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는 포근하다. 사진 김지현 제공
간현암 등반. 걱정했던 것보다 첫 몇 발을 쉽게 올라갔다. 완전 평면인 실내 암벽보다는 입체감이 있어 착 달라붙기도 어렵지 않았다. 산에 눈이 녹지 않은 추운 날씨, 섬뜩할 거라 예상했는데 바위는 오히려 포근하다. 거기다 다른 코스에 다녀온 빌리가 뒤에서 “나이스! 잘하네”라며 기운을 북돋아줘서 의기양양, 용기백배.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된다.
세 번쯤 막히지 않고 올라가 자신감이 좀 붙었다. 의기양양하게 팔을 뻗는데 아뿔싸, 잡을 곳이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이 밑에서 소리친다. “거기! 거기 있잖아!” 선생님,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셔야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몇 시 방향으로 몇cm 거리,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구시렁거리며 손의 감각에만 의지해 더듬어보지만 그렇게 찾아질 리가 없다. 홀드를 먼저 찾고 그걸 잡기 위해 팔을 뻗거나 몸을 늘이거나 발을 고쳐 디뎌야 마땅한데, 겁먹고 잔뜩 웅크린 채 더듬는 팔의 범위 안에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소리치자 선생님이 몸을 좀 떼야 한다고 소리친다. 그러고 보니 발끝으로 디디는 힘과 손힘이 약한데다 정확한 홀드를 찾지 못한 탓에 거의 찰싹 바위에 붙어 있다. 줄에 매달려 몸만 바위에 붙어 있는 형국이다. 홀드를 찾아도 확신을 하지 못해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선생님이 “그래, 그거!”라고 확인해주어야 움직이다 보니 10m 올라가는 데 한 세월이 다 갔다. 그래도 그사이 조금 요령이 생겨 3분의 2쯤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아예 밋밋한 바위다. 거기다 저질 체력으로 오래 매달려 있었더니 팔다리도 후들거린다. 바위를 쓰다듬다시피 하며 쩔쩔매다 선생님한테 그만 내려가겠다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요지부동, 끝까지 올라가기 전까지는 절대 못 내려간단다. “거기만 넘으면 이제 쉬워” “잘하고 있어” 등등의 달콤한 말에 의지해 겨우겨우 한 손, 한 발씩 옮겼다.
“저 위에 쇠로 된 거 있지? 그것만 잡으면 완등하는 거야!” ‘완등’이라는 말이 찰떡처럼 쫄깃하게 귀에 붙어 신명나게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힘든 건 덜하고 재미는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쇠를 잡는 순간, 태어나서 느낀 것 중 가장 큰 성취감이 밀려왔다. 공기가 달다. 몸이 한없이 가벼워진 것 같다.
이후 로프에 의지해 앉는 자세로 발을 디디며 내려오는 것도 쉽지만은 않아서, 결국 한 세 바퀴를 빙글빙글 돌면서 옆에서 바위를 타던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할 지경이 됐다. 놀라서 단단히 잡아주던 선생님은 혀를 찼지만, 그래도 나는 마냥 신났다. 영화를 처음 찍던 날 촬영이 끝난 뒤 혼자 길에서 난데없이 “아악, 너무 재밌어!”라고 소리 지르던 그때처럼. 그때 이후로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듯, 암벽 타는 것 역시 당분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살면서 가슴 벅차도록 재미있는 일들이 하나둘씩 느는 게 신난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짜릿함을 위해 다음에는 어떤 스포츠에 도전해야 할까?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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