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뒤, 프로야구 최초의 2차 드래프트가 있었습니다. 각 팀의 필수 전력인 보호선수 40명이 지명되면, 지명되지 않은 선수들을 ‘공짜로’ 데려올 수 있는 제도입니다. 여기에 32살의 두산 베어스 투수 김성배가 포함돼 있었고, 롯데는 그를 선택했습니다. 좋은 말로 두산은 김성배에게 기회를 준 것이고, 정확히 말하자면 김성배는 두산에서 버려졌습니다. 두산 팬들은 김성배를 지명한 롯데에(그의 이름을 빗대) ‘독이 든 성배’를 데려갔다고 놀렸고, 김성배는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지난 6월 슈퍼스타 강민호 외에 백업 포수가 없었던 롯데는 두산 베어스의 2군 포수인 32살의 용덕한을 데려왔습니다. 안정된 투수 리드를 자랑하며 한때 두산의 주전포수로 활약했으나, 젊고 유능한 후배들에게 밀리며 2군의 땡볕 아래 야구를 하던 선수입니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KTX 안에서 용덕한은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입단 12년차 내야수, 32살의 박준서는 지난겨울 팀의 해외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됐습니다. 선수로서 전성기의 나이에 팀 전력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으며 박준서는 지난겨울 내내 야구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2012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또래 선수들이 자유계약(FA)으로 수십억원의 대박을 터뜨리고 있을 나이에, 팀의 외면을 받은 이 32살의 남자들은,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준비하며 다시 글러브를 집어들었습니다. 김성배는 올해 롯데 자이언츠의 필승 카드로 활약했습니다. 팬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낯선 투수에게 ‘꿀성배’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그의 상처를 만져주었습니다. 용덕한은 투수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으며 고군분투하던 강민호의 짐을 덜어주었습니다. 조성환의 부상으로 시즌 중 갑자기 1군에 올라온 박준서는 초반 타율 6할대의 ‘크레이지 모드’를 보이더니 시즌 내내 전천후 내야수로서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둡니다.
마침내 찾아온 가을. 롯데 자이언츠의 포스트 시즌은, 이 32살의 상처받은 남자들을 위한 시리즈였습니다.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박준서는 8회말 극적인 동점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역전승을 이끌었고, 2차전의 용덕한은 1:1 동점이던 9회초 결승 솔로 홈런으로 친정팀을 파괴했습니다. 김성배는 롯데의 위기 순간마다 등장해 팀을 구했습니다. 박준서는 준플레이오프 1·4차전 MVP, 용덕한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 MVP, 김성배는 플레이오프 2차전 MVP로 선정됐습니다. 롯데가 올가을 야구에서 거둔 5승 중 4번의 MVP가 이 32살의 버려졌던 남자들의 몫이었습니다.
5천만원(김성배). 4500만원(용덕한). 3500만원(박준서). 이 세 선수의 2012년 연봉입니다. 셋의 연봉을 모두 합쳐도, 같은 1982년생인 김태균의 연봉 10분의 1이 되지 않습니다. 1년 내내 4할에 도전했던 김태균의 승부가 어떤 판타지 같았다면, 이 3명의 버려진 선수들이 1년 내내 펼쳐온 인생의 승부는 가슴 벅찬 리얼리티였습니다. 여전히 야구는 저에게 최고의 인생 교과서입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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