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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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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제 스펙터클 우린 왜 못 즐길까

2014년 완성되는 K리그 1·2부 스플릿제…
방향 옳지만 파행 운영 막을 묘수 찾아야
등록 2013-09-12 14:21 수정 2020-05-03 04:27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선수들이 얼싸안는다. 감독과 코치들도 그라운드로 뛰어든다. 관중도 수백 명씩 몰려든다. 모두가 얼싸안으며 자축한다. 해마다 5월 말이면 유럽 축구리그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지옥의 2부리그에서 영광의 1부리그로 승격되는 순간이다. 지역 팬들에게 1부리그 승격은 비로소 비굴하고 남루한 삶의 존재 이유를 회복하는 순간이다. 감독과 선수들은 당당히 은하계 최고의 스타들과 맞붙게 되고, 높은 수준의 연봉이나 이적 협상을 벌일 수 있게 된다. 구단의 수익도 급증한다.

유럽 축구에서 1부 리그 승격이 갖는 의미

예컨대 스페인의 세군다 디비시온(2부리그)과 세군다 디비시온 B(3부리그)를 오르내리다 최근 들어 프리메라리가(1부리그)에 올라온 라요 바예카노의 중계권 수익은 1800만유로(약 264억원)다. 최상위 팀인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의 중계권료가 연간 1억4천만유로(약 2058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라요 바예카노의 중계권 수익 264억원은 매우 적어 보인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내 K리그의 전체 중계권료가 70억원 정도고, 최고 인기 종목인 프로야구도 2012년 정규리그 532경기와 포스트시즌 경기를 다 합쳐도 250억원가량이다. 라요 바예카노 한 팀의 중계권 수익과 한국 프로야구의 전 경기 중계권료가 비슷한 양상이다.
1부리그에 승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입장료 수익, 선수 임대 수익, 각종 선물 용품이나 음료수 판매량도 급증한다. 유럽 축구라는 설국열차가 쉬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한 칸이라도 앞으로 전진할수록 명예와 실리 양쪽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이 1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 후반 추가시간 박용호의 역전골로 승리해 상위 스플릿 진출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포항/뉴스1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이 1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 후반 추가시간 박용호의 역전골로 승리해 상위 스플릿 진출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포항/뉴스1

우리나라 프로축구 리그에서도 그처럼 작렬하는 순간이 있었다. 지난 9월1일 포항 대 부산의 경기. 후반 추가 시간에 부산 박용호가 결승골을 터트렸고, 현장 기자들은 이 순간을 ‘스플릿 극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다급하게 전송했다. 2년째 운영하는 스플릿제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1부리그의 상위 8개 팀과 하위 8개 팀이 나뉘는 순간으로, 중위권 팀들이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상위 A조에 속하느냐 자칫 2부리그로 추락할 수도 있는 하위 B조에 속하느냐 하는 운명의 경기였다. 후반 막판에 거의 1분마다 중위권 팀들의 순위가 뒤바뀌던 일이 박용호의 결승골로 마무리됐다. 부산은 가까스로 A조에 살아남았다. B조에 속한 팀들은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도 우승할 수는 없다.

이런 순간에도 불구하고 현 스플릿제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승강제에 필요한 피라미드형의 안정적 리그 시스템이 정착하지 못한 가운데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강력한 권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임시 제도라서 불가피한 허점이 눈에 띈다.

선수 확충이나 재정적 측면에서 K리그 챌린지(2부리그)는 여전히 취약하다. 각 구단이 안정적 재원이나 유소년 육성 등을 통해 장기 계획이 가능하도록 구단을 운영하거나 선수를 수급해야 하는데, 이러한 제도와 재정을 갖춘 구단이 드물다. 선수들의 의욕과 축구의 의외성으로 인해 2부리그 상위 팀이 한순간 1부리그로 승격할 수는 있지만 이후 지속적인 구단 운영이 가능한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다. 1부리그의 하위 팀이나 대개의 2부리그 팀들이 지방자치단체 산하 구단인데,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구단주(도지사·시장·군수 등)가 바뀌고 그에 따라 구단 운영이 뒤죽박죽 되는 홍역을 여러 차례 겪은 것도 중요한 리스크 요소다.

현재 2부리그 1위를 달리는 경찰축구단의 성격도 문제가 되고 있다. 현 시스템에서 1부리그 하위 두 팀(13위, 14위)은 2부리그로 강등된다. 그리고 12위 팀은 2부리그 1위 팀과 플레이오프전을 치러야 한다. 이 플레이오프전에서 2부리그 1위 팀이 1부리그 12위 팀을 이기면 한국 프로축구 사상 최초의 1부리그 승격 팀이 탄생한다.

문제는 현재 그 1위가 경찰축구단이라는 점이다. AFC에 따르면 경찰축구단은 프로 구단의 기본 자격도 갖추지 못한 팀이다. 법인화도 안 돼 있고 연고지도 없다. 올 시즌 전 경기를 원정으로만 치르는 중이다. 연맹이나 구단에서 나름대로 법인화와 연고지 정착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미결이다. 국군체육부대에 속한 상무는 법인화 등록, 경북 상주와 연고 협약, 유소년팀 운영 등을 하고 있지만 경찰축구단은 이것이 미비한 상태다. 게다가 병역을 마치면 원래 소속 구단으로 다들 돌아간다. 9월 말에는 염기훈을 비롯해 주요 선수 14명이 제대한다. 그런데도 현재 경찰축구단이 1위다. 이대로 1위가 되면 1부리그 승격을 위한 플레이오프전을 치러야 하는데, 승격 자체가 불가능한 팀이 승격을 위한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모순이 발생한다.

K리그 승강제, 방향은 옳지만

이것에 더해 내년부터는 문제가 좀더 복잡해진다. 2년 동안 임시로 치른 스플릿제를 통해 1·2부 각각 12개 팀으로 최종 확정되고 이로써 2014년 리그가 진행된다. 이 경우 1부리그 경기 수가 줄어드는데 가뜩이나 취약한 조건에서 경기 수마저 줄게 되면 적극적인 중계권 협상이나 공세적 마케팅이 어렵게 된다. 게다가 월드컵이 열리는 시기다. 아무래도 상반기에는 팀의 간판 선수들이 자주 빠지게 되고 일반 팬들의 관심도 대표팀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과도기적인 스플릿제와 각 12개 팀으로 운영되는 승강제 시스템. 이것이 ‘역사의 정방향’이긴 하지만 그 사이에 놓인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구단들의 입장도 사뭇 다르다. 넘어야 할 산은 많고 저마다 가리키는 방향은 다르다. 이 난해하고도 난처한 상황이 한국 축구가 처해 있는 로도스섬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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