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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째 맞대결 승자는?

등록 2013-03-09 04:29 수정 2020-05-03 04:27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을 한 달여 앞둔 1994년 1월6일, 미국인들은 충격적인 뉴스를 접한다. 미국의 피겨 스타 낸시 케리건이 올림픽 미국대표 출전권이 걸린 전미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전날 연습을 마치고 탈의실로 들어가다가 괴한들에게 무릎을 몽둥이로 가격당하는 피습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건 이 사건을 사주한 이가 케리건과 뜨거운 라이벌 관계를 이뤘던 토냐 하딩이었다는 것이다. 케리건과 하딩이 역대 여자 싱글 최고의 라이벌이었다면, 남자는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와 브라이언 오서(캐나다)가 꼽힌다. 둘은 1988년 캘거리 겨울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는데, 이 경기는 ‘브라이언 전쟁’으로 불리며 피겨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히고 있다.
역대 피겨 최고의 라이벌
그런데 미국의 이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 선정한 ‘역대 피겨스케이팅 최고의 라이벌’에서 하딩과 케리건은 2위, 보이타노와 오서는 3위였다. 1위는 누굴까. 바로 한국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다. 두 선수는 1990년생으로 23살 동갑내기인데다 생일도 김연아가 9월5일, 아사다가 9월25일로 불과 20일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키와 몸무게도 김연아 164cm, 47kg, 아사다 163cm, 47kg으로 엇비슷하다. 어쩌면 둘은 태어094날 때부터 라이벌의 운명을 타고났는지 모르겠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노비스’, 즉 12살 이하 어린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이루고 있다.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배운 김연아는 12살 때 러츠·플립·살코·토루프·루프까지 5가지 트리플 점프 기술을 모두 완성해 세계 무대에서 통할 재목으로 인정받았다. 아사다도 12살 때 처음 트리플악셀(공중 세 바퀴 반 회전)에 성공했고, 14살 때인 200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2004~2005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트리플악셀을 앞세워 정상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김연아는 2005년 3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에 피겨가 도입된 지 111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두 선수는 2006년 12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시니어 무대 첫 맞대결을 펼쳤다. 김연아는 고관절 부상에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우승을 차지했고, 아사다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듬해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을 펼치며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최고 기록인 71.95점을 받았다. 하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잦은 점프 실수로 동메달에 머물렀다. 아사다는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김연아와의 시니어 무대 맞대결 전적 1승1패를 만들었다.
김연아가 2008년 고관절 부상이 심해져 주춤하는 사이 아사다는 2007~2008 시즌에 5개 대회에 출전해 4개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하지만 아사다가 우승하지 못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김연아가 부상 투혼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김연아는 메인 훈련지를 캐나다 토론토로 옮기고 재활과 훈련을 병행하며 마침내 부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게 된다. 2008년까지 3승5패로 뒤지던 아사다와의 맞대결 전적도 2009년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를 꺾은 데 이어 2009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마침내 5승5패를 만들었다. 특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최종 합계 207.71점으로, 신체점제가 도입된 이후 여자 싱글 선수로는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어 2009년 10월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도 다시 한번 역대 최고 점수(210.03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우승했고, 아사다와의 맞대결에서도 6승5패로 앞서기 시작했다.
두 선수 맞대결의 하이라이트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이었다. 2010년 2월24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가 먼저 연기를 펼쳤는데 73.78이라는 개인 최고 점수를 세웠다. 아사다의 지도자인 타티아나 타라소바 코치는 격렬한 몸짓과 환호성으로 옆에 있던 김연아를 자극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침착하게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를 연기해 78.50점으로 순식간에 아사다의 점수를 넘어섰다.
소치로 가는 길, 첫 대면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에 4.72점 앞선 김연아는 이틀 뒤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 먼저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150.06이라는 엄청난 점수를 받으며 최종 합계 228.56점으로 여자 피겨 싱글 역사상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곧이어 아사다가 상기된 표정으로 링크에 들어섰지만 최종 합계 205.50점에 그쳤다. 결국 김연아가 23.06점이나 차이를 벌리며 아사다를 누르고 올림픽 금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 둘은 슬럼프에 빠졌다. 김연아는 올림픽 후유증을 앓았고, 아사다도 그해 12월 어머니가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나며 상심의 늪에 빠졌다. 하지만 둘은 이번 시즌 나란히 성공적으로 복귀해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까지 라이벌전 시즌2를 예고하고 있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현재까지 7승6패로 김연아가 근소하게 앞서 있다. 둘은 3월15일(쇼트프로그램)과 3월17일(프리스케이팅)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년 만에 맞대결을 펼친다. 둘의 14번째 맞대결에선 과연 누가 웃을까.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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