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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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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를 투표하게 하라

등록 2012-04-14 10:52 수정 2020-05-03 04:26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가 1차 발파되던 3월7일. 트위터에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한 청년의 짧은 멘트가 올라왔습니다. “제주도 건들지 마라, 이것들아~.” 이것은 2012년 한국 프로야구 포수 부문 파워랭킹 1위로 선정된, 제주도가 부산에 내려준 선물 롯데 자이언츠의 강민호가 남긴 말이었습니다. 거기서 나고 자라며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포수가 된 청년은 자신의 추억이 파괴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강민호가 트위터에 올린 저 귀여운 말에 그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겠습니까. 권력과 이권에 눈먼 자들이 나고 자란 고향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시민으로서의 분노. 무릇 정치란 그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프로야구가 개막했습니다. 동시에 4월11일은 국가의 운명이 개막하는 총선이 있는 날입니다. 야구팬으로서 즐겁게 일정표를 보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4월11일 수요일엔 전 구장에서 프로야구 시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는 그날 서울에서 LG 트윈스와 3연전을 치릅니다. 화요일부터 이어지는 3연전이니 선수들은 이미 그 전날부터 서울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에 올라간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은 투표를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 일정표 때문에 부재자투표 신고를 한 선수가 있었을까요? 롯데 자이언츠의 강민호는 자신의 추억을 파괴한 집단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어려워져버렸습니다.

야구는 정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정치는 언제나 야구를 필요로 했습니다. 부산에 출마한 새누리당의 한 후보는 “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하는 부산 시민들이 새누리당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800만 롯데팬을 모욕했습니다. 이제 야구가 정치에 답을 돌려줄 시간입니다.

전설의 유격수 이종범은 통산 499도루를 기록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500도루는 노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이후에 시도하겠다”며 한 시민으로서 예의를 표했습니다. 위대한 투수 최동원은 1987년 택시를 타고 가다가 거리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보고 택시에서 내려 같이 돌을 던지며 시위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선수들은 언제나 정치에 예의를 표해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과연 선수들의 투표권을, 원정경기를 떠난 프로야구팀의 그 많은 유권자들의 참정권을 고민해보았을까요.

2001년 9월, 메이저리그 415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이어가던 숀 그린은 유대교 최고의 휴일인 욤키푸르(Yom Kippur)를 준수하려고 경기 출장을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더 멀게는 1965년 월드시리즈 1차전을 결장하고 유대교 회당으로 가서 예배에 참석했던 불세출의 스타 샌디 쿠팩스의 사례도 있습니다.

야구 시합 한 게임보다 중요한 선수의 세계관과 권리가 있습니다. 프로야구가 국민 스포츠로서 존중받으려면, 그 무엇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인 선수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루쯤은 야구장의 조명을 꺼둘 필요도 있습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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