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에 성공하고 나자 한동안 침체기가 이어졌다. 새로 도전할 종목을 찾아야 하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스케이트보드, 인라인스케이팅, BMX(자전거 장애물 경주), 웨이크보드, 스카이서핑, 스노보딩, 스키보딩, 동력눈썰매경주…. 이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나에게 익스트림 스포츠의 최대 단점은 위험한 게 아니라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날씨는 춥고, 눈은 많이 내리고…, 핑곗거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방에 콕 박혀 자주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채팅이나 하며 밤을 새우고 있는데, 친하게 지내던 회원이 귓말을 걸어왔다. “제가 아는 동생이 드리프트를 하는데, 이번에 새로 남양주에 캠프를 차렸대요. 한번 같이 가보실래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랜만에 두근두근. 바로 귓말을 날렸다. “당연히 가야죠!”
드리프트는 모터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코너에서 높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운전자가 의도적으로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코너를 통과하는 것이다. 경주에서는 미끄러지며 발생하는 연기와 타이어 마찰음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한다. 진입 속도와 미끄러지는 폭에 따라 각이 결정되고 멋진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아는 동생’의 캠프는 알고 보니 국내 최고의 드리프트 팀을 가진 모터스포츠사 ‘싱크로지’의 캠프였다. 배우거나 직접 시승해볼 수 없으니 동승이라도 해보고 가라며 깜찍발랄한 스물한 살의 청년이 시간을 내줬다. 전용 서킷은 강원도에나 있어 가까이 있는 그들의 연습 장소로 향했다. 깜깜한 밤에 구불구불한 산길이라니. 여기서 죽는 건가. 겁이 나서 슬쩍 물어봤다. 안전하다는 믿음을 갖고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이거 하다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하시는 거예요?” 그의 대답. “절대 죽지 않아요. 그리고 몇 가지만 지키면 차는 생각보다 훨씬 안전해요. 조금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몰래 안전벨트는 두 번 당겨봤다.
“자, 갑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정확히 여섯 번, 뒷바퀴를 휙 돌리면서 차가 지그재그로 미끄러졌다.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뒷자리에 탄 지인과 나, 운전하는 청년 모두 환호성을 질러댔다. 우와, 신난다! 마지막에 차가 ‘스핀을 먹어서’ 한 바퀴 빙글 돌 때는 피가 머리로 확 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순간이 가장 짜릿했는데 청년은 그만 울상이 됐다. 돌아오는 내내 “제가 아직 잘 못해서요. 아, 마지막에 너무 욕심을 부려서, 완벽하게 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잘하고 있었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모습이, 예뻤다.
드리프트 시승의 성과는 거기 있었다. 좋아하는 것에 미쳐 자신의 한계를 계속 넓혀나가는 모습과 몰입하는 모습에 조금 감동을 받았다. 스피드광인 지인의 컨버터블 차량 뚜껑을 올리고 신나게 달려 돌아오는 길에, 나도 그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겁없어진 나의 다음 도전 종목이 뭐가 될지, 기대하시라.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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