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 이 지면과 그 밖의 기회를 통해 1년여 동안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최강희 감독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어쩔 수 없었던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 그의 결정을 지지했다. 그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서 감독직을 수락했다. 한때 동고동락한 오랜 선배이자 동료인 전임 조광래 감독이 조중연 집행부의 조급증으로 경질된 마당이었기에 애초 그는 그 ‘독배’를 마시기 꺼렸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대표팀 감독 스타일이 아니라 클럽 감독 스타일’이라고 자주 말해왔다. 1년 내내 한솥밥을 먹으면서, 진자리 마른자리 챙기면서, 다그치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하나의 팀을 가꾸는 것이 그의 특장이었다. 전북이라는 K리그의 강팀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은 역할이 다르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선수들 중에서 23명을 엄선해 단기간에 자기만의 스타일로 조련한 뒤 단기전에서 끝장내야 한다. 자신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고 거듭 말했으나 상황이 그를 감독으로 만들었다.
기성용 사태, ‘인성’과 ‘SNS’ 문제가 아니다초반의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전술적 특징이 희미했고 시간이 흐르며 팀 내 잡음도 들려왔다. 특히 남은 세 경기가 문제였다. 레바논전에선 혼란에 빠졌고 우즈베키스탄 선수의 자살골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마지막 이란전에서는 패했다. 그리고 드디어 파문이 터졌다. 기성용이 최강희 감독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구가 드러났다. 몇몇 해외파 선수들이 그와 동일한 정서를 갖고 그동안 팀 소집에 응했거나, 아니면 발탁이 안 되었을 때 그들끼리 불만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한축구협회가 진상 조사를 한다는 후속 보도까지 나왔다.
흡사 ‘정상회담 발언 전문’을 다 까보자는 식의 이런 대혼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어떤 이는 기성용을 비롯한 해외파 몇 명의 ‘인성’을 논한다. 나는 ‘인성’이니 ‘정신교육’이니 하는 말에 담긴, 파시즘적 뉘앙스를 극구 싫어하지만 이 선수들의 경솔한 말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SNS 같은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조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문제는 SNS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은 한국 축구계의 오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와 그러한 것에서 지리적·정서적으로 조금은 멀리 벗어나 있는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발생한 균열이다. 이 균열은, 장차 이런 현상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으로 이어져야지 ‘SNS 금지’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까마득한 후배를 ‘비겁자’라 부르는 건 괜찮나정작 중요한 건 최강희 감독의 인터뷰다. 그는 지난 6월18일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뒤 몇 차례 언론 인터뷰를 했다. 전체적으로는 회한에 가득 찬 토로였다. 그 와중에 기성용의 이른바 ‘지도자 자질’ SNS 멘션 얘기가 나왔고 ‘혈액형별 선수 특징’ 같은 얘기도 나왔다. 원래 격의 없이 농담을 섞어가며 담화를 나누는 최 감독의 스타일상 ‘혈액형’ 얘기는 가벼운 에피소드다. 그러나 ‘기성용은 비겁하다’고 말한 것은 정확한 팩트다.
최 감독은 “이천수나 고종수처럼 욕먹어도 자기 표현하는 선수들이 좋다. 용기가 있으면 찾아와야 한다. 그런 짓은 비겁하다. 뉘앙스를 풍겨서 논란이 될 짓은 하면 안 된다”(, 2013년 7월3일)라고 말했다. 이 말이 논란이 되자 최 감독은 다른 인터뷰에서 맥락을 빼고 보도되니까 왜곡됐다고 했다. 이렇게 말이 이어지면 곤란하다.
누군가는 기성용이 축구 대선배(최 감독)를 조롱한 것을 비난한다. 원래 ‘황태자’니 뭐니 하는 부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 또한 기성용의 발언이나 축구장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까마득한 후배를 ‘비겁자’라고 부르는 것은 또 괜찮은가.
최 감독은 퇴임 뒤 여러 인터뷰에서 시한부 감독이 아니라 월드컵 본선까지 임기가 확정돼 있었더라면 선수 선발이나 평가전 등을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해외파’ 몇 명도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가 있다 해도 본선에 대비해 다 뽑아서 ‘안고 갔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철저히 시한부 감독”이었고 오직 본선 진출이 유일무이한 숙제였기 때문에 단기전에 몰입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가 독이 든 잔을 받아든 순간부터 문제는 예견됐다. 그는 정말로 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으려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그런 최 감독을 억지로 앉혔다. 임기가 끝나면 전북으로 돌아간다는 확약을 서로 나눴다. 그런데 이 어수선한 자리에 오르면서 최 감독은 ‘내 임기는 최종 예선까지’라고 선언까지 했다. 스스로 ‘시한부 감독’의 운명을 걸었다. 본인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이 시한부 선택은 그의 리더십을 결국 흔들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과 해외 진출로 구름 위에 올라탄 듯한 몇몇 선수들이 그의 지시 범위 바깥으로 빠져나가버렸다.
그에겐 마키아벨리적 ‘비르투’가 부족했다말의 참된 뜻에서 최강희 감독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Virtu), 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와 비범한 결단이 부족했다. 그 바람에 경솔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스타들이 어이없는 발언을 나누며 낄낄거렸고 그 여파는 모두가 떠난 뒤에도 지속되고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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