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쓰는 언어로 그 사람의 인생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시(정리), 시마이(종료), 간지(느낌) 등 영화하는 친구들이 쓰는 일본어나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는 신조어들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언어들의 합집합이 그 사람의 직업과 관심사와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생각. 그런 면에서, 어설프게나마 익스트림 스포츠를 경험한 지난 몇 달은 내게 새로운 언어의 집합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확보’ ‘볼더링’ ‘홀드’ ‘완등’ ‘출발’ 같은 말들을 내뱉을 때의 우쭐해지는 마음이라니! 이번에 내 인생에 새로 들어온, 1년 전만 해도 그러리라 상상도 못했던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도복, 도장, 공중기, 흰 띠, 초록 띠를 비롯한 색색깔의 띠들, 단 심사, 사범님!
흔히 ‘마셜아츠’라 불리는 익스트림마셜아츠는 애크러배틱(댄스 등을 포함한 곡예에 가까운 고난도의 퍼포먼스)에 무술(카포에이라·태권도·합기도 등)을 결합한 스포츠다. ‘익스트림’이라는 단어가 정식 명칭에 포함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극한 상황에서 고난도의 동작을 해야 한다. 실전보다는 퍼포먼스에 더 목적을 두고 있단다.
익스트림마셜아츠를 배우기로 마음먹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허리를 숙였을 때 손끝이 땅에 안 닿는 내가 하기엔 지나치게 어려운 종목이라는 생각이 첫 번째. 그리고 훈련할 때 줄을 서서 한 명씩 배운 동작을 지도받는 훈련 방식에 대한 거부감 추가. 그런데 마침내 도전하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도 거기 있다. 서른 살이 되자마자 처음 시작하는 것이 내게 가장 어려운 걸 해내는 것이라면, 정말로 해낸다면, 이십대보다 나은 삼십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전 11시께, 서울 신당역 부근 렉스마 체육관을 찾았다. 대한익스트림마샬아츠 전문교육원 본관이기도 하다. 수업 중인 체육관은 보송보송한 중·고등학생들로 가득했다. 작고 여린 중학생 소녀도 한 명 있다. 머리 하나씩은 더 큰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쑥스러워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니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겁이 더럭 났다. 그런 나를 격려하는 원장님의 한마디. “목적을 가지고 하는 무술인이나 연예인 지망생보다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꾸준히 해요. 50% 정도는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고.” 여성의 비율은 20% 정도. 한두 달로는 기본기를 마스터하기도 쉽지 않고, 섣불리 고난도 동작을 하는 건 초보자에겐 위험하다고 해서, 일단 한 달간 가능한 목표를 세우기로 했다. 흰 띠로 시작해 초록 띠를 따는 것 정도는 무난하다고 하는데, 조금 더 욕심을 부려 그 위 단계인 파란 띠를 따기로 했다. 일주일에 3일은 공중기 훈련, 2일은 무술 기본기 훈련이다.
내 계획을 전해들은 친구의 한마디. “우와, 이제 너 길라임 되는 거야?” 길라임은 무슨. 그러면서도 왠지 흐뭇한 마음이 든다. 끝난 을 찾아봐야 하나?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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