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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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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유도’보다 힘든 이코노미석 버티기

이코노미석 타고 브라질 세계선수권 간 유도 대표들
비인기 종목 ‘6척 장신’ 선수들의 사투가 눈물겨워라
등록 2013-09-18 14:31 수정 2020-05-03 04:27

“아, 대회 취재하러 가다가 죽겠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엉덩이를 이리 틀고 저리 틀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으면 온몸이 굳어버릴 것 같았다. 8월27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3 국제유도연맹 세계선수권’에 참가한 한국 국가대표 유도 선수들을 따라나선 원정길은 24시간 ‘버티기’와의 한판 승부였다.

고문이 따로 없는 장거리 비행

이번 세계선수권이 열린 리우데자네이루까지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다. 비행기로 9시간을 날아 두바이 공항에서 3~4시간 머문 뒤 다시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을 날아갔다. 참가 선수만 남녀 18명에 코치진, 임원들까지 파견 인원이 총 32명. 경비만 2억원이 넘는다. 참가비는 개인전 명당 100달러에 단체전 팀당 500달러지만, 항공료(300만~400만원)와 숙박료가 1인당 합쳐 1천만원에 이른다. 돈 많은 축구협회나 야구위원회가 아니고서는 비즈니스석을 끊어줄 여유는 없다.

2012년 7월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이 인천공항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당시 덩치가 큰 상당수 유도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자비를 보태거나 마일리지로 비행기 좌석을 업그레이드해 비즈니스석을 타야 했다.한겨레 신소영

2012년 7월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이 인천공항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당시 덩치가 큰 상당수 유도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자비를 보태거나 마일리지로 비행기 좌석을 업그레이드해 비즈니스석을 타야 했다.한겨레 신소영

임원들이야 상관없지만 선수들에게 하루를 꼬박 좁은 이코노미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건 곤혹이다. 100kg 이상급 등 덩치가 큰 선수들은 더 그렇다. 키 182cm에 몸무게 128kg인 김수완은 몸을 틀기도 쉽지 않다. 한쪽 발을 복도로 뻗어야 앉을 수 있다. 앞의 승객이 등받이를 뒤로 쭉 젖히면 테이블을 내리는 것도 버겁다. 체격이 큰 선수들은 창가에 앉았다가 옆에 앉은 두 승객 때문에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다. 복도 쪽에 앉아도 마찬가지다. 안쪽의 두 승객이 들락거릴 때마다 육중한 몸을 일으키기도 번거롭다.

불편해도 잠들면 그만이다. 일반 승객들은 ‘자고 일어나면 공항이기를’ 위안 삼아 버틴다. 선수들은 못 잔다. 시차에 적응해야 해 비행기에서부터 낮과 밤이 바뀐다. 이원희 여자대표팀 코치는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려면 시차 적응이 관건이다. 출발 며칠 전부터 브라질 시각에 맞춰 낮에 자고 밤에 연습하는 시차 적응 훈련을 해왔다”고 했다. 훈련은 비행기에서도 계속된다. 이원희 코치는 선수들에게 “잠들지 말고, 다른 선수가 잠들면 서로 깨워주라”고 당부했다. 너무 졸리면 돌아가면서 10분 정도 눈을 붙이되 바로 깨우기를 반복했다. 잠깐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으련만, 승객이 없는 좌석을 찾아 발을 뻗고 누우면 행운이다. 일부 선수는 좌석에 무릎을 올려 구부린 상태로 잠을 청했다.

잠과의 싸움은 양반이다. 체중 조절을 하는 유도 선수들은 기내식과도 싸운다.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두세 번, 다시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서너 번은 음식이 나온다. 대회 막바지에 경기가 있으면 그나마 조절하며 먹지만, 초반에 출전하면 무조건 참아야 한다. 냄새에 취해 ‘흡입’했다가는 도착해서 다시 체중과 씨름해야 한다. 유도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 전부터 체중 감량을 시작한다. 공식 계체 2~3일을 앞두고는 아예 굶기도 한다. “이 시기가 되면 누가 옆에서 말만 걸어도 짜증이 날 정도로 민감해진다”고 했다. 마음껏 먹지도 못해, 잠도 못 자, 장시간 좁은 좌석에서 꼼짝도 못해. 지금껏 그러고도 메달을 딴 게 대견할 정도다.

‘이코노미 잔혹사’는 유도 선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키가 190~2m인 배구·농구 선수들도 국가대표로 세계대회에 출전할 때 이코노미를 탄다. 한 배구 선수는 “농담 아니고 일어나면 천장에 머리가 닿을 것 같다”고 했다. 큰 키만큼 어깨도 넓은 배구 선수 3명이 좁은 이코노미석에 나란히 앉아 가니 내내 몸을 움츠린다. “도착하면 온몸이 뻐근하다”는 게 과장은 아니다. 그 상태로 경기에 나간다. 축구·야구 같은 ‘부자 종목’이 아니라면 보통 대회 2~3일 전에 현지에 도착해 적응할 겨를도 없이 출전한다.

차라리 자비 보태 비즈니스로

급기야 선수들은 자비를 털어 비즈니스석을 타고 간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 상당수 유도 선수들은 자비를 보태거나 마일리지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비즈니스를 탔다. 당시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한 선수는 “배부른 게 아니다. 경기장까지 편하게 가는 것은 컨디션 조절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때 비즈니스를 타고 간 선수들은 대부분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했다. 당일 컨디션은 성적을 좌우한다. 메달이 기대되는 선수들의 기량은 한 끗 차이다. 1년 내내 1등 하다가도 그날 컨디션이 안 좋으면 3등을 한다. 누가 빨리 피로를 풀고 현지 적응을 하느냐는 중요하다.

선수들은 장거리에서 열리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같은 메이저 대회만이라도 비즈니스를 타길 원한다. 그럴 때마다 관계자들은 말한다. “비행기 좌석 핑계 대지 마라. 비즈니스 안 타도 금메달 딸 사람은 다 딴다.” 그렇다. 딸 사람은 다 딴다. 그러나 딸 사람이 못 따는 경우도 발생한다. “금메달만 따봐라 비즈니스가 문제냐”고도 한다. 유도는 올림픽에서 주로 효도를 했지만, 금메달을 따든 못 따든 상황은 같다. 야구대표팀은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에서 탈락하는 참패를 겪고 돌아오는 길에도 비즈니스를 타고 왔다. 누구는 쉽게 앉는 비즈니스석이, 누구는 어쩌다 한 번 앉기도 왜 이리 힘든 걸까.

남지은 스포츠부 기자*‘S라인’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와 그동안 수고해주신 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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