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핑부츠
며칠 전, 서울 대학로에서 남자친구와 연극을 보기로 했다. 늘 학교에서 각자 작업을 하는 짬짬이 얼굴을 보는 사이라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렜다. 공연 시간은 저녁 8시. 그런데 남자친구는 8시30분에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뻔뻔스럽게도 웃는 얼굴이었다. 자기 몸만 한 검정색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내게 걸어오는 동안 몇 사람이 그 무시무시한 가방에 맞아 죽을 위험에 처했다. 남자친구는 그 사람들에게도 내게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저 조커만큼이나 찢어진 입으로 가방을 열며 천진난만하게 외쳤다. “짜잔!” 가방 속에는 목발과 의족을 합쳐놓은 것 같은 이상한 물건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점핑부츠야.”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말고 혼자 먹고 있던 팥빙수라도 끼얹어줘야 한다고 부르짖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지만, 나는… 졌다. ‘점핑부츠=하늘을 나는 부츠’라는 이상한 공식이 자동 입력되면서, ‘그래 이걸 새것 같은 중고로 살 수 있다면 공연을 통째로 날려버릴 만하군’이라는 결론이 역시 자동 출력됐다. “얼른 이거 타러 가자!” 소리치며 그 무거운 걸 메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탄 나는 29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사실 점핑부츠는 하늘을 나는 부츠는 아니다. 그보다는 좀 놀라운 ‘스카이콩콩’에 가깝다고 할까. 정식 명칭은 ‘세븐리그’(Seven League). 원래는 재활치료 목적으로 독일에서 개발한 특허 제품이다.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프로 점퍼들과 재활 전문의들이 스포츠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자동차도 막 뛰어넘을 수 있대.” 볼이 발그레해진 남자친구의 호들갑. 자동차뿐이랴, 2m까지 점프할 수 있고 시속 40km 속도로 달릴 수도 있다. 제품설명서에는 10분만 연습하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동영상을 찾아보니 정말 차를 뛰어넘고, 문도 뛰어넘고, 텀블링도 한다. 앞으로 달려나가는 폼은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본 달리는 ‘에반게리온’만큼이나 박력 있다.
마구 흥분해 있는데, 남자친구가 찬물을 끼얹는다. “너 또 이틀 하다 힘들다고 안 할 거지?” 그동안 내가 한 운동인 요가, 재즈댄스, 수영, 검도…, 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난 마라톤 10km 코스도 완주했다고(1시간30분이 걸리긴 했지만)! 발끈한 나. 그래서 내기를 하기로 했다. “2개월 뒤에, 매일 밤 야식 사러 넘어 다니는 학교 후문을 손 안 대고 뛰어넘겠어!” 내가 못 넘으면 의 말런 브랜도 피규어를 사주고, 넘으면 ‘아르셰 클래식’ 시리즈(한 권에 5만원) 세 권을 선물받기로 했다.
두근두근, 내일부터 연습에 들어간다.
김지현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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