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스기나미구 중앙도서관’이 있다. 도서관 옆에는 이용자들이 야외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원도 조성돼 있다. 이 공원에는 ‘안네의 장미’라는 분홍색을 띤 노란 장미가 심어져 있다. 안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박해를 피해 숨어산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를 가리킨다. 를 읽은 스기나미구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감상문을 안네의 부친인 오토 프랑크한테 보냈고, 오토는 그 답례로 중학교에 이 장미를 보냈다. 1975년의 일이다.
출퇴근할 때마다 이 공원과 도서관 앞을 지나가게 된다. 어느 날 이 앞을 지나가는데 방송사 카메라가 모여 있었다. 그 일 때문이구나 싶었다. 최근 일본 도서관에서는 와 관련 책들이 파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스기나미구 내에서는 이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11곳에서 119권의 책이 테러를 당했다. 도쿄도 내의 다른 곳에서 훼손된 책은 20여 곳의 140권 이상이다.
일본에서 유대인에 대해 노골적인 증오를 표현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뉴스를 보고 바로 생각나는 일들이 있었다. 지난 1월19일 사이타마현에서 있었던 ‘중국인 등 외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요구하는 보수우익의 시위에 한 참가자가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卍)를 몸에 지니고 나타났다. 이를 찍은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한 개인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주최 쪽이 문제 삼지 않은 건 기이하다. 이 시위의 알림문을 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티베트·위구르 등 다른 나라 국기의 소지는 삼가십시오. 예외적으로 나치당기인 하켄크로이츠는 인정합니다.”
주최자가 나치기를 장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월14일 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적기)는 정치단체 ‘유신정당 새바람’의 전 부대표 세토 히로유키가 ‘아돌프 히틀러 탄생 125주년 파티’ 참가자를 모집했다고 보도했다. 파티의 알림문에는 “위대한 총통 각하가 탄생한 날에 모두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얘기를 합시다”라고 쓰여 있었다. 세토는 과거에 외국인 배척 시위의 선봉에 선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중심 멤버였다.
이번 사건은 보수우익들과 관련 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런데 보수우익 인사들의 발언이 괴이쩍다. 중의원 나카야마 나리아키가 트위터에 “(를 파손하는 건) 일본인의 감성이 아니다. 일본인이 하는 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범인이 외국인이라는 건가. 참의원 가타야마 사쓰키는 트위터에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해 안네 프랑크의 일기처럼 위안부 문제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적었다.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이 범인이라는 뉘앙스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외국인 배척 시위에 참가한 한 남성이 시위 직후 전철역 구내에서 사람을 칼로 찔렀다가 체포됐다는 뉴스가 들린다. 범인은 피해자를 시위에 반대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착각했다고 진술한다.
일본에서 나서 자라면서 이렇게 노골적인 외국인 배척이 벌어지는 일을 처음 겪는다. 내가 늘 이용하던 도서관에서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정말 불편하다.
도쿄=김향청 재일동포 3세·자유기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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