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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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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논쟁하고 당론으로 하나되다

[장석준의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집권 사민당 제치고 새로운 대표 좌파정당으로 부상 점쳐지는 덴마크 적록연합
정파 토론 활발하되 연합 집행부 최종 결정에 따르는 내적 힘으로 정국 주도해
등록 2013-05-24 20:33 수정 2020-05-03 04:27

라는 덴마크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비르기트 뉘르보라는 여성 정치인이 덴마크 총리가 돼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게 주 내용이다. 시즌1이 2010 년에 나왔는데, 덴마크에서는 시청률이 50%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박근혜 후보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는지 국내에서도 한 종합편성채널이 이 드라마를 방영한 바 있다.
‘유로코뮤니즘’의 원조라 할 SF
드라마뿐만 아니다. 현실에서도 지금 덴 마크 총리는 여성이다. 의 주인공은 우파로 나오지만, 실제 여성 총 리는 사회민주당 소속이다. 영국 노동당 전 대표 닐 키녹의 며느리이기도 한 올해 47살 의 헬레 토르닝슈미트가 그 사람이다. 그녀 는 2011년 총선 승리로 총리가 되었다. 비록 드라마 주인공과 정치색은 반대지만, 의 인기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한다.
덴마크의 여성 정치인 바람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토르닝슈미트가 총리가 된 총 선에서 또 다른 여성 후보 바람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요한네 슈미트닐센. 1984년생으로 총선 당시는 물론 지금도 30살이 넘지 않은 젊은 여성이다. 그녀 역시 한 좌파 정당 소속 이다. 사회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또 다른 좌파 정당인데, 그 이름이 인상적이다. ‘붉은 색과 푸른색의 연합’이라는 뜻의 적록연합 (RGA)이다.
적록연합은 본래 2~3%의 지지를 받아왔 는데, 2011년 총선에서는 득표율이 6.7%로 껑충 뛰었다. 이에 따라 의석수도 4석에서 12석으로 3배 늘었다. 최근에는 집권 연정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이 당의 지지율이 10%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혹자는 이들이 사회민 주당을 제치고 좌파의 새로운 대표자로 부 상할 가능성까지 점친다. 덴마크 정치에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적록연합은 어떠한 당인가?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덴마크 의 좌파 정치 지형을 살펴보자.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덴마크에도 좌파 정당이 여럿 있다. 그중 이제껏 주류의 지위 를 차지해온 것은 역시 사회민주당(현재 정 식 명칭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 그런데 2011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 지지가 예전보 다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 당의 득표율은 오히려 2001년 총선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 다. 2007년 총선에서 25.5%이던 것이 4년 뒤에는 24.8%에 그쳤다. 그럼에도 사회민주 당이 연정을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당 자 체의 승리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우파의 패 배 덕분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좌파 세력의 약진 덕분이었다.
공산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 연합
다른 좌파 정당도 하나가 아니다. 앞에 소 개한 적록연합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이 당 보다 더 규모가 컸던 사회주의인민당(SF)도 있다. 이 당은 덴마크 공산당에서 갈라져나 온 세력이다. 1956년 소련이 헝가리 혁명을 무참히 짓밟은 뒤, 서유럽 각국 공산당 안에 는 소련에 환멸을 느낀 당원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결국 당을 떠났다. 이렇게 공산당을 떠난 이들은 대개 독자적인 대중정치 세력 을 만드는 데 실패했는데, 그 단 하나의 예외 가 덴마크였다.
덴마크 공산당 탈당파는 1959년 사회주 의인민당을 창당해서 사회민주당 왼쪽의 대 중정당으로 성장했다. 이 당이 일찍이 내건 대소련 독립 노선은 10년 뒤 이탈리아 공산 당 등이 표방하는 ‘유로코뮤니즘’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인민당은 2011년 총선 에서 9.2%를 득표했고, 사회민주당은 이 당 과 중도우파 사회자유당이 동참한 덕분에 현 연정을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민주당·사회주의인민당·사회자유당, 이 세 당의 의석을 다 합쳐도 77석으로, 총 175석의 과반이 안 된다. 그런데도 어떻게 연립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을까? 12석을 얻은 적록연합이 연정에 직접 참여는 않되 지지표를 던지기로 결정한 덕분이었다. 이런 절묘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게 된 정당, 적록연합의 역사는 길게 보아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 사회주의인민당은 사회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노선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에 불만을 품은 당내 일부가 탈당해 새로 좌파사회주의당을 창당했다. 사회민주당 왼쪽에 기존 사회주의인민당과 공산당에 더해 좌파사회주의당이 또 생긴 것이다. 이 당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속 의석을 확보(2~4석)하면서 비공산당 급진 좌파의 원내 교두보 역할을 했다.
1970~80년대는 신진 좌파에게는 성장의 호기였다. 1985년 우파 정부의 노동법 개악 시도에 맞서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 파업은 애초의 투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났으나, 이 경험 때문에 덴마크 우파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신자유주의를 좀더 조심스럽게 도입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 주도로 유럽연합(EU) 반대운동이 끈질기게 이어져 1992년에는 덴마크의 단일통화 가입을 국민투표를 통해 막아내기도 했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핵발전 도입 반대운동이다. 주류 정당들이 덴마크에도 핵발전소를 건설하려 하자 급진 좌파들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덕분에 핵발전소 건설은 저지되었고, 덴마크는 지금 전세계적인 재생에너지 선진국이 되어 있다. 녹색당이 등장하기 전에 급진 좌파가 핵발전 반대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이후 덴마크에서는 이들이 곧 ‘녹색’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혼란의 순간이 도래했다. 현실사회주의권의 동요와 붕괴가 덴마크 좌파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직격탄을 맞은 쪽은 당연히 그간 친소 입장을 고수해온 공산당이었지만, 다른 세력이 받은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그간 급진 좌파의 원내 거점 역할을 해온 좌파사회주의당이 1987년 총선에서 원외 정당 신세가 되고 말았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등장한 게 적록연합 프로젝트다.
좌파사회주의당과 공산당은 다음 총선 도전을 위해 선거연합 결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논의에 트로츠키주의 정파인 사회주의노동자당(SAP)과 마오주의 세력 공산주의노동자당(KAP)도 합류했다. 오랜 대립의 역사를 지닌 정통 공산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함께 미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들의 결단이 보통 수준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렇게 해서 1989년 이들 사이에 정당연합이 결성됐다. 그 이름은 그냥 ‘연합’이었다. 지금도 이들은 선거에 ‘연합’이라는 당명으로 출마한다. 덴마크에서는 굳이 그 앞에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이들이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나라 바깥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앞에 ‘적색과 녹색’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래서 흔히 ‘적록연합’이라 불린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덴마크에서는 급진 좌파가 생태주의의 대변자로 인정받는 분위기여서 적록연합이 곧 녹색당의 위상도 겸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무척 앞선 시도
출범 당시 적록연합은 정당들의 연합이면서 동시에 독자 정당이기도 했다. 좌파사회주의당·공산당 등 창당 주역들은 자신들의 독자 조직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이들 조직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신참자들이 적록연합에 개별 입당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었다. 집행부 역시 ‘당내당’들이 파견한 대표자들뿐만 아니라 개별 입당 당원들이 선출한 간부들로 구성됐다.
1980년대 말에만 해도 이것은 상당히 낯선 실험이었다. 비슷한 사례로는 1970년대 남미의 우루과이에 등장한 확대전선(FA)이라든가 적록연합이 출범하기 3년 전 스페인에서 결성된 연합좌파(IU)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포르투갈에서 적록연합과 쌍둥이처럼 닮은 좌파블록(BE)이 등장한 것은 10년 뒤였다. 이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나야, 요즘 이런 조직 형태의 대명사로 각광받는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이 만들어진다. 프랑스에서는 이제 와서 좌파당·공산당 등이 좌파전선(FG)을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적록연합은 유럽에서도 무척 앞선 시도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적록연합이 처음부터 잘나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출범 직후인 1990년에 맞이한 첫 총선에서 적록연합은 원내 진출 하한선인 2%를 넘지 못했다(1.7%). 이 결과에 실망해 공산당 소속 일부가 탈퇴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잘 화합하지 못할 것 같던 적록연합 내 여러 정파들은 모처럼의 실험을 계속 밀고 나갔다. 그래서 4년 뒤 총선에서는 3.1%의 득표로 원내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6석의 의석은 적록연합 내 세력 분포를 정확히 반영했다. 좌파사회주의당과 공산당이 각각 2석이었고, 사회주의노동자당과 공산주의노동자당은 1석씩 확보했다.
이렇게 발전하는 가운데, 점차 정당 간 연합 대신 한 정당이라는 정체성이 강화됐다. 공산주의노동자당과 최대주주 좌파사회주의당은 차례로 당내당을 해산했다. 또한 개별 입당한 신입 당원 수가 계속 증가했다. 의원들은 기성 정당들과 달리 적록연합 집행부의 당론을 철저히 따랐다. 저마다 출신 정파가 다름에도 정파의 입장보다는 연합 집행부의 최종 결정에 더 무게를 두었다. 덕분에 적록연합 전체의 지도력이 더욱 권위를 갖게 되었다.
물론 긴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야당이면서도 현 연정의 존립에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서 생긴 긴장도 있다. 예전에는 조금 더 자유롭게 예산안에 반대 표결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연정 붕괴(와 우파의 재집권 가능성)로 이어질 수 있어서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지구 반대편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2013년 예산안 표결 과정에서도 이 때문에 적록연합 안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각 정파와 당원들은 이후의 치열한 논쟁을 열어두면서도 다시 한번 집행부의 최종 당론(찬성 표결)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당연합 실험에서 새로운 하나의 정당이 서서히 부상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덴마크 적록연합의 진중한 성장 과정은 지구 반대편 우리에게도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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