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마셜아츠 첫날은 무술 수업으로 시작됐다. 원래는 월요일에 하는 공중기 수업부터 할 계획이었는데, 너무 겁이 나서 시작도 하기 전에 하루를 빼먹었다. 죄송한 마음에 가자마자 얼른 도복을 입고 나오니 사범님이 앞으로 나오라 하셔서는 손수 흰 띠를 허리에 매주신다. “○○, 소매 걷어” 하니 앞에 서 있던 청년이 나와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줬다. 소매를 걷는 방법도 모양도 정해져 있다. 기분이 야릇하다. 거짓말 좀 보태서 중세시대에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칼을 어깨와 머리에 대며 기사로 임명받는 기분이랄까.
할 만하네, 하고 구름 위를 떠다니던 마음은 피티 30번을 뛰고 나서 점프를 할 때부터 물속에 처박히는 느낌이었다. 준비운동인 점프 동작은 엎드려뻗쳐를 한 뒤 다시 일어서서 제자리뛰기하는 걸 반복하는 것이었는데, 리듬에 맞춰 엄청나게 빨리 해야 했다. 안경은 코에서 떨어지지, 앞은 안 보이지, 몸은 안 따라주지. 엉거주춤 엎드렸다 섰다만 대강 하며 당황하고 있는 나를 보고 사범님은 한 번도 안 해봤느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셨다. 안 해볼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은 코딱지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냥 창피했다. 그 이후로도 수업 내내 내가 당황하는 만큼 사범님도 당황하는 것 같았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계속 창피했다.
준비 동작, 기본 자세, 구령 등을 배우고 나니 곧바로 고난도의 막기, 때리기, 발차기 동작 수십 가지를 연속으로 양쪽 각각 열 번씩 해야 했다. 1시간을 쉬지 않고 하는데 암벽등반 할 때도 별로 안 흘리던 땀이 줄줄 흘렀다. 동작을 제대로 천천히 하는 것도 어려운데 빠르게 해야 하고, 연속해서 해야 하고, 외워야 할 동작은 많고, 체력 소모량도 장난이 아니었다. 남들 열 번 할 동안 다섯 번 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손과 발은 순서가 엉켜 이상하게 움직였다. 결국 마지막 동작 두 개는 (말 그대로) 토할 것 같은 지경이 되어서 “저 잠깐만 그냥 볼게요” 하고는 쭈그려앉아 숨을 골라야 했다.
그러고는 5분 정도 휴식 시간이 주어졌을 때, 창피하지만 탈의실에 들어가서 조금 울었다. 지금 당장 옷을 갈아입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다음 30분은 정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 제대로 따라하기도 벅찼던 동작을 죽 이어서 하는 응용 동작을 줄을 서서 차례로 한 명씩 해야 했다. 맨 뒤에 줄을 섰다가, 동작을 끝내고 돌아와 다시 내 뒤에 줄을 서는 사람에게 내 자리를 양보했다. “몇 번 보고 할게요.” 동작을 잘 보고 분석해서 하면 조금 낫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러다 시간이 끝나 안 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도 안 했다고는 못하겠다. 몇 번 그러고 나니, 사범님이 아무리 못해도 해보는 것과 그냥 보는 건 큰 차이가 있다며 꼭 하라고 하시고,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아예 자기들 사이에 나를 세워놓고 ‘잘한다, 잘한다’ 추임새를 넣고 동작이 끝나면 나한테만 박수를 쳐줬다.
끝나고 제일 먼저 체육관을 나서는 나에게 다들 “다음 시간에 꼭 봐요!” “언니 하는 시간에 맞춰서 내일 올게요. 같이 해요”라고 인사했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겁먹었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과연 이 운동, 계속할 수 있을까?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 대통령, ‘김건희 파우치’ 박장범 KBS 사장 임명안 재가
“명태균에 아들 채용 청탁…대통령실 6급 근무” 주장 나와
“국민 요구 모두 거부하니”…서울 도심서 ‘윤 대통령 거부’ 행진·집회
‘미국 최고 의사’ 84살 김의신 “암에 좋은 음식 따로 없어, 그 대신…”
‘54억 래커 피해’가 뭐길래…갈등 부추기는 동덕여대 보도
탄두가 ‘주렁주렁’…푸틴이 쏜 ‘개암나무’ 신형 미사일 위력은
읽고 쓰고 살고…86살 ‘활자 청춘’ “텍스트힙이 뭐지요?” [.txt]
“대통령 술친구 이긴 ‘김건희 파우치’…낙하산 사장 선임은 무효”
법원, KBS 박장범 임명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기각
‘1호 헌법연구관’ 이석연, 이재명 판결에 “부관참시…균형 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