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것은 확실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인생 목표가 된다는 것. 많은 역사적 순간은 어쩌면 이런 꿈의 도미노로 이루어져 있는지 모른다.
미국여자프로골프 메이저 대회 3연승을 달성한 박인비는 유명한 ‘박세리 키즈’다. 박세리가 양말을 벗어던지고 그 배경음악으로 가 우리 귓가를 때리던 때, 10살 소녀 박인비는 골프채를 잡았다고 한다. ‘언젠가 나도 세리 언니처럼 되리라.’
그렇다면 반대로 누군가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언젠가는 박세리보다 박인비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된다. 스포츠 세계는 냉정해서, 누군가의 기록은 반드시 깨지게 돼 있다. ‘인간새’ 이신바예바의 기록도, ‘피겨여왕’ 김연아의 점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꿈’에 의해 새로 쓰일 것이 분명하다. 영웅은 새로운 영웅으로 대체된다. 차범근이 박지성으로 대체됐고, 박찬호는 류현진으로 대체되고 있다.
다만, 우리는 지나간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멀어진 것들의 가치를 너무 빨리 봉인하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스포츠 스타들은 상대적인 차이는 있어도 그 전성기가 짧다. 그들의 삶이 박제되지 않는 이상, 운동선수는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 영웅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가능성이 가장 큰 존재다.
7월 중순 마무리된 국제축구연맹(FIFA) 20살 이하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30년 만의 4강 신화 재연을 눈앞에 뒀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박종환 감독이 한국 축구를 국제대회 사상 첫 4강에 올려놓았을 때 우리도 놀랐고, 세계도 놀랐다. 한국은 30년 만에 다시 4강 목전까지 갔지만 아쉽게 이라크에 져 8강에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8강전이 열리기 전, 박종환 감독을 만나 후배들의 활약상에 대해 기분이 어떠냐 물으니 “이제는 그만 새로 역사를 써야지. 언제까지 도전만 하고 있어”라는, 푸념 아닌 푸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잔인하게 운동했어. 우리가 세계대회에 나가 이길 방법이 뭐가 있겠어? 상대보다 한발 더 뛰고, 한발 먼저 잡는 수밖에 없었지.”
대체되지 않은, 대체되지 못한 영웅은 더 많은 세월이 흐르지 않는 한 우리가 안고, 기억해야 할 존재다. 역대 최약체 팀이라 평가받던 2013년 20살 이하 대표팀은,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한국 축구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지만 1983년 청소년 대표팀처럼 역사에 남지는 못했다. 영웅은 아직 대체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많은 영웅들이 살아 있다.
SBS ESP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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