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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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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과 겨룬 소년

등록 2013-01-08 06:19 수정 2020-05-02 19:27

2005년 겨울. 그해 꼴찌로서 다음해 신인 2차 지명 1순위권을 가지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는 인천 동산고의 왼손 투수를 포기하고, 광주 제일고의 사이드암 투수를 선택했습니다. 동산고 왼손 투수의 수술 경력이 마음에 걸렸고, 우완 사이드암 투수는 그해 고교야구를 평정한 선수였습니다. 인천의 왼손 투수는 다음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한화 이글스에 기다렸다는 듯이 지명됐습니다. 그리고 후에 이것은 한국 프로야구 신인 지명 역사상 최악의 실패로 남게 됩니다. 롯데가 선택한 선수는 나승현(사진)이었고, 한화가 데려간 선수는 바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왼손 투수 류현진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승현은 고교 3년간 22승6패, 방어율 1.63을 기록한 고교 랭킹 1위의 투수였고, 수술로 인해 많은 투구를 하지 못한 류현진의 고교 시절 성적은 7승2패에 방어율 1.76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승현을 선택한 것이 롯데 자이언츠의 실수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승현의 문제는, 류현진이 아주 거대한 괴물이었다는 사실이 추후에 밝혀진 것일 뿐입니다.
데뷔 첫해, 나승현은 씩씩하게 공을 뿌렸습니다. 전성기의 임창용을 연상시키는 뱀 같은 직구로 신인으로서는 정상급인 16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류현진이 문제였습니다. 신인 류현진은 18승을 거두며 선동열 이후 15년 만에 투수 트리플크라운(다승, 방어율, 탈삼진)을 달성하며 신인왕과 MVP까지 거머쥐면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기나긴 암흑기를 통과하며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자이언츠 팬들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발로 굴러 들어온 복을 차버렸다는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이 원성은 나승현에 대한 원망 어린 시선으로 옮겨갔습니다. 첫해 준수한 성적을 올린 19살의 신인으로서, 나승현이 들어야 했던 것은 축하보다 원성이었습니다.
19살 선수가 감당하기에는 세상의 시선이 너무나 비정했을까요. 나승현의 추락은 시작됐고, 류현진은 더욱 괴물이 되어갔습니다. 폼이 무너진 나승현은 중간계투로 패전처리로 2군으로 내몰리다 입대를 했고, 류현진은 위대한 기록을 쌓아 올려갔습니다. ‘나승현’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이언츠 팬들의 애증은 깊어만 갔고, 포털 사이트에는 나승현의 연관검색어로 아직도 류현진이라는 유령이 붙어다닙니다.
그 류현진이, 올겨울 LA 다저스 입단을 확정지으며 드디어 한국을 떠납니다. 운명일까요. 군대를 갔던 나승현은, 류현진이 떠난 2013년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옵니다. 류현진은 이제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승현은 여전히 자이언츠의 투수입니다. 2013년 뱀의 해, 류현진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나승현의 뱀 직구가 부활할 것을 기대합니다. 이제 그의 나이 27살입니다. 소년의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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