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팬은 4년을 단위로 나이를 먹습니다. 제가 처음 올림픽을 인지한 것은 1984년 LA올림픽이었습니다. 유도 선수 하형주가 금메달을 땄고 그 덩치 큰 선수가 눈물을 흘렸으며, 중계진은 비장한 목소리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찾았습니다. 9살의 제 가슴은 뜨거워졌고 스포츠가 주는 흥분의 정체를 발견하며 훌리건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로부터 2012년 올림픽까지 7번의 올림픽이 지나갔고 그사이 저도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스스로의 인생을 성찰해보는 것도 4년 단위였습니다. 지난 올림픽에서 패하며 눈물을 흘렸던 선수가 다시 나타나 4년을 준비해온 승부를 치를 때, 저는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가 바뀌었거나, 취직을 했거나, 지난 올림픽에서 단체응원을 했던 친구와 멀어졌거나, 노화가 시작됐거나, 얼굴이 커졌습니다.
저에게 올림픽은 제 인간적 성숙 정도를 판단하는 가장 분명한 잣대입니다.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 눈물을 해석하는 제 심장은 올림픽을 기준으로 성장해왔습니다. 천성이 훌리건이라 오래전의 저도 금메달이 아니면 가치가 없었고, 동메달 결정전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선수가 중요한 경기에서 지면 짜증을 냈고, 탈락한 선수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제가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폴 매카트니의 <헤이 주드>(Hey Jude)로 시작한 올림픽이었기 때문일까요. 실패한 선수들이 눈에 들어오고, 한국 선수에게 패해 눈물을 흘리는 타국 선수들도 애처롭습니다. ‘히잡’을 쓰고 출전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자유도 선수, 의족으로 400m를 달리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 선수, 38살의 독일 여자체조 선수, 사상 처음으로 조국에 메달을 안긴 과테말라의 경보 선수는 감동이었습니다. 전 국민이 축구와 수영에 열광할 때 여전히 레슬링과 복싱과 핸드볼과 하키를 하고 있던 한국 선수들을 보며 코끝이 뜨거워졌습니다. 세상의 주목과 상관없이 각자의 인생에서 뜨거운 승부를 벌이는 선수들을 보며 1등이 아니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아도 행복하게 후회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실패한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은, 결국 1등이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한 우리 스스로의 삶을 응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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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을 기다린 승부를 오심으로 날려버린 신아람, 158cm의 가난한 스무 살 체조 소년 양학선이 도마 위의 하늘로 날아오르던 모습, 사고 운전자에게 부담이 될까봐 최근의 교통사고 사실을 숨겨온 장미란, 7만‘11’명의 영국에 맞서 이겨낸 11명의 축구 선수들까지, 여느 때처럼 런던올림픽도 뜨거운 추억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우리 인생에 몇 번의 올림픽이 남아 있을까요. 인생의 마지막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개수에 관심을 끊고 실패한 선수, 쓰러진 선수를 가슴에 보듬어주며, 전세계인이 한평생 펼쳐온 인생의 승부를 구경하며 1등이 아닌 삶에도 박수 쳐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림픽은 자신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입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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