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사람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하면 한없이 꼬인다. 인연도 그렇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관계는 좀처럼 정상 궤도로 돌아오기 힘들다. 축구 종가의 한 클럽이 한국 축구와 이토록 질긴 악연이 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퀸스파크레인저스(QPR)다.
돌이켜보면 첫 만남부터 ‘악몽’이었다. 박지성이 갑작스레 맨유를 떠난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다음 행선지가 프리미어리그의 ‘거의’ 꼴찌팀이었다는 사실이 준 충격은 정말로 컸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였을까? 놀랍게도 여론은 급속도로 정화됐다. 한국에 존재하는 프리미어리그 팬들은, 물론 대부분이 박지성의 팬이었겠지만, 이 클럽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일반 대중에게도 QPR는 하루아침에 맨유를 제치고 국민클럽처럼 회자됐다. “제발 한국 사람이면 QPR 응원합시다”라는 말은 축구 종가와 몇만km는 떨어진 아시아의 작은 반도에서 진심 어린 호소 같은 것이 됐다. ‘제한맨’(제발 한국 사람이면 맨유 응원합시다)에 이어 ‘제한큐’란 단어가 등장했다.
우리 축구팬들의 정서는 확실히 종가의 ‘쿨한’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표팀을 애국심에 기반한 성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문화나 클럽에 열성적인 팬들의 열정 모두 본질적으로는 다른 나라 팬들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에게는 ‘정’(情)이라는 것이 있다. 박지성의 동료가 초코과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우체국 택배의 위엄을 과시하며 그 선수에게 초코과자를 보내주는 팬들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조공’이라며 조롱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참 한국팬들답다’는 생각을 했다. 사대주의라든지 도를 넘은 팬심이라든지 그런 외부적인 이야기들을 배제한다면, 결국 그것은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일 테니까. 하지만 본의 아니게 혹은 결과적으로 질긴 악연이었는지, QPR는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그 마음을 우롱했다.
그들은 박지성을 영입할 때 적어도 그의 가치와 영향력을 더 정확히 인지했어야 하고 또 활용했어야 한다. 그의 무릎이 경기에 나설 수조차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박지성이 이토록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또 결국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돼버린 상황에 대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박지성은 정말 ‘팀 성적은 신경 쓰지 않고 돈만 밝히는 선수’ 중 하나였는가? 우롱의 압권은 내한 경기의 취소다. QPR는 오는 7월 경남 FC와 친선경기를 하기로 합의했고, 경남은 박지성·윤석영의 의무출전 규정까지 계약서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한국팬들의 여론이 싸늘해지자 결국 종이 뒤집듯 너무 쉽게 내한경기를 취소했다. 전세계에서 축구로 가장 마케팅을 잘한다는 나라의 클럽이 이렇게까지 어떤 나라의 팬들에게 철저히 욕을 먹기도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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