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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 좀 연결해줘.” 프로야구 인기가 뜨거워지면서 친분 있는 연예 관계자에게 종종 요청받는다. 시구만 잘해도 단숨에 유명인이 될 수 있고,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며 검색어 순위에도 오르내리니, 얼굴을 알리고픈 이들에겐 구미 당기는 홍보 수단이다.
실제로 공 한 개 던지고 화제가 된 이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방송인 클라라. 지난 5월3일 잠실 LG-두산전에서 섹시한 의상을 입고 시구를 한 뒤 ‘유명인’이 됐다. 8년 가까이 무명 배우였던 그는 시구 이후
시구자가 화제의 중심에 오르면서 나서는 이들도 늘었다. 직접 요청해오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다. 대부분 연예인이다. 현재 시구자의 비중은 연예인 5, 사회 유명인사 3, 일반인 2 정도다. 포스트시즌이나 한국시리즈의 시구자는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선정하지만, 정규시즌은 홈팀에서 정한다. 해당 팀 팬으로, 다른 팀에서 시구를 한 적이 없으면 대부분 통과된다. 주말 등 관중이 많은 날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홍수아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시구 역사
1984년 올스타전에서는 신성일이 남자 연예인 최초로 시구를 했다. 그러나 시구자는 이왕이면 여자 연예인을 선호한다. 야구팬이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이다. 선수도 남자다. 여자 연예인이 시구자로 나서는 날엔 선수들도 덩달아 들뜬다. 몰려와 구경도 한다. 두산 관계자에 따르면 올 시즌 선수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시구자는 슈퍼모델 미란다 커이고, 역대로는 소녀시대다. 시구자는 경기 1시간 전에 와서 연습한다. 20분 정도 공 50개를 던진다. 그날 경기가 없는 선발투수들이 가르친다. 두산은 유희관과 노경은이 도맡는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오면 선수들이 자원한다. 탤런트 박진희가 시구를 했을 땐 이종욱이 팬이라며 가르쳤고, 씨스타의 소유가 왔을 때는 노경은이 광팬이라며 나서서 가르쳤다고 한다. 미란다 커는 팬인 더스틴 니퍼트가 자청했다고.
인생이 바뀔 수도 있으니, 시구자들도 대충 나와 던지지 않는다. 시구자의 자세도 2005년 홍수아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구자는 당시 대통령이던 그 유명한 ‘29만원 할아버지’였다. 1982년 프로야구 첫 경기에서 그가 공을 던진 이후 1988년까지 정치인, 기업인 등이 주로 시구를 했지만 대부분 권위의 상징으로 여겼다. 모 인사가 시구 뒤 더그아웃을 돌며 인사를 해 경기가 지연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타자는 헛스윙을 해야 하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외치는 시구의 법칙도 그들의 권위를 세워주려고 시작됐다는 얘기가 있다. 여자 연예인들은 눈요깃거리를 자처했다. 1989년 강수연이 정규시즌 첫 연예인 시구자로 나선 뒤 2005년 홍수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연예인들의 시구 패션은 주로 하이힐에 핫팬츠였다. 한복에 미니스커트도 입었다. 그라운드가 움푹 파이는 건 상관없었다. 공은 ‘패대기치더라도’ 그저 나만 예뻐 보이면 됐다. 프로야구 관계자는 “홍수아의 개념 시구 이후 준비 없이 나오는 연예인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면서 시구에 임하는 자세가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시구가 잦아지면서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2의 홍수아, 제2의 클라라를 노리는 기획사의 요청이 늘고, 마케팅에 악용되면서 시구를 명예롭게 생각하던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한 메이저리그도 연예인들이 시구를 하지만, 하루 걸러 하루 식으로 의미 없이 공을 던질 기회를 주진 않는다. 뉴욕 양키스는 시구 세리머니를 한 시즌 10~20회로 제한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2011년 홈경기의 절반 가까이 시구를 했다. 넥센의 안방인 목동구장은 신인 걸그룹이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인기도 의미도 없는 걸그룹들의 시구가 이어지는 탓이다.
목동구장은 신인 걸그룹 데뷔 무대?
시구의 의미를 지키려고 구단도 노력은 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시구를 장난스럽게 여기거나 홍보성이 짙으면 꺼린다”고 했다. 섹시 논란을 막으려고 유니폼을 준 뒤 미리 어떻게 변형할 거냐고도 묻는다. 그러나 횟수를 줄일 생각은 없다고 한다.
시즌 초반 한 탤런트는 한 팀에 시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다른 팀 시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구를 포기했냐고? 또 다른 팀의 팬이라 자청하며 어떻게든 마운드에 섰다. 그에겐 시구의 의미보다, 시구를 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지은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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