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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라, 차범근처럼

스포츠 스타가 늙는 법
등록 2014-02-15 13:36 수정 2020-05-03 04:27

모든 것의 시작은 차범근이었다. 2002년 이후 박지성을 필두로 축구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급물살을 탔고, 지금 국가대표의 주전 대부분을 ‘해외파’로 구성하게 되었지만, 사실 그 누구도 기록과 평판에서 차범근이라는 이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분데스리가 308경기 출전에 98골을 기록하고(모든 골이 필드골이다), 발라크·칸·오언 등의 슈퍼스타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이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차붐은 막을 수가 없다. 해결이 불가능한 존재다”라는 항복선언(?)까지 받아낸 이가 차범근이다.
해외 축구 중계가 없던 어린 시절, 멀리서 차범근이 써내려가던 승리의 역사를 전하던 짧은 뉴스들은 그 시절 소년들을 매혹시켰다. 한 세대 위의 어른들은 1976년 박스컵 말레이시아전에서 1-4로 뒤지던 후반전 마지막 5분을 남기고 혼자서 3골을 폭격하며 동점을 만들어낸, 만화 스토리라고 하기에도 너무 유치한 차범근의 그 위대한 실화를 ‘직관’한 사실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억이라고 우리에게 자랑했다.
어느새 환갑을 넘긴 이 사람의 노년은 더 흥미진진하다. 이제 원로가 된 그의 또래들이 축구계의 이런저런 감투를 쓰고 있을 때, 그는 축구 해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따뜻하고 꾸밈없는 글들로 소탈한 일상과 축구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원칙이나 꼭 해내야 할 일이 아닌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다투는 일에 끼어들고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일은 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감투를 쓰는 일은 폼나지만 여전히 내 결정은 축구교실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머물고 맙니다.” 2011년 대한축구협회의 부회장직 자리를 고사하며 그가 남긴 말이다.
2011년 박지성이 고작 30살의 나이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할 때, 축구계 원로들이 ‘진위 파악’을 추궁하는 동안 차범근은 맞으면서 축구를 배웠고 국위 선양이라는 대의 앞에 망가지고 있던 선수의 몸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과 비통함을 표했다. 연재 중인 에세이를 통해서는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 중인 손흥민을 친아들처럼 자랑스러워하고, 몇 번의 실수로 정신적으로 무너진 골키퍼 정성룡을 위로한다. 재래시장 마니아로서 선거철에 사람들을 시장으로 몰고 와 사진을 찍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의 에세이를 통해 우리는 30년 만에 극장을 찾아 그가 본 영화가 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종목을 불문하고 그 어떤 스포츠계 원로들도 차범근의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한 사례는 없었다. 이름 석 자만으로도 감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닐 수 있었을 이 갈색 폭격기는 지금 따뜻한 마을버스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와 그가 축구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를 나눠준다. 그의 전성기를 ‘직관’하지는 못한 젊은 세대는, 차범근의 따뜻한 노년을 직관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그는 위대한 축구선수이자, 훌륭한 어른으로서 자신의 전설을 완성해가고 있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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