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이탈리아의 총선 결과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국제적 망신거리 실비 오 베를루스코니가 재기하는가 하면, 코미 디언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신흥 정당 ‘오성 (별 다섯)운동’이 하원 선거 최다 득표 정당 으로 부상했다. 이 대목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그 강력하던 이탈리아 좌파는 다 어 찌 된 것인가?’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한 때 당원 수가 무려 200만 명에 달했다. 1976 년 총선에서는 34.4%를 득표했다. 여기에 사회당(PSI)과 다른 군소 좌파들의 득표까 지 다 합치면 좌파 지지율이 50%나 됐다.
마침 불어닥친 ‘마니 풀리테’ 열풍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하원에서 어 쨌든 과반수를 점한 중도좌파 선거 연합 ‘이 탈리아 공동선’의 주축은 민주당(PD)이다. 당명만 봐서는 이 당이 우파인지 좌파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이 당은 유럽 금융 엘리트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던 전임 총리 마리오 몬티와 함께 긴축정책의 충실 한 집행자를 자처해왔다. 이 때문인지 ‘이탈 리아 공동선’은 온갖 호재에도 불구하고 득 표율이 30%를 채 넘지 못했다(29.54%). 지 난 30년 사이 이 나라 좌파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뒤 이탈리아는 확실히 좌 파 세가 강한 나라였다. 하지만 좌파 세가 강한 데 비하면 사회개혁은 더뎠다. 알프스 북쪽 나라들, 즉 독일, 오스트리아, 스칸디 나비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특히 그랬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좌파의 주도 세력인 공 산당이 ‘집권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는 점 이다. 공산당은 선거 때마다 줄곧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항상 기독교민주당(DC) 이 공산당만 뺀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우파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다른 주요 좌파 정당 인 사회당조차 기독교민주당의 연정 파트너 가 돼서 공산당을 따돌리는 데 한몫했다. 우 파의 장기 집권 체제는 결국 복지국가의 저 발전, 지역 격차, 부정부패, 조직범죄 등 이 탈리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만성 질병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1991년 공산당이 사회민주주 의 노선으로 전환하며 당명을 ‘좌파민주당’ (PDS)으로 바꾼 것은 이념적 모색이기도 하 지만 동시에 새로운 정치 기획의 출발이기도 했다. 노선 전환의 한 원인은 분명 현실사회 주의권 붕괴로 인한 혼란이었다. 공산당은 무 엇보다 ‘공산당’이라는 당명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소극적 동기만 있었던 것은 아 니다. 공산당은 좌파민주당으로 변신함으로 써 드디어 ‘집권 가능’한 정당으로 거듭나려 했다. 이들은 이탈리아에서 독일 사회민주당 이나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역할을 할 정당이 되려고 했다. 마침 이 무렵 이탈리아 정가는 반부패 운동인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의 소 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부패에 깊이 연루 된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은 당 자체가 와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좌파민주당에는 엄청난 역사적 기회였다. 냉전의 긴장이 사라지자 이 탈리아 정치도 다른 서유럽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되는 듯 보였다.
당명에서 ‘좌파’가 사라진 이유
1994년 총선은 이런 기대로 뜨거웠다. 이 때 좌파민주당은 녹색당 등 범좌파를 총결 집한 선거 연합 ‘진보동맹’을 결성해 정권 교 체의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우 파의 총연합이 진보동맹을 제압했다. 진보 동맹이 33%를 얻은 반면, 새 우파 연합은 46.1%를 획득해 우파 장기 집권의 역사를 이어갔다.
그 주도자가 바로 언론 재벌 베를루스코 니다. 그는 자신의 재력으로 옛 기독교민주 당과 사회당의 낡은 정치인들을 다시 끌어 모았고, 언론 장악력을 통해 잠시 진공 상태 이던 우파 정치 공간을 빠른 속도로 메워갔다. 이후 베를루스코니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10여 년간 총리 자리를 거머쥔다. 기독교민주당의 냉전 우파가 물러나자 언론 재벌의 신자유주의 우파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이때부터 좌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범좌파의 관심사는 온통 선거에서 베를루스코니를 이기는 데 집중됐다. 이탈리아판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펼쳐 보이겠다는 애초의 다짐은 반(反)베를루스코니 최대 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면 과제에 우선권을 내주고 말았다.
좌파민주당은 우선 중도우파 정치인들(대개 기독교민주당 좌파 출신)과 제휴하기 시작했다. ‘올리브나무동맹’이라 불린 이 선거 연합은 실제 효력을 발휘했다. 올리브나무동맹은 중도파 명망가 로마노 프로디를 내세워 1996년과 2006년 두 차례 선거에서 승리했다. 덕분에 1990년대 후반 베를루스코니는 권력의 근처에서 맴돌아야 했고, 좌파민주당은 중도우파와의 연정이라는 형태로나마 처음으로 중앙정부 집권의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지속적인 선거 연합의 경험은 점차 정당 질서를 재편하자는 논의로 번져갔다. 좌파민주당 안에서 베를루스코니 집권에 반대하는 모든 정파를 우파든 좌파든 하나의 정당으로 끌어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들이 염두에 둔 정당 모델은 미국 민주당이었다. 정책 노선도 ‘제3의 길’ 일색이 돼갔다. 북유럽식 사회민주당 대신 어느덧 미국 민주당이 새로운 교과서가 된 것이다.
2007년 드디어 이 구상에 입각한 새 정당, 민주당이 출범했다. 올리브나무동맹의 두 축이던 좌파민주당과 프로디 세력이 하나의 당으로 통합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 정계에서는 갑자기 ‘좌파’나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유력 정당이 사라지고 말았다. 현실정치의 한쪽 기둥은 여전히 옛 공산당 출신 정치인들인데 유력 ‘좌파’ 정당은 없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베를루스코니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좋다’는 분위기가 이탈리아 좌파를 이런 지경에까지 내몬 것이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좌파에 민주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당이 좌파민주당으로 바뀔 때 여기에 합류하지 않은 당원들이 만든 공산주의재건당(PRC)이 있다. 녹색당도 있다. 또한 남부 지방에서 목숨을 걸고 마피아에 맞서는 여러 지역 정치 그룹들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공산주의재건당은 5%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좌파민주당 왼쪽의 좌파 세력에게 중요한 실험 무대 역할을 했다.
공산주의재건당, 좌파생태자유
하지만 이들에게조차 ‘반베를루스코니 연합’의 요구는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의 사회적 기반인 노동운동과(흔히 ‘민중의 집’이나 ‘사회센터’로 모인) 지역 사회운동에서도 ‘반베를루스코니 연합’론은 대세였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분위기 탓에 공산주의재건당은 프로디가 이끌던 연립정부에 몇 차례 참여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 소수 좌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2005년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주도해 바꾼 현행 선거 제도다. 이 복잡한 선거 제도는 기본적으로 정당명부비례대표제에 기반하면서도 묘하게 대통령제 요소를 담고 있다. 정당들이 선거 연합을 결성하도록 권장하고, 각 선거 연합이 자신의 총리 후보를 내세우도록 돼 있다. 이렇게 되면 유권자로서는 총리 후보를 보고 표를 던질 수밖에 없어, 대통령 선거에서 흔히 나타나는 양강 구도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현실에서는 결국 베를루스코니 우파 연합과 이에 맞선 민주당 중심 연합이다.
공산주의재건당은 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 중심의 연합에 가담하지 않고 녹색당 등 급진 좌파들만 모아 선거에 독자적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하원 의석 확보 최저선(4%)을 넘지 못해 졸지에 원외 정당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현 선거 제도 아래서 소수 좌파 정당이 현실정치 세력으로 남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렇듯 극히 제약돼 있다.
요즘 옛 공산주의재건당의 정치 공간을 이어가는 것은 ‘좌파생태자유’(SEL)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신생 정당이다. 좌파생태자유는 공산주의재건당 내에서 이른바 ‘무지개 좌파’ 노선에 따라 구좌파와 신좌파를 총결집하려 한 흐름이 좌파민주당 탈당파, 녹색당 내 일부 등과 결합해 만들어진 정당이다. 공산당 출신이면서 가톨릭 신자이고 커밍아웃한 게이이면서 반(反)마피아 운동가이기도 한 풀리아 주지사 니키 벤돌라가 이 당의 얼굴이다. 좌파생태자유는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당 중심의 선거 연합 ‘이탈리아 공동선’에 합류했다. 덕분에 하원(총 617석)에서 37석, 상원(총 301석)에서 7석을 얻었다. 하지만 이 성과는 그릴로 돌풍에 밀려 빛이 바래고 말았다.
사실 그릴로의 오성운동이 내건 ‘직접참여 민주주의 강화’ ‘긴축정책 반대’ ‘환경문제 강조’ 등은 이미 좌파생태자유가 주장해온 내용이다. 하지만 좌파생태자유의 정치색은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에 묻혀 별로 부각되지 못한 반면, 오성운동 쪽은 이런 지향의 대변자로 급부상했다. 어쩌면 좌파생태자유는 생존을 얻은 대신 그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기회를 놓친 것인지 모르겠다.
오성운동, 대안이 되기는 어려워
그렇다고 오성운동이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 소설 창작 집단 ‘우밍’이 2월28일치에 쓴 대로, 오성운동에서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이나 스페인 ‘분노한 자들’ 운동의 이탈리아판을 찾을 수는 없다. ‘1%에 맞선 99%’가 이들의 정신인데, 그릴로나 그의 동지인 인터넷 재벌 잔로베르토 카살레기오는 ‘1%’에 속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쉽게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를 주장할 수 있는 것도, 기존 거대 정당과의 연합에 기대지 않고 독자 정당을 운영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재력 덕분이다.
비록 오성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여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이탈리아에는 이런 풍자극 이상의 값어치를 지닌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하자고 좌파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당장의 요구만을 좇아 움직여온 좌파는 지금 길을 잃은 상태다. 안토니오 그람시로부터 반파시즘 레지스탕스, 그리고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신좌파운동으로 이어져온 뜨거운 역사가 지금 통째로 심판대 위에 서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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