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사용된 식재료와 다르게 표기하는 ‘허위기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식품 허위기재’라 하면 싸구려 음식들이 떠오르지만 이번 사태는 다카시마야백화점, 제국호텔, 리츠칼튼호텔 등 유명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라 소비자들의 충격이 크다.
이번 허위기재가 소비자의 건강을 해롭게 하는 것들은 아니었다. ‘와규’(일본산 쇠고기)가 오스트레일리아산이었다, ‘쿠루마새우’(참새우)가 블랙타이거였다, 거의 그런 내용이다. 하지만 ‘돈을 좀더 내더라도 좋은 것을 먹고 싶다’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한 악랄한 상술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허위기재는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이번 건은 일본 특유의 문화와 관련돼 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생산방법이나 산지를 자세히 지정해 좋은 식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뛰어나다. 교토에서 생산되는 ‘구조파’는 보통파보다 단맛이 많이 난다. ‘후지 사과’는 굳이 설명을 더 할 필요 없이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유명하다. 좋은 식재료를 만들어내려는 ‘집착’이 일본의 식문화를 풍요로운 것으로 만들었고, 그만큼 식품 표시 규정도 철저하다.
광우병 사태 때 한국에 사는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식품 표기의 신뢰성에 대해 온도차를 느낀 적이 있다. 미국산이라 적힌 걸 먹지 않으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걸 어떻게 믿어?” 하고 되물었다. 일본에선 그렇게 표기돼 있으면 그러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만큼 일본의 식품 표시는 법적으로 단단히 정비돼왔다. 이번 사태는 일본 소비자들이 그 제도를 향유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게까지 따질 필요가 있나’라고 느낄 정도로 일본의 식품 표시 규정은 철저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 중에도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엄마 손맛 정식’을 중년 남성 조리사가 만들고 있었다, ‘프레시주스’가 귤을 직접 짠 것이 아니라 종이팩에 담긴 과즙 100% 주스였다, 는 등이 있었다.
허위기재는 1차적으로는 업체 쪽의 문제지만 소비자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한 호텔체인그룹의 중화요리 레스토랑에서 ‘시바새우의 칠리소스’에 남미에서 잡히는 바나메이새우를 재료로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시바새우는 일본의 시바라는 지역에서 잡히니까 시바새우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시바새우나 바나메이새우는 비슷하다. 중국에서 새우 양식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시바새우든 바나메이새우든 영어로는 똑같이 ‘Shrimp’, 중국어로는 ‘蝦仁’(샤런)입니다. 쿠루마새우든 블랙타이거든 영어로는 똑같이 ‘Prawn’, 중국어로는 ‘明蝦’(밍샤)입니다. 식재료의 자세한 종류를 따지는 것은 일본 특유의 문화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시바새우와 바나메이새우는 다르다. 시바새우는 물기가 많고 부드러워서 회 등 식재료의 맛을 살려내는 일본식 요리에서는 그 차이가 나타난다. 그런데 중화요리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일본의 전문 요리점에서는 새우의 종류에 따라 조리법을 바꾼다. 그런데 중국 본토에서 요리할 때 새우의 종류를 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에 다카시마야백화점에서 ‘쿠루마새우의 테린(익힌 고기나 생선 등을 차게 식힌 다음 얇게 썰어서 내는 애피타이저)’의 식재료가 블랙타이거였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것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얘기할 수 있다. 가열하는 조리법인 ‘테린’에서는 두 종류의 새우 맛에 큰 차이가 없다.
생물학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고 맛도 같은데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데 식재료의 종류를 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비자들에게 실제 맛보다 표시에 끌리는 브랜드 지향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쿠루마새우와 시바새우는 양식이 매우 어렵고 희귀한 존재다. 그런 지식이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식재료를 따진다면 식품 표시에만 매달리지 말고 개개인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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