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부쩍 쌀쌀해진 게 다행이다. 추석 전에는 연습을 며칠 쉬었다. 조금 창피하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반바지를 입고 맨살에 무릎보호대를 했더니 땀에 전 보호대에 세균이나 진드기가 있었는지 오금 주변을 시작으로 모기에 물린 것 같은 두드러기가 다리 뒤쪽 전체에 퍼졌다. 가려워서 죽는 줄 알았다. 피부과에 가보니 알러지성 피부염이라고 했다.
점핑부츠를 착용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더운 날씨와 가려움증 같은 것들로 핑계를 대긴 했지만, 별 진전 없는 실력에 좌절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내 생각에, 점프해서 넘기로 한 학교 후문이 어떤 음모에 의해 조금씩 높아지는 것 같다. 정말이다.
좌절감은 첫날 이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1시간쯤 노력해봐도 도통 일어설 수가 없었다. 처음 점핑부츠를 신고 일어설 때는 다른 사람이 손을 잡아 일으켜줘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번번이 몸이 뒤로 기울어 엉거주춤 앉은 상태가 됐다. 무릎보다 더 긴 길이의 깁스 같은 것이 다리를 고정하고 있으니 앉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어 잡아주는 손만 필사적으로 움켜쥔 채 낑낑거렸다. 손을 잡아준 사람은 내 뒤로 돌아가 겨드랑이를 걸고 뒤에서 끌어올려 나를 의자에 앉히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그는 계속 “나를 믿어” “믿어야 돼”라고 말했다. 그래,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교회에 나가겠지만, 믿는 것만으로 어떻게 일어설 수 있단 말인가.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
드디어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이틀 만에 파트너를 할 만한 사람이 모두 나를 외면해서 결국 혼자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든 해야지 마음먹고 혼자 일어서려고 어설프게 시도해보았다. 몸이 앞으로 확 쏠리는 느낌 때문에 균형을 잡으려다 뒤로 넘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자 오히려 뒤로 넘어지는 것이 너무 무서운 나머지 엉덩이에 무게중심을 싣지 않아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다. 차라리 조금 떨어진 곳의 벽을 짚는 것을 목표로 일어나 한두 걸음 걷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누구나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점핑부츠를 보여주며 자랑하자 몇 명의 남자 학우들이 즉시 도전해봤는데, 어떤 사람은 넘어지면 죽을 것 같다며 벌벌 떨었지만, 한두 명은 신자마자 혼자 걸어 나가더니 약간 달리기까지 했다. 경쾌하게 팡팡!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며칠간은 탁 트인 공간이 무서워 쿵쿵 소리가 울리는 학교 복도를 벽을 짚고 겨우겨우 걸어다녔다. 하루 세 번은 점핑부츠끼리 서로 꼬여 앞으로 넘어지고, 하루 두 번은 무게중심이 뒤로 쏠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무튼 이제야 겨우 밖으로 나가 어딘가에 의지하지 않은 채 혼자 설 수 있게 되었고, 즐겁게 성큼성큼 걸어다니거나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뛸 수는 있게 됐다. 그러나 더 이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체력 소모가 큰 운동인데다 5분만 하고 나면 숨을 몰아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저질 체력 때문에 연습량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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