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벵거 아저씨. 저는 아저씨 팀에서 벤치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등번호 9번의 ‘기도하는 스트라이커’ 박주영의 나라에 살고 있는, 조기축구 회원입니다. 참다참다 못해서 이렇게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지난해 여름, 아저씨는 모나코에서 왕자로 활동하던 박주영에게 전화를 했어요. ‘세기의 명장’ 벵거 아저씨가 아스널 유니폼을 입고 같이 축구하자고 하니 청년 박주영은 황홀했어요. 입지가 보장돼 있던 프랑스 리그를 버리고, 청년은 영국 런던행 비행기에 몸과 꿈을 실었지요. 그 뒤로 6개월 동안 청년은 아스널 점퍼를 입고 벤치에만 앉아 있어요. 그 청년에게는 낯선 포지션이죠.
박주영이 어떤 선수냐면요. 페널티박스에서 골키퍼까지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고, 한쪽 팔이 탈구된 상태에서 프리킥을 성공시켰으며, 그 패스 못하는 프랑스판 연병장 축구 AS모나코에서 3년 동안 26골을 때려넣으며 (귀티는 안 나지만 어쨌든) ‘모나코 왕자’라고도 불렸던 선수이며, 요즘은 한국 국가대표 A매치 5경기에서 8골을 쏟아붓고 있는 선수예요. 아저씨 그 선수 감독이잖아요. 이걸 내가 얘기해줘야 합니까.
아저씨는 아마 아스널의 ‘팍’(PARK)이 맨유의 그 팍이 되길 바라겠지요.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아스널의 벵거가 맨유의 퍼거슨이 되길 바라요. 누구도 맨유의 팍이라는 선수가 긱스와 호날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요. 하지만 맨유의 감독 아저씨는 공정한 기회를 주었고, 그 팍은 지금 맨유의 아시아인 레전드가 되었어요.
박주영에게 꿈만 주고 기회를 주지 않은 것, 이게 아저씨의 잘못이에요. 물론 아저씨가 챔피언스리그에도 한 번 출전시켰고, 그 게임에서 박주영이 보여준 게 없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이제 막 팀에 합류한 선수가 뭘 보여주기에는 발이 맞는 동료가 없었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한두 게임만 보고 46억원을 주고 데려온 축구선수를 겨우내 점퍼만 입히고 벤치에 앉혀놓나요. 아스널 돈 많아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아저씨는 박주영의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그 더벅머리 청년은 지금 외로움과 아시아인 스트라이커에 대한 편견과,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일하게 군대 문제와 싸우고 있는 사나이예요. 아저씨가 이해하지 못할 초조함과 절박함을 가진 선수라고요. 부당한 요구를 하고 싶진 않아요. 다만 그 선수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세요. 그 선수, 아저씨가 그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에요. 그 선수, 포기해도 우리가 포기할 겁니다.
이상, 오늘도 가정용 축구게임에서 아스널의 최전방 스트라이커에 반 페르시를 빼고, 박주영을 투입하는 한국인 서포터스의 투정이었습니다. 건강하세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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