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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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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홍명보! 왜 망설이는가


대표팀 감독은 경기 조율자 아닌 한국 축구 기획자
장악력·선호도·장기비전 다 갖춘 이는 한 사람뿐
등록 2013-06-19 17:56 수정 2020-05-03 04:27

축구 경기에서 과연 감독이 필요할까. 물론 감독이 없으면 출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경기가 성립하려면 누군가 감독석에 앉아야 하고, 감독관에게 제출하는 서류의 빈칸에 자기 이름을 써내야 한다. 팀을 대표해 기자회견을 할 사람도 필요하고, 유력 인사들이 방문했을 때 나가서 답례할 사람도 필요하다. 경기가 시작되면, 다른 종목과 달리, 축구감독이 경기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다. 6만여 명이 함성을 질러대는 경기장에서 공격수에게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사자후를 가진 감독은 드물다. 다급할 때는 손짓 발짓 써가며 전술 지시를 내리지만 정확히 전달되기 어렵고, 전달됐다 해도 축구 경기의 특성상 선수들이 격류 속에서 새로 전달된 지시 사항을 이행하기 어렵다.

6월18일 이란전을 끝으로 최강희 감독이 K리그 전북으로 돌아간 다음을 두고 설이 난무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을 응집할 ‘아우라’를 가진 인물로 홍명보 감독(오른쪽)이 첫손에 꼽힌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6월18일 이란전을 끝으로 최강희 감독이 K리그 전북으로 돌아간 다음을 두고 설이 난무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을 응집할 ‘아우라’를 가진 인물로 홍명보 감독(오른쪽)이 첫손에 꼽힌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축구감독, 우연과 필연의 거리를 좁히는 자

2012~2013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조제 모리뉴 감독은 상대팀 도르트문트의 수비수 마르첼 슈멜처에게 작전 지시를 부탁한 적이 있다. 슈멜처가 스로인을 위해 다가오자 모리뉴는 “외질에게 움직임을 빠르게 가져가라고 전해달라”고 했고 슈멜처는 인터뷰에서 “그런 감독은 처음 봤다. 미친 것 같았는데 아무튼 그의 말을 외질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감독이 없어도 되는 게 아닌가. 아르센 벵거·조제 모리뉴·핌 베어벡·박항서 등이 경기 중 퇴장을 당해 선수들은 감독 없이 경기를 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차범근 감독의 중도 경질로 김평석 코치가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를 맡았다. 어떤 경우에는 감독이 현장 지휘를 할 때보다 더 응집력이 높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황을 비정상적 상태로 본다. 감독이 급작스레 퇴장당해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결집되는 것은 그 누구도 구상하지 않는 작전이다. 우연과 필연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현대 축구를 연구하고 자기 팀을 훈련하고 상대 팀을 분석하는 자, 그를 우리는 감독이라고 부른다.

6월18일 이란전을 앞둔 현재 한국 대표팀의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은 8부 능선을 넘은 상태다. 우리가 이란에 대패하고 우즈베키스탄이 카타르에 대승하면 위험하지만, 현재의 팀 능력과 분위기 그리고 네 나라의 역대 전적을 보면 이 극단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6월18일, 최강희 감독은 전북으로 돌아간다. 취임 때 이미 대한축구협회와 공인한 사항이다. 어찌 보면 매우 위험한 약속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가 맡았던 기간의 훈련 내용, 전술 과제, 축구 철학, 선수 기용 등은 한국 축구의 장기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자료로 남지 않게 된다.

최 감독을 옹호하자면, 그의 목표는 오직 본선 진출이었다. 그래서 경기 때마다 주어진 조건 내에서 단기전 승부에 필요한 극단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3월 카타르전의 베스트 11명 중 무려 7명이 바뀌어 레바논전에 나섰고,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다시 6명이나 바뀌었다. 최종예선에서 5경기 이상 뛴 선수는 곽태휘·기성용·김보경뿐인데, 이 중에서 기성용은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 마지막 3경기에서 후보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에도 불구하고 1년6개월에 달하는 재임 기간이 전술적으로는 무위로 그치게 되었고, 후임자는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곧 K리그는 혹서기 휴식에 들어간다. 해외 리그는 8월 중순 이후에야 시작된다. 후임자가 선수들을 실질적으로 파악할 시간이 별로 없다. 가을에 들어서서 두어 달 파악하다보면 추위가 다가오고 마침내 12월7일이 된다. 본선 조 추첨이 열리는 날이다. 그 이후에는 확정된 상대팀을 겨냥한 전략 분석과 훈련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두 개의 길이 있다. 1년짜리 감독으로 가는 것이다. 단기전에 강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나는 2006년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역대 최악의 대표팀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가 알고 보니 족집게 도사도 아니었고 독일 현지에서 곧바로 러시아로 날아간 뒤 소식이 영영 끊긴 전형적인 ‘먹튀 감독’이기 때문이다. 꼭 그와 같이 형편없는 태도를 가진 감독이 아니더라도 만약 1년 단기 감독을 선임한다면 그는 브라질 본선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 축구의 장기 발전에 큰 공백만 남길 것이다. 중도 경질된 조광래와 최강희 감독의 임기까지 더해보면 무려 5년 가까이 한국 축구대표팀은 ‘단기 처방’만 받다가 끝나게 된다. 악몽이다.

그가 실패하면 또 어떤가

다른 길이 있다. 선수들을 파악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야 한다. 선수들이 그를 잘 따른다면 더할 나위 없다. 자주 소집할 수 없는 대표팀을 맡아 일정한 성취를 낸 경험이 있으면 더 낫다. 특히 브라질 월드컵 이후에도 한국 축구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합당한 감독이 몇 명 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김호곤 울산 감독이나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이름도 거론하지만 전술적으로나 세대적으로 뒤로 걷는 듯한 느낌이다. 홍명보 감독의 이름이 그래서 거론된다. 혹자는 브라질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홍명보 개인에게 치명타가 된다고 한다. 글쎄, 누구든지 그 경우에는 상처를 입는다. 상처를 입으면 또 어떤가. 그 내용을 정확히 복기하고 보완해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지향하면 된다. 독일의 요하임 뢰브 감독은 코치 시절을 포함해 10년 가까이 ‘독일 축구’를 맡고 있다. 그런 감독이 필요하다. 적어도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전망하는, 직업 그 자체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인 사람이 필요하다. 홍명보라면 그 시련과 영광의 길을 함께 갈 만한 이름 아닌가.

정윤수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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