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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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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남자

5천만의 ‘캡틴’의 은퇴
등록 2014-05-21 14:28 수정 2020-05-03 04:27
한일전 일본 사타마이 남아공월드컵 평가전 한국-일본 선제골 축구선수 박지성.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일전 일본 사타마이 남아공월드컵 평가전 한국-일본 선제골 축구선수 박지성.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02년 한-일 월드컵. 히딩크의 거듭된 선수 실험이 불안했던 한국 언론은 한국의 골결정력을 해결하려면 한국 축구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인 미드필더 윤정환의 기용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윤정환이 중용될 경우 최종 엔트리 탈락 대상으로 대표팀에서 역할이 모호하던 21살의 신예 박지성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러나 출중한 패싱 능력에 비해 활동량과 수비 가담이 적은 윤정환의 스타일은 히딩크가 세공해온 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한국 축구의 단점이었던 투박함을 터프함으로 진화시켜 90분 내내 상대를 압박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한국 축구의 필승 전략이라 믿었다. 히딩크에게는 경기 뒤 3분간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만들 수 있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90분 내내 경기장을 헤집고 뛰어다닐 전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된 인물이 박지성이었다. 한국 언론에 ‘그저 열심히 뛰어다니는 특징 없는 선수’로 폄하되던 박지성에게서, 히딩크는 그 ‘열심히 뛰어다니는 능력’으로 그가 창출해내는 우리의 공간과 삭제해버리는 상대의 공간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어떤 한국인 감독도 실험해보지 않았던 ‘공격수’ 박지성의 화력을 가동했다. 박지성에게 또 하나의 심장이 장착되던 순간이다.

지난 10년간의 한국 축구는 박지성의 역사였다. 주말 밤이면 프리미어리그를 보고, 월요일 아침엔 박지성의 경기를 회고하는 모습은 한국인의 흔한 풍경이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초기의 박지성은 긱스와 호날두를 제치고 선발로 출전하는 아시아인이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메시와 피를로를 봉쇄하기 위한 퍼거슨의 필승 카드였다. 한-일전에서 상대의 수비를 파괴하고 중거리 슛을 성공시킨 뒤 숨죽인 일본 관중석을 무심히 쳐다보며 달려간 그 격조 높은 세리머니는 한국 축구의 긍지였다.

2003년 네덜란드 리그 진출 초기 박지성의 능력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동료 선수 판 보멀은 1년 뒤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공개 사과와 함께 그의 능력을 칭송했다. 유럽 진출 첫해에 박지성을 조롱한 네덜란드 팬들은 10년이 지난 2014년 4월, 거장이 되어 돌아온 박지성의 (은퇴 경기가 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교체돼 나오는 박지성에게 기립 박수와 함께 공식 응원가 ‘위송빠레’를 합창하는 방법으로 존경을 표했다. 2002년 윤정환이 아닌 박지성을 선택한 히딩크를 비난했던 기자들은 그 뒤 10년간 박지성이 안겨주는 기삿거리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결국은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남자. 박지성이 위대한 것은 그가 한국 축구 너머의 유전자를 가진 특별한 천재가 아니라, 가장 한국 축구적인 것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14일 박지성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했던 그 무릎이 수명을 다한 것 같다. 그 유명했던 두 개의 심장도 이제 인간의 심장으로 돌아갔다. 메시가 아니더라도, 호날두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박지성이 있어 행복했다. 고마웠어요, 박지성. 당신은 5천만의 캡틴이었어요.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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