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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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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난과 대결하다

가난이 땅 크기만큼이나 넓게 펼쳐진 인도… 도시화의 파고에 휩쓸린 농촌과 도시에서 저소득층 위한 주거 해법 찾는 사회적 기업 ‘드리슈티’와 아쇼카재단의 ‘하우징포올’
등록 2015-05-21 07:32 수정 2020-05-03 00:54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의 농촌 마을 사우라스에서 사회적 기업 드리슈티가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해 개발하고 있는 대안 주택 ‘가라운다’.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의 농촌 마을 사우라스에서 사회적 기업 드리슈티가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해 개발하고 있는 대안 주택 ‘가라운다’.

이 지난해에 이어 아시아 각국의 사회혁신 현장을 찾는다. 올해는 각 나라의 주거 문제를 ‘사회적 경제’의 프리즘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들을 조명한다. 한국과 인도, 필리핀과 홍콩, 대만과 일본에서 길어올린 생생한 사례들을 4주에 걸쳐 소개한다. 각 현장의 주인공들은 7월2일과 3일 서울(‘2015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한겨레신문사와 서울시 공동주최)에 모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한다. 먼저 인도로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의 빈과 부는 가늠되지 않을 만큼 간극을 벌리고 있다. 인구의 절대다수(90% 이상)가 빈곤층인 가운데, 10억달러 이상을 보유한 부자는 수십 명이다.
인도의 가난한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다. 저임금 노동자로 도시를 돌며 슬럼에서 산다. 그들을 도시로 내보낸 농촌의 집은 퇴락하고 말라간다. 그들이 개미처럼 일하는 땅을 뚫고 초고층 빌딩이 솟는다. 사회적 경제와 협업을 통해 집안 깊숙한 곳에 웅크린 ‘가난의 공기’를 환기시키려는 노력이 농촌과 도시에서 시도되고 있다. 집은 그들의 전선이다.
평범한 노동자가 평생 월급을 모아도 아파트를 살 수 없는 나라, 주저앉은 경제지표가 공격받을 때마다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는 나라, 그 나라 한국에 사는 우리는 속 편히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편집자
기획연재

아시아의 사회적 경제

① 인도: 집, 가난한 자의 최전선

사우라스로 가는 길은 가득했다.

42℃로 끓어대는 작열이 가득했고, 땅을 차고 오르는 흙먼지로 가득했다. 자동차와 길을 다투는 자전거·오토바이·릭샤들로 가득했고, 바퀴 단 것들에게 양보를 모르는 네발 달린 소들로 가득했다.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서로를 잘라먹으며 길을 잇고 끊었다. 길의 덫에 걸려 꼼짝 않는 자동차 유리창에 남녀와 노소가 구별 없이 얼굴을 붙이고 물과 바나나를 팔았다. 에어컨 망가진 늙은 자동차가 고온에 지쳐 더운 바람을 토해냈다.

카스트별로 엄격하게 구획된 집

인도 북동부의 비하르주에서도 사우라스는 북쪽에 있다. 5월6일 사우라스로 향하는 길 위로 비하르의 빈한한 오늘이 포개졌다. 비하르는 네팔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사우라스는 히말라야에서 멀지 않다. 시간은 기억 속 영광을 자비 없이 갉아먹었다. 마우리아왕조(기원전 322~185년)와 굽타왕조(320~550년)로 영화로웠던 비하르는 이제 인도(28개 주)에서 가장 가난한 주가 됐다. 비하르 사람들은 인도인들로부터도 비하당했다. 비하르 출신을 뜻하는 ‘비하리’는 경멸적 뉘앙스를 담아 발음됐다. 델리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인도인(한국에서 10년 거주)은 유창한 한국말로 “비하르는 더럽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주의 착취로 땅을 잃은 비하르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 미숙련 노동자가 되거나 비하르에 남아 극빈의 삶을 살았다.

파트나(비하르의 주도)를 떠난 자동차는 170km를 기거나 달려 6시간 만에 사우라스에 닿았다. 척박한 농촌 마을에서 힌두의 종교음악이 쩌렁하게 울렸다. 골목마다 뛰어놀던 아이들이 처음 보는 이국의 사람들에게 청량하고 경계 없는 웃음을 선물했다.

비하르 인구의 85%가 농촌에 산다. 저속득층의 경우 한 달 평균 수입이 2천~5천루피(약 3만4천~8만5천원) 안팎이다. 이 앙상한 돈의 80%를 먹는 일에 쓴다. 급성장하는 도시들은 농촌 남자들을 저임금 노동자로 빨아들이고 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1억 명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갔다. 농촌과 도시의 인구 비율이 10년 새 6 대 4에서 5 대 5로 바뀌었다. 인도 전체가 5% 성장할 때 농촌은 1.9% 성장했다. 인구 1만 명의 사우라스에서도 5천여 명이 도시로 나갔다고 주민들은 추정했다.

밭일을 하던 여성들이 낯선 이들과의 대면을 피해 온몸과 얼굴을 베일로 가린 채 집으로 돌아갔다. 인도 농촌의 가난은 젊은 남자들의 빈자리를 지키는 여성과 노인, 아이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남편을 도시로 보낸 여성들이 아들을 도시로 보낸 시부모를 모시고 집에 남았다. 그 집에서 여자의 어린 아들들은 아버지가 있는 도시로 나갈 때를 기다리며 날마다 불쑥불쑥 자랐다.

사우라스의 집들은 카스트별로 엄격하게 구획돼 있었다. 17세기 중반 왕의 선생이었던 판딧(학자) 다레자가 사우라스에 정착했다. 브라만(최고 계급)이었던 그의 집을 중심으로 자녀들이 가족을 이뤘다. 그들의 하인들이 계급별로 자리를 정해 집을 지었고, 그들의 자식들이 주변으로 퍼져 마을을 이뤘다. “마을에 잔치가 있을 때마다 모여 어울리지만, 계급 간 주거지를 섞거나 결혼을 하지는 않는다.” 다레자의 9대손인 선지자(38)가 설명했다.

저소득층 주민이 사는 초가집 ‘카차’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의 저임금 도시노동자 머니 말알우발 마길라(방바닥에 앉은 사람)의 집에 아쇼카재단의 ‘하우징포올’ 관계자들(머니 오른쪽 옆에 선 사람)이 방문했다.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의 저임금 도시노동자 머니 말알우발 마길라(방바닥에 앉은 사람)의 집에 아쇼카재단의 ‘하우징포올’ 관계자들(머니 오른쪽 옆에 선 사람)이 방문했다.

“지진이 무서워서요.”

아클루라이(62)가 집을 보수하고 있었다. 그는 초가집 기둥에 철근을 심는 중이었다. 작은 골방 크기의 공간에 4명이 산다고 했다. 네팔 강진 때 집 벽에 금이 갔다는 팔랏 파스완(42)이 공사를 돕고 있었다.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을 집을 염원하며 그들은 시멘트를 발랐다. 아클루라이의 23살 아들은 뭄바이 모텔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며느리·손자와 산다.

그의 집은 전형적인 ‘카차’(짚 등으로 지붕을 얹은 농촌의 전통 가옥)다. 6가구의 카차들이 그의 집과 한 구역을 이루고 있다. 낮은 카스트의 저소득층 주민들이 카차에서 산다. 계급과 소득 수준은 집의 구조에도 강력하게 반영되고 있다.

샤이렌드라 쿠마르 자(40)는 브라만이다. 브라만의 집은 넓고 방이 많은 ‘푸카’(벽돌을 재료로 견고하게 지은 집)다. 높은 카스트의 집엔 하루 한 번 바질나무에 물을 주며 기도하는 방이 있다. 샤이렌드라의 기도방엔 칼리 여신의 상징물이 모셔져 있었다. 그의 세 아들 중 한 명은 뭄바이로 나가 화장품 회사에 다닌다.

키란 덴(26)과 옆집 무케시 쿠마르(15)는 하층의 동일 계급이다. 키란의 남편 르완(32)은 델리의 사무실 건물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남편이 시부모님에게 매달 보내주는 5천루피(약 8만5천원)의 돈으로 가족이 살아간다. 키란은 시어머니가 사다주는 생필품으로 살림을 한다. 그는 남편이 보내는 돈의 씀씀이에 대해 아는 바 없고, 시어머니의 허락 없인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전통사회가 부과한 인도 여성들의 삶을 키란도 살고 있다. 도시에서 돈을 버는 남편이 있어 그의 집은 카차와 푸카의 중간 형태를 띤다.

무케시는 아직 도시로 나갈 나이가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우라스에서 혼자 살림을 꾸리느라 벅차다. 도시로 내보낼 장성한 아들이 없는 무케시 가족의 집은 카차에 가깝다. “계급이 생활수준을 좌우해온 인도 농촌도 시간이 갈수록 계급보다 소득이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고 드리슈티 관계자 아이비타쿠르(65)는 말했다.

사회적 기업 드리슈티는 카차에 사는 사우라스 주민들의 주거 개선을 돕고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출발한 드리슈티는 2000년대 초 농촌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다. 도시화로 피폐해진 농촌 공동체와 여성들을 지원해왔다. 드리슈티는 최근 사우라스에서 새로운 집을 실험하고 있다. 견고한 벽돌집이면서도 주민들의 편의에 따라 변형 가능한 집이다. ‘가라운다’(힌디어로 ‘쉼’을 뜻함)란 이름을 붙였다. 건축비는 카차와 푸카의 중간쯤으로 설정했다. 방은 가족의 필요에 맞게 2개의 침실로, 혹은 침실 1개와 거실 1개, 또는 각각 1개씩의 거실과 가게로 쓸 수도 있다. 수세식 화장실과 급수시설을 갖췄고 발코니도 배치했다.

사생활이 보호되도록 짜인 ‘가라운다’
하우징포올 프로젝트가 아마다바드에 지은 ‘우망 나롤’ 아파트에서 한 가족이 누워 쉬고 있다

하우징포올 프로젝트가 아마다바드에 지은 ‘우망 나롤’ 아파트에서 한 가족이 누워 쉬고 있다

이 모델을 찾아내기 위해 드리슈티 팀은 마을에서 한 달 반 동안 살며 주민들의 삶을 관찰했다. 그들이 어떤 집을 갖기 원하는지 심층 인터뷰해 일종의 모델하우스를 설계했다. 카차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벽돌집을 꿈꿨다. 그들의 수입으로는 불가능한 집이었다. 인근 도시에서 2~3개월씩 건설노동자로 일해 돈을 벌어도 방 한 칸 지을 수 없었다. 건축비를 최대한 낮추면서도 푸카의 장점을 갖춘 견고한 집을 고안했다. 설계를 맡은 포르투갈인 사라(28·건축 전공)는 “젊은 여성들을 배려하려고 신경 썼다”고 했다. 시부모와 함께 있을 때 자기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그들을 별도의 그룹으로 구성해 집 구조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들의 사생활이 보호될 수 있도록 짜인 방의 모양새도 그렇게 갖춰졌다. 가라운다는 낮은 신분과 저소득의 굴레에 갇혀 가난을 강제받아온 이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도록 돕는 출발선과도 같다. 건축용 벽돌 생산에 주민들을 참여시켜 일자리를 갖게 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드리슈티가 그동안 쌓아온 파트너십이 가라운다 보급에 힘이 될 것으로 스왑나 마슈라(40·드리슈티 부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그는 “가라운다의 상품성이 입증되면 금융·대출(마이크로파이낸스)을 주민들과 연결해 건축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드리슈티는 에너지·건강·통신·금융 등 각 분야의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 마이크로프랜차이징(주민들이 소규모 점포의 사업주가 돼 마을의 생필품과 휴대전화 배터리 등을 공급) 형태로 농촌 여성들의 자립을 모색해왔다. 밀밭에서 탈곡기 돌리는 소리가 사우라스의 저녁노을 아래 어렴풋했다.

농촌의 가난이 몰려드는 곳에 도시가 있다. 구자라트주의 주도 아마다바드는 마하트마 간디의 고향이다. 공항과 시내 구석까지 간디의 사진과 그림이 도시를 장식한다. 아마다바드가 고향인 또 다른 남자가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아마다바드에서 나고 12년간 구자라트 주지사를 지냈다. 자신의 태생적·정치적 고향을 모디는 해외자본에 가장 개방적인 땅으로 만들었다. 모디 주정부 이후 구자라트는 인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2002년부터 2014년까지 주 경제성장률 평균 9.85%)을 보이고 있다. 구자라트의 고도성장을 정치적 자산 삼아 지난해 그는 인도 독립(1945년) 이후 ‘단일 정당(극우 힌두 민족주의 정당 인도인민당(BJP)) 집권 체제’를 만든 최초(이전까진 모두 연립정부)의 총리가 됐다.

아마다바드는 ‘모디노믹스’의 최전선이다. 비하르와 인도의 ‘워스트 주’로 짝을 이뤘던 구자라트가 아마다바드를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 포드·지엠·스즈키·볼보 등 해외 주요 자동차 공장들이 아마다바드에서 공단을 이루며 노동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아마다바드는 공항을 중심으로 북쪽의 간디나가라와 남쪽의 구도심으로 나뉜다. 간디나가라는 아마다바드의 행정기능을 옮겨 만든 계획도시다. 길가에서 우뚝우뚝 피어나는 새 건물들이 아마다바드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타타 하우스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사업”

간디나가라 외곽엔 타타그룹의 ‘어포더블 하우스’(74쪽 상자 기사 참조) 사업 현장이 있다. 2004년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을 인수한 타타그룹이 저소득층 도시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주거단지(타타 밸류하우스·간디나가라에만 51개동 1090가구 건설)를 짓고 있다. 집은 방과 부엌, 거실과 화장실을 갖춘 단출한 구성이지만 월소득 40달러(약 4만3천원) 정도의 가구를 소비층으로 삼고 있었다. 마케팅 매니저 시탈 샤흐는 “타타 하우스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사업”이라고 했다. 건설 현장에선 여성 노동자들이 머리에 대야를 이고 흙을 나르고 있었다. 그들의 하루 수입은 240~300루피(약 4100~5100원)였다. 자신의 손으로 짓고 있는 집을 그들은 끝내 살 수 없을 것이다.

공항 아래쪽 구도심의 풍경은 간디나가라와 달랐다. 길가 허름한 건물들 뒤로 도시 슬럼이 펼쳐졌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방 한 칸짜리 집들이 벌집처럼 밀집했다.

머니 말 알우발 마길라(42)의 집은 열기로 후끈했다. 집 밖보다 더운 집 안에서 선풍기는 열기를 식히기보다 뜨거운 공기를 실어날랐다. 좁은 방 하나에서 부인(40)과 두 아들(16·14)이 같이 살았다. “시집간 딸 닥샤(20) 가족이 오면 8명이 지낼 때도 있다”며 머니는 웃었다. 작고 낡은 삼성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지나치게 커 보였다.

그는 20년 전 아마다바드에서 80km 떨어진 돌카에서 10루피(약 171원)를 손에 쥐고 이주했다. 물소를 키우는 것만으론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다. 이사 이후 3년 동안 모은 3천루피로 이곳에 무허가 집을 지었다. 허허벌판에 허가받지 못한 집들이 하나둘 늘어나 마을을 이뤘다. 머니는 아마다바드의 모텔에서 20년간 일했다. 월 750루피(약 1만2800원)였던 급여는 지배인이 된 지금 1만5500루피(약 26만6천원)로 올랐다. 그는 5만루피(약 85만8500원)를 선금으로 내고 하우징포올의 어포더블 하우스를 계약했다. 그는 “두 달 뒤 새집으로 이사갈 생각에 행복하다”고 했다.

머니의 집은 인도 도시 저임금 노동자 주거의 전형이다. 인도에서 상류층은 2~2.5%, 중산층은 5~10%로 분류된다. 나머지는 모두 저소득 계층이다. 인구의 40%가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한다. 인도의 8100만 가구가 도시 슬럼에 거주한다. 한국 인구보다 3천만 명이 많은 수다.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은 철로 인근이나 강변, 오물처리장 위에 ‘불법주택’을 짓고 삶을 잇는다. 인도의 가난은 땅 크기만큼이나 넓게 퍼져 있다.

저소득층 상위 소득자 대상으로 건설

인도 타타그룹이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 북쪽 간디나가라 외곽에 짓고 있는 ‘어포더블 하우스’ 건설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대야로 흙을 나르고 있다.

인도 타타그룹이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 북쪽 간디나가라 외곽에 짓고 있는 ‘어포더블 하우스’ 건설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대야로 흙을 나르고 있다.

“주정부와 시정부 소유의 땅을 누군가 브로커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속여 판다. 땅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싼값에 땅을 산다. 그렇게 형성된 무허가 빈민촌은 정부나 진짜 땅 주인이 소유권을 주장하면 곧바로 쫓겨나게 된다.”

사스 라이블리후드(지속 가능한 주거지원 단체)의 자렌드라 조시 디렉터가 설명했다. 머니도 자신의 집이 무허가 땅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집을 짓고 나서야 알았다.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건설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구입 가능한 집을 짓지 않는다. 둘째, 인도의 저소득층 다수가 ‘무자료 인간들’이다. 인도인 90% 이상이 과세표준 이하다. 소득을 증명할 근거가 없다. 자신의 이름과 출생지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가난하므로 대출을 받아야 집을 살 수 있으나, 금융권은 ‘믿지 못할 인간들’에게 대출을 꺼린다.

아쇼카재단의 ‘하우징포올’(Housing for All in India) 사업은 ‘수많은 머니들’을 위해 고안됐다. 하우징포올 팀은 소득 피라미드의 최하층(BOP·Bottom Of Pyramid) 안에도 피라미드가 있다고 봤다. 저소득층(한 달 소득 1만6700루피 이하)을 소득별로 상(1만5천루피 이상)·중(1만루피 이상)·하(5천루피 이하)로 다시 쪼갰다. 하우징포올은 저소득층의 상위 소득자를 대상으로 집을 개발했다. 타타 하우스보다 질은 조금 떨어져도 ‘저소득층이 소유 가능한 집’(방 1개+부엌 1개 혹은 방 2개+부엌 1개)에 초점을 뒀다.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주거난의 해법으로 하우징포올은 시장에 주목했다. 돈이 없는 국가 대신 기업의 작동 원리를 활용했다. 기업은 시장이 있으면 뛰어든다. 절대다수 빈곤층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

“건설업자들이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지은 집 중 1400여만 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구매층이 얇다는 뜻이다. 건설사나 대출업계가 개발이익이 크지 않은데도 어포더블 하우징 사업에 참여하는 이유가 있다. 수요층이 두껍고 시장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하우징포올 스태프 마니칸단은 말했다. 하우징포올은 건설에 관여하는 이해관계자들을 결합시켰다. 비즈니스 쪽에서 부동산 개발업자와 금융업자 등을 불러모으고, 이들을 평가하고 공적 책임을 견인할 시민사회 영역을 합류시켰다. 하우징포올은 중심에서 조정했다. 작동 원리는 시장 기능에 바탕한 협업과 파트너십이다. 건설사는 최대한 건축비 거품을 뺀 집(일반 개발사의 수익률은 45~60%인 데 비해 하우징포올 모델 수익률은 15~25%대로 낮춤)을 설계했고, 금융권은 ‘대출 불가’의 사람들에게 대출(2009년 2개 은행→2015년 15개 은행 참여)을 내줬다. 가난하고, 자신을 입증할 자료가 없으며, 문서 작업이 불가능한 사람이 집을 갖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들이 이해관계자들의 협력 속에서 낮아졌다. 마니칸단은 부연했다.

“자선이나 사회공헌의 혜택은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하우징포올 모델은 각자가 자신의 목적대로 움직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저렴한 양질의 집을 갖게 하는 공적 기능을 창출(2014년까지 50만 가구 수혜·2800여 채 건설 중)한다.”

샤우다 감골리(40)는 좁은 아파트에서 부인 마부다(35)와 딸 후리다(7) 셋이 산다. 하우징포올 사업으로 탄생한 우망 나롤(건설사 DBS가 시공·856가구 중 700여 가구 입주)의 아파트다. 샤우다는 콜카타에서 아마다바드로 이주해 카펫 노동자로 일했다. 16년 동안 10번 가까이 이사를 다녔다. 마부다는 “이사할 때마다 물건을 잃어버릴까 겁났다”고 했다.

샤우다는 한 달에 2만~2만5천루피를 벌어 저축한 돈으로 집을 샀다. 그는 “작지만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내 집이 생겨 좋다”고 했다. 4년 전엔 오토릭샤도 샀다. 방 하나와 부엌 하나로 이뤄진 비좁은 아파트에서 샤우다는 “안심이 된다”고 했다.

슬럼 위드 밀리어네어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의 가장 비싼 땅에 삼성건설이 88층 고층아파트(맨 오른쪽 건물)를 짓고 있다. 건설 현장 바로 옆엔 도시 빈민들이 모여 사는 슬럼이 펼쳐져 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의 가장 비싼 땅에 삼성건설이 88층 고층아파트(맨 오른쪽 건물)를 짓고 있다. 건설 현장 바로 옆엔 도시 빈민들이 모여 사는 슬럼이 펼쳐져 있다.

나지브 간디 다리를 건너면 뭄바이(마하라슈트라주)의 중심 ‘더 그레이트 뭄바이’로 진입한다. 다른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초고층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뭄바이에서도 가장 비싼 땅에 삼성건설이 88층짜리 아파트를 짓고 있었다. “한 채당 140억원 하는 초고가 아파트가 완판됐다”고 현지 건설컨설턴트로 일하는 이상훈씨는 전했다. 바로 옆은 슬럼이었다. 허약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천을 덮은 뒤 땅바닥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이 즐비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갑부인 릴라이언스(인도 1위 기업) 회장 무케시 암바니의 ‘빌딩 저택’이 삼성아파트 저편에서 뾰족했다. “절대적 가난과 절대적 부가 구분 없이 한 장소에 동거하는 것이 현시대 인도의 모습”이라고 이상훈씨는 말했다. 슬럼 위드 밀리어네어.

‘모두를 위한 집’은 가능한가. 통제할 수 없는 가난이 습자지처럼 번지는 인도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하우징포올 총괄 디렉터인 비슈누 스와미나단(75쪽 인터뷰 기사 참조)은 강조했다. “어포더블 하우징은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다.”

가난이 머무는 곳이자, 가난과 대결하는 곳. 그곳이 집이다.

사우라스(인도 비하르주)·아마다바드(구자라트주)·수라트(구자라트주)·뭄바이(마하라슈트라주)=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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