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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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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확대전선에서 배우자

[장석준의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좌파들이 통합당도 선거연합도 아닌 방식으로 연대한 확대전선, 시골 자택에 사는 대통령 낳은 우루과이 집권당의 독특한 조직 구조
등록 2013-01-25 18:13 수정 2020-05-03 04:27

최근 TV에 외국의 어느 대통령의 살림살이가 소개돼 화제가 된 바 있다. 올해 77살인 그는 대통령 관저를 마다한 채 시골 자택에 머물고 있다. 자기가 직접 경작하는 화훼농장에 딸린 작은 오두막이다. 이조차도 부인 명의로 돼 있다. 자신의 명의로 된 유일한 재산은 낡아빠진 폴크스바겐 소형차뿐이다. 농사로 버는 수입 말고 대통령 세비를 포함해 매달 1만2천달러의 소득은 모두 가난한 이들이나 영세 기업에 기부한다. 아예 대통령 관저까지 노숙인들에게 개방하려 했다가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고 ‘세상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대통령이다.
확대전선, 어떻게 양당 구조 해체했나
“황토 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던 신동엽 시인의 시구에나 나올 법한 이 인물은 우루과이의 현 대통령 호세 ‘페페’ 무히카다. 우루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자리한 인구 300만 명의 작은 나라다. 한때는 ‘남아메리카의 스위스’라고도 불린 풍족한 나라였지만, 잇따른 경제위기와 군사정권을 겪으며 이웃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침체와 쇠퇴의 긴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가 중남미 전체에 ‘좌파 붐’이 일던 2000년대 초반, 정확히 말해 2004년에 ‘확대전선’이라는 좌파 정치조직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한 이후 계속 좌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다. 체 게바라, 살바도르 아옌데처럼 의사 출신인 확대전선 소속의 첫 대통령 타바레 바스케스를 이어 2010년에 집권한 이가 바로 무히카 대통령이다.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과 달리 무히카의 이력은 격정적이다. 그는 1960∼70년대에 우루과이를 뒤흔든 투파마로스 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였다. 투파마로스는 쿠바 혁명의 영향을 받아 소수 부유층에게 도시 게릴라 활동으로 맞섰다. 이 때문에 무히카는 14년간 군대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고, 온갖 고문과 탄압에 시달렸다. 민주화로 감옥에서 풀려나자 그는 합법적 정치활동 노선으로 전환해 옛 동지들과 ‘민중참여운동’이라는 정당을 조직했다. 그리고 결국 대통령에까지 당선됐다.
여기에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우루과이의 현 집권당은 확대전선이다. 그런데 무히카 대통령은 민중참여운동 소속이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확대전선이라는 특이한 정치조직 형태에 마주하게 된다. 이 낯선 조직 형태는 무히카 대통령의 청빈한 삶과는 또 다른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확대전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였다. 그동안 우루과이에서는 콜로라도당(‘적색당’이라는 뜻)과 블랑코당(‘백색당’이라는 뜻, 국민당으로도 불림)의 양당 체제가 지속돼왔다. 두 당은 19세기에 한때 치열한 내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교대로 집권하며 정치권을 독점했다. 공산당, 사회당 같은 좌파 정당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들의 득표는 모두 합쳐봐야 8만 표 정도로, 양당 독점 구조를 깨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운동이 폭발하며 새로운 조짐과 시도가 나타났다. 우선 기성 정당인 콜로라도당에서 진보 성향의 이탈 세력들이 나타났다. 공산당과 사회당, 콜로라도당 탈당파는 양당 독점 체제를 극복하려고 광범한 연합조직의 건설에 나섰다. 그 결실이 1971년 확대전선의 출범으로 나타났다.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확대전선은 18.5%(30만 표)라는 만만치 않은 득표를 거두었다. 하지만 곧 군부독재가 시작돼 확대전선은 불법화됐다. 창당 당시의 주요 지도자들은 암살당하거나 해외로 망명해야 했고, 수많은 투사들이 의문사와 고문·탄압에 굴하지 않고 지하활동을 벌였다. 결국 민주화운동의 압박으로 1984년 11월 대통령 선거가 재개됐다. 이 선거에서 확대전선은 21%를 얻어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자료 : 위키피디아

자료 : 위키피디아

다수 득표자가 꼭 대통령이 되진 않아

확대전선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우루과이의 독특한 선거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루과이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상·하 양원 선거를 5년마다 동시에 실시한다. 상원의원은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고, 하원의원은 19개 광역 단위 비례대표제로 선출한다. 흥미로운 점은, 대통령 선거든 상·하원 선거든 각 정당이 복수의 후보나 후보 명부를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한 정당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그 정당의 이름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또한 각 정당의 여러 분파가 소속 정당과 분파의 이름을 동시에 내걸고 독자적인 상원의원 후보 명부와 하원의원 후보 명부를 제출할 수 있다.

유권자는 맘에 드는 한 명의 대통령 후보를 선택한다. 그리고 이 대통령 후보의 소속 정당에서 해당 후보를 지지하는 여러 분파의 상원의원 명부 중 하나에 표를 던진다. 마지막으로 이 상원의원 명부를 지지하는 여러 하위 분파의 하원의원 명부 중 하나에 표를 던진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 선거에 던지는 표와 상·하원 의원 선거에 던지는 표는 서로 연동돼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 후보는 콜로라도당 소속 후보를 찍고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확대전선 소속 분파의 명부에 표를 던질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표를 계산하는가? 대통령 후보 개인이 아무리 많은 득표를 해도 그것이 곧 대통령 당선이라는 최종 결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각 정당 내에서 복수의 후보들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가 누구인지 가린다. 그리고 그 정당 소속 후보들이 받은 지지표를 모두 합해 이 후보의 득표로 계산한다. 즉, 대통령 선거에서 소속 후보들의 득표 총수가 가장 많은 당의 1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다. 상·하원 선거에서는 각 정당의 소속 분파들이 거둔 득표를 모두 합산한 뒤 각 분파들이 소속 정당의 전체 득표에 기여한 만큼 백분율로 계산해 의석을 배분받는다.

1994년 대통령 선거 결과인 78쪽 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94년 대통령 선거에서 콜로라도당과 블랑코당에서는 각각 3명 이상의 후보가 출마했다. 오직 확대전선에서만 1명의 단일후보가 나왔다. 개인 득표만 따지면 확대전선의 바스케스 후보가 1위다. 하지만 최종 집계를 통해 콜로라도당의 훌리오 상기네티 후보가 콜로라도당 후보 중 1위로서 이 당의 후보들이 얻은 표를 모두 차지해 바스케스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상기네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콜로라도당에서 상기네티 후보를 지지한 분파들은 의회 선거에서는, 유효 득표 65만6428표를 통해 콜로라도당이 차지한 전체 의석 중에서 50만760(표)/65만6428(표)에 해당하는 의석을 배당받는다.

정당보다 분파가 오히려 우선하기도

이런 우루과이의 선거제도를 ‘이중동시투표제’라 부른다. 본선 전에 각 당이 치러야 할 예비선거(프라이머리)와 본선이 한 번의 투표로 동시에 실시되는 셈이다. 유권자는 한 번의 투표 행위로 지지 정당을 선택하며 동시에 그 당의 후보 중 가장 맘에 드는 후보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제도는 콜로라도당과 블랑코당이 양당 독점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나온 타협책이었다. 그런데 이 제도의 효과로, 우루과이의 정당들 내에는 분파 구조가 발전하게 되었다. 아니, 정당보다는 오히려 당내 분파들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확대전선의 경우에는 아예 여러 소규모 좌파 정당들이 자당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며 새롭게 상위 정당을 건설하는 길을 택했다. 무히카 대통령이 속한 민중참여운동도 확대전선 소속 정당들 중 하나다. 좌파가 우루과이의 특이한 선거제도에 적응하며 연합전선도 아니고 정당도 아닌 독특한 정치조직 형태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내적 통일성은 오히려 기성의 두 정당에 비해 높다. 콜로라도당과 블랑코당이 계속 복수의 대통령 후보들을 낸 데 반해, 확대전선은 매번 한 명의 단일후보만 냈다.

민주화 이후 우루과이에서는 정치제도 개혁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1999년 선거부터는 각 당에서 한 명의 대통령 후보만 출마할 수 있게 대통령 선거제도가 바뀌었다. 결선투표제도 도입됐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투표와 의원 선거 투표를 연계시키고 당내 분파들이 복수의 의원 후보 명부를 제출하는 제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확대전선은 한마디로 연합전선형 정당 혹은 정당형 연합전선이다. 민중참여운동, 공산당, 사회당 같은 정당들이 독자 조직을 유지하며 활동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연합전선에 가깝다. 하지만 확대전선은 그 자체로 엄연한 정당이다. 정기적으로 당대회를 열고, 두 달에 한 번씩 소집되는 100명 규모의 전국위원회도 있으며, 일상 집행기관으로 통합집행위원회도 있다.

확대전선 내의 각 조직은 독자적인 진보 매체를 운영하기도 한다. 우루과이의 거리에서는 확대전선의 각 분파에서 나온 신문과 잡지를 가판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민중참여운동 같은 조직은 자체 라디오 채널까지 갖고 있다. 확대전선은 그야말로 좌파와 사회운동 세력의 독자적인 시민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로 확산된 지혜로운 집단 실험

확대전선은 그리스(급진좌파연합), 포르투갈(좌파블록), 덴마크(적록연합) 등에 비슷한 형태의 정치조직이 등장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정치가 보수든 진보든 천편일률적인 정당 모델을 반복하는 와중에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정치조직들이 성장해 이미 집권하거나(우루과이) 집권을 넘보고 있다(그리스).

이제는 한국의 좌파 정치세력들도 이 실험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선거 결과만을 노린 기계적 정당 통합이 낳은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뼈아픈 경험을 겪은 뒤이기에 더욱 그렇다. 무히카 대통령이라는 뛰어난 지도자만이 아니라 그런 지도자를 낳은 저들의 지혜로운 집단적 실험에 새삼 주목해야 할 때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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