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스페인의 재정위기 때문에 세계인의 눈이 지중해의 유럽 쪽 연안에 쏠린 와중에 지중해 반대편에서는 내전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다름 아닌 시리아다. 2011년 벽두의 튀니지에서 ‘아랍의 봄’의 첫 봉화가 오른 이후 곧바로 그 횃불을 이은 곳 중 하나가 시리아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혁명이 시작된 이집트에서는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시리아에서는 바샤르 아사드 세습 독재정권과 혁명 대중 사이의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
각 지역에서 혁명운동을 이끌고 있는 것은 지역조정위원회들이다. 민주화 시위의 주축인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투쟁 조직들을 결성했다. 그래서 정치세력들과의 연계는 약하다. 반면 서방세계가 혁명 지도부로 인정하고 있는 시리아 국민평의회(SNC)는 정파들의 연합체다. 현재 SNC는 시리아의 이웃 나라인 터키의 이스탄불에 망명 본부를 꾸리고 마치 임시정부처럼 행동하고 있다. 대다수 지역조정위원회들도 SNC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반(反)아사드는 곧 이슬람주의자?
SNC에 여러 정파가 공존하지만 사실 그 과반수는 무슬림형제단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주의자다. 이 때문에 ‘반아사드 세력은 곧 이슬람주의자들’ 식으로 여기는 시각이 많다. 누구보다도 아사드 정권이 이런 인식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진실이 아니다. 시리아에는 독재정권과 이슬람주의자들 말고도 혁명 진영의 또 다른 주요 구성 요소인 다양한 세속 좌파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본래 시리아는 중동 지역에서 좌파 정치가 가장 발전한 곳이다. 프랑스에 맞서 독립투쟁을 이끈 것이 좌파 세력들이었고, 독립 이후에도 좌파 정당들이 정국을 주도했다. 아랍 세계에서 공산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한 나라가 시리아라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시리아 공산당은 1954년 총선에서 서기장 칼리드 박다시를 당선시켜 아랍권 공산당들 중 첫 원내 정당이 되었다.
이런 세속 좌파 세력들 중 가장 강력했던 것은 바트주의자다. ‘바트’는 아랍어로 ‘부흥’을 뜻한다. 바트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에 맞서 아랍 세계의 부흥을 꾀하는 좌파 민족주의 이념이다. 바트주의의 내용은 세속주의, 아랍 사회주의, 범아랍주의로 요약된다. 바트주의자들은 ‘아랍 사회주의’란 이름으로 일종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해 계급 갈등을 극복하려 했다. 그리고 서구 열강이 식민 통치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구획한 국경선을 넘어 아랍 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대통합하려 했다(범아랍주의). 이에 따라 시리아 바트주의자들은 1950년대에 이집트의 나세르 정부와 함께 통일 아랍 공화국을 건설하려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말이다.
비극은 바트주의의 정치 노선에서 시작됐다. 바트주의자들은 아랍 세계의 대통합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바트당이 각국의 정치 및 사회의 전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트당이 사실상 1당 통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리아든 이라크든 일단 바트당이 집권한 나라에서는 이후 이 당의 장기 독재가 시작됐다. 스탈린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1당 독재 체제는 결국 1인 독재 체제로 치닫게 마련이다.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이 결국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리아에서는 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피즈 알아사드가 30년간 권력을 독점했다.
알투르크파 공산당, 민주아랍사회주의연합
흥미로운 대목은 아사드 체제의 경우 바트당 이외에 다른 정당들의 활동을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단,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데는 조건이 따랐다. ‘바트당이 정치와 사회를 영도한다’는 헌법 제8조를 받아들여야 했고, 바트당이 주도하는 정당연합 ‘국민진보전선’에 가입해야 했다. 그러면 선거에 참여해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권당은 바뀔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바트당이 여당이며 원내 제1당이었다.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유신 체제와 유일 체제가 수립되던 그때(1970년대)에 시리아에는 바트당의 권력 독점 체제가 수립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바트당과 경쟁하며 시리아 정치를 이끌던 다른 좌파 정치세력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일종의 관제 야당이 되더라도 일단 국민진보전선에 가입해 합법 활동을 보장받을 것인가, 아니면 비합법 투쟁에 나설 것인가.
이 선택 앞에서 모든 좌파 정치세력들이 예외 없이 체제내파와 반체제파로 양분됐다. 가령 시리아 공산당 안에서 작은 스탈린 역할을 하고 있던 박다시는 국민진보전선 가입을 결정했다. 이후 공산당은 정부 정책들에 이견을 내기는 해도 권력 자체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리아에는 박다시파 공산당만 있는 게 아니다. 당내에서 그렇지 않아도 박다시의 전횡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던 반대파들은 국민진보전선 가입 결정에 맞서 분당을 결행했다. 사실 이들도 처음에는 아사드 체제에서 합법적 야당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했다. 하지만 아사드 정부가 레바논 내전에 개입해 이스라엘 정부와 뒷거래를 하고 극우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하는 것을 보고서는 완전히 미련을 접었다.
이들은 박다시파 공산당에 맞서 ‘시리아 공산당-정치국파’를 따로 만들었다. 아사드 체제에서 2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 ‘시리아의 만델라’라고 불리는 리아드 알투르크가 이 당의 역사적 지도자다. 그래서 시리아 공산당-정치국파를 ‘알투르크파 공산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산당만이 아니다. 나세르주의자도 둘로 나뉘었다. 시리아의 나세르주의자는 바트당과 비슷하게 ‘아랍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도 바트주의자들이 포기한 시리아-이집트 통합의 꿈을 버리지 않은 이들이다. 이런 나세르파 중에서 국민진보전선 가입을 받아들인 쪽은 현재 ‘아랍민주연합주의당’이라는 관제 야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반대한 무리는 ‘민주아랍사회주의연합’을 결성해 반아사드 투쟁에 나섰다.
NCC, 아사드와의 협상 열어놓은 이유
반아사드 민주화운동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알투르크파 공산당이나 민주아랍사회주의연합처럼 기존 좌파들 중에서 반체제 노선을 선택한 세력들이다. 반체제 좌파들은 한국에서 광주항쟁이 벌어진 1980년에 아버지 아사드의 철권통치에 맞선 최초의 대중봉기가 일어나자 ‘전국민주행진’이라는 연합체로 총결집했다. 당연히 엄청난 탄압이 뒤따랐다. 수많은 투사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공산당-정치국파의 알투르크는 이때 투옥돼 18년 뒤인 1998년에야 풀려나게 된다.
2000년 6월 아버지 아사드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이른바 ‘다마스쿠스의 봄’ 때도 반체제 좌파들은 민주화 여론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다. 전국민주행진이 곧바로 국내 활동을 재개했다. 이제는 ‘재야의 어르신’이라는 호칭으로 통하게 된 알투르크는 감히 “독재자는 죽었다”고 말해 체제의 인내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다마스쿠스의 봄’은 아들 아사드의 집권과 함께 짧은 수명을 다했다. 하지만 그 여진은 2005년 민주화 세력들이 총결집해 연서명한 ‘다마스쿠스 선언’으로 이어졌고 결국 2011년 혁명 운동으로 폭발하게 된다.
지난해 대규모 평화적 거리시위에서도 전국민주행진은 나름대로 구심 역할을 했다. 터키에서 SNC가 결성될 때 시리아 내에서는 전국민주행진을 중심으로 ‘민주 변혁을 위한 전국조정위원회’(NCC)가 출범했다. NCC의 의장은 민주아랍사회주의연합 소속인 인권변호사 하산 압둘아짐이다. SNC가 이슬람주의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여기에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좌파가 결합한 구성을 보이는 데 비해, NCC는 시리아 내에서 오랫동안 비합법 투쟁을 벌여온 좌파 정치세력들로만 구성돼 있다. 현재 SNC와 NCC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조직으로는 알투르크파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인민당(2005년에 개명)이 유일하다.
SNC와 NCC는 혁명 지도부의 통합을 위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중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통합은 쉽지 않다. 이것은 SNC 다수파와 NCC 사이의 의견 차이일 뿐만 아니라 SNC 내 좌·우파 사이의 쟁점이기도 하다.
우선 서방의 군사 개입 문제다. SNC의 다수파는 서방세계가 시리아에 리비아식 군사 개입을 단행하기 바란다. 반면 NCC는 혁명이 반드시 시리아 민중의 힘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세의 개입은 혁명을 왜곡하고 시리아 국민국가를 해체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음으로 아사드 정권과의 대화 문제다. SNC와 NCC 모두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이 목표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SNC가 아사드 정권과의 대화를 일절 거부하는 데 반해, NCC는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NCC의 이런 태도는 내전 확대만은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제국의 ‘제5열’ 노릇 견제 위해
이런 견해차를 놓고 SNC가 더 ‘혁명적’이고 NCC는 ‘타협적’이라고 평가하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태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 것이다. NCC야말로 시리아 사태를 평화적 대중혁명으로 전개하려는 세력들의 결집체다. 이에 반해 SNC에 참여한 상당수의 세력은 시리아를 ‘제2의 리비아’로 만드는 것도 불사하는 쪽이다. 당장 전면적 무장투쟁에 나서자는 것만 보면 SNC 다수파가 더 급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이들은 ‘아랍의 봄’을 제국주의의 또 다른 세력 확장 기회로 변질시킬 ‘제5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시리아에 SNC 말고 NCC도 존재한다는 것이, 반체제 세속 좌파들의 대오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아랍의 봄’이 제국주의의 역사에 다시 포획되는 것을 막는 엄청난 과제가 지금 시리아 좌파의 어깨에 놓여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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