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웅(46)씨는 지난 8월부터 삼성 2군 타격 코치를 맡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프로야구 출범 30년째를 맞아 은퇴 선수들을 대상으로 ‘레전드 올스타’ 투표를 했다. 야구인·언론인·팬이 참가한 투표에서 최고 점수(51.17점)를 받은 이는 박정태 롯데 2군 감독이었다. 강기웅은 이 투표에서 3위(10.68점)에 그쳤다. 하지만 많은 야구계 사람들은 그야말로 ‘역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선수라고 믿는다.
프랜차이즈 스타와 좋지 못한 인연
2000년 5월19일 현대 유니콘스 포수 박경완은 대전구장에서 4연타석 홈런을 때려냈다.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그러나 아마추어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영광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1988년 4월3일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의 강기웅은 청주구장에서 열린 춘계리그 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5연타석 홈런을 때렸다. 전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을 때려냈고, 이날도 첫 두 타석에서 두 개의 아치를 그렸다. 강기웅은 영남대 소속이던 1986년에도 3연타석 홈런과 8타점으로 대학 야구 타이기록을 수립한 바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 때문에 프로 데뷔는 늦었다. 그러나 강기웅은 역시 천재였다. 첫 시즌인 1989년 타율 0.321을 쳤고, 이듬해에는 15홈런을 날렸다. 프로 통산 타율은 0.292. 여덟 시즌을 뛰며 두 자릿수 홈런을 3번 기록했다. 강기웅은 대구고와 영남대를 거쳐 삼성에 입단했다. 말하자면, 대구의 순혈 선수다. 하지만 그는 멋들어진 은퇴식을 치르지 못했다. 삼성은 1996년 11월18일 최광훈과 이희성을 받는 대가로 강기웅을 현대로 트레이드했다. 강기웅은 트레이드에 반발해 ‘가정 사정’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 뒤로 대구 야구계에서 강기웅은 잊혀진 이름이 됐다. 올해 복귀는 15년 만이다.
삼성은 9월23일 현재 2위 롯데에 6.5게임 차 앞선 1위를 달리고 있다.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직행은 확정적이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긴장할 이들은 누굴까. 삼성에선 선수가 아닌 코칭스태프일 것이다.
지난해 야인 신분이던 강기웅에게 “삼성 구단에 묵은 감정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삼성은 창단 이래 프랜차이즈 스타와 좋은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 지난 9월 작고한 ‘타격의 달인’ 장효조는 부산으로 쫓기듯 트레이드됐다. 1980년대의 에이스 김시진도 그랬고, SK 감독 대행인 이만수도 현역 은퇴 뒤 삼성 유니폼을 다시 입지 못했다. 대구는 1970년대 이후 고교야구 무대를 호령한 강팀을 배출한 야구 도시다. 어느 도시보다 야구에 대한 프라이드가 크다. 강기웅은 장효조, 이만수, 김시진을 잇는 대구 야구의 스타다.
강기웅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유감은 없어요. 구단에서 선수단에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승을 하지 못했어요. 야구 인생에서 가장 큰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최고의 팀
‘우승’은 대구 야구와 강기웅에게 트라우마다. 강기웅이 입단한 1989년, 삼성은 57승58패5무로 정규시즌 4위에 그쳤다. 준플레이오프에선 태평양에 1승2패로 졌다. 삼성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OB에 졌다. 허리 부상에도 역투한 OB 에이스 박철순과 최종전 3점 홈런의 주인공 김유동은 원년의 영웅이 됐다.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은 “우승보다는 2등이 기업 이미지에 긍정적이다”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얄미운 1등’보다는 아깝게 실패한 2등이 낫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는 그 뒤로 삼성 라이온즈 구단이 어떤 포스트시즌을 맞을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1982년 이후 2000년까지 삼성은 포스트시즌에 14차례 진출했다. 프로야구 통산 최고 승률을 기록한 팀이 바로 삼성이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2001년 삼성 구단은 해태에서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차지한 명장 김응용을 영입한다. 오랫동안 공들인 작업이었다. 김응용의 영입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대구 야구인들에게 20년 기회를 줬다. 그런데 실패하지 않았느냐?”
김응용 감독의 삼성은 2002년 창단 이래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그의 후계자인 선동열은 2005~2006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삼성의 우승 한은 풀리는 듯싶었다. 삼성은 2010년에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선동열의 감독 5년 계약에서 첫 번째 해였다. 그러나 구단은 선동열을 해고하며 야구계를 경악시켰다.
2010년 삼성그룹에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가 삼성전자 사장으로 전면에 나섰다. 공식적으로 삼성의 구단주는 이수빈씨다. 하지만 이재용씨의 사장 승진은 그가 라이온즈 구단의 실질적인 구단주가 됐음을 알려준다. 구단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선동열 전 감독의 해임은 그룹 최고위층에서 결정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재용씨는 학창 시절부터 대구구장을 찾아 선수들과 캐치볼을 했던 야구광이다. 그의 사장 승진과 함께 이뤄진 선 전 감독의 해고는 삼성이 ‘대구 순혈 야구’로 복귀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강기웅도 15년 만에 삼성 유니폼을 다시 입을 수 있었다.
2011년 한국시리즈는 프로야구 출범 뒤 회한을 곱씹어야 했던 대구의 스타들에게 명예회복의 무대다. 상대는 롯데, SK, 기아 등 누구라도 상관없다. 삼성은 1984년 ‘져주기 게임’ 추태 끝에 롯데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간택했으나 최동원의 무시무시한 투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삼성의 ‘가을 저주’는 1984년 시리즈 이후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아의 전신은 해태다. 과거 삼성에 가장 많은 좌절을 안겨준 그 팀이다. 2000년대 전반의 최강팀 삼성이 2000년대 후반의 패자 SK를 누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트라우마 벗어던질 기회일까
‘대구 순혈주의’로 복귀한 첫해, 삼성은 정규시즌 우승을 사실상 확정했다.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삼성은 강한 팀이었다. 이제 가을이 남았다.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게는 묵은 트라우마를 떨칠 기회가 왔다. 대구의 스타들은 과거 그들을 짓눌렀던 ‘가을의 저주’를 떨쳐버릴 수 있을까.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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