된다. 좋은 시설에 견줘 월세는 저렴한 편이다. 부동산 임대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었다. 커넥트하우스라고 이름 붙인 것도 ‘교류의 장으로 만들자’고 해서다.”
“셰어하우스는 정확한 콘셉트가 필요하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동료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 셰어하우스는 끝난다. 한두 번 정도 잘 맞지 않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계약서 내용을 토대로 내보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도 않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그는 세계 여러 곳에서 일하며 친구를 사귀었다. 스위스와 독일, 미국에서 일했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온 것은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졌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였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금융기관이 집을 담보로 계속 돈을 빌려주면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던 게 갑자기 허물어지면서 금융기관이 파산하고 불경기가 닥친 것을 말한다. 그는 당시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미국의 한 대기업 금융 부문에서 일했는데 “회사가 이익만 추구하는 데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회사 주식을 가진 이는 돈도 벌고 좋았겠지만, 그게 우리 사회의 부가가치를 일으켰을까.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던 차에 리먼 사태가 터지고 해서 집 문제를 해결해보자, 재미난 일을 해보자 싶어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집을 둘러싼 욕심의 끝을 본 경험이 집 문제를 해결하는 데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를 인터뷰한 뒤 커넥트하우스 이케가미점으로 향했다. 저녁 7시 퇴근 시간을 맞아 전철에는 직장인과 학생이 그득했다. 전철은 도쿄 23구(서울시와 비슷한 행정구역)와 수도권을 거미줄처럼 잇고, 그 거미줄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전철역과 가까운 집은 비싸다. 비싼 집값 탓에 전철에서 우르르 내린 이들의 집은 대부분 좁을 것이다. 전철을 타고 1시간 가까이 걸려 간 이케가미점은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부동산 거품 보고 뛰어든 집 문제이케가미 커넥트하우스는 허름한 작은 빌라를 개조해 만들었다. 건물 내에 모두 15채의 집이 있고, 그 안에 있는 40개 방을 빌려주는 식이다. 가장 큰 집은 입주자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룸으로 만들었다. 커뮤니티룸 가운데에 대형 싱크대를 놓았고, 한쪽에는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했다. “현재 20명이 살고 있다”고 커넥트하우스에서 일하는 미국인 대니얼 휴즈가 설명했다.
“튀니지와 아르헨티나 등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요리를 보여주는 등 이벤트를 한다. 이벤트에 입주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함께 있는 일본 청년들도 요리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눈다.”
커넥트하우스를 통해 창업까지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 양 폴이 의도한 대로 입주자들이 마음을 합쳐 함께 창업을 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청년실업’과 ‘높은 부동산 비용’을 함께 풀기 위한 색다른 시도는 참신했다.
이토시마·도쿄(일본)=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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