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시작하면서 언젠가 한 번은 다치지 않을까 했다. 워낙 몸치인데다 처음 해보는 것들, 게다가 익스트림 스포츠인 만큼 크게 다칠까 두렵기도 했지만 한 번도 안 가본 정형외과를 가볼 생각에 철없는 기대도 살짝 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송년 모임에서 이런 포부를 과감하게 이야기했다가 편집장의 진심 어린 걱정을 듣기도 했다. 사실 어리바리한 나를 ‘안전’ 강조해가며 열심히 가르쳐준 선생님들께도 무례하고 죄송한 얘기다. 그래도 만일 다치면 그게 훈장인 양 깁스 위에 예쁘게 그림을 그려서 사진을 찍어 기사로 올려야지, 하는 상상은 그만두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마지막 익스트림 스포츠인 익스트림마셜아츠는 여태껏 한 운동 중 제일 안전해 보였다. 사범님이나 함께 하는 분들이 매 동작을 할 때마다 서툰 나를 배려해 어느 부분을 조심해야 할지 알려줘가며 천천히 진행했다. 더구나 야외가 아니라 실내에서, 그것도 매트 위에서 하니 여러모로 상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그런데도, 결국 나는 다치고야 말았다. 웃긴 건 운동 중에 다친 게 아니라는 거다. 훈장 같은 깁스도 없다. 내놓고 하기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결국 다치는 바람에 운동을 못했으니 이 이야길 쓸 수밖에 없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학교에서 작업을 하다가 집에 갈 때쯤이었다. 안 쓰던 근육을 세밀하게 골고루 써서 어기적어기적 걸어야 했는데, 평소에 잘 안 신던 굽 있는 신발을 신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비상구 계단을 내려가다 사달이 났다. 발을 헛디뎌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그 와중에 여기서 데굴데굴 구르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허우적거리며 발을 디디거나 난간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계단 끝까지 계속 헛발질을 하면서 날 듯이 내려갔다. 그리고…,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가속이 붙은 상태로 벽과 창문에 얼굴과 옆구리, 팔꿈치를 세게 쾅 박았다. 무릎을 꿇는 자세로 넘어져서 다리는 바닥에 부딪쳤다. 만화 에서 제리를 허둥지둥 쫓아가다가 달리던 자세 그대로 벽에 온몸을 내던져 납작해진 톰의 모습과 똑같았다.
넘어진 모양새가 웃겨서 일단은 웃었는데, 갈비뼈 쪽과 얼굴의 통증 때문에 바로 눈물이 났다. 놀란 게 뒤늦게 몰려와서 일곱 살 꼬마애처럼 엉엉 울기까지 했다. 친구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긴 했는데 바로 집에 가기 힘들 정도였다. 얼굴에는 커다랗게 멍이 들었고,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의 통증이 심해졌다. 밖에 나가기 민망한 얼굴과 난생처음 겪는 타박상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체육관에 가지 못했다.
익스트림마셜아츠에 관심 있으셨던 독자분들, 또 나로 인해 희망을 얻을 수도 있었을 전국의 몸치 여러분께 죄송하다. 이제 멍도 거의 가셨고, 움직일 때 아픈 것도 거의 다 나았으니 슬슬 움직여보려고 한다. 열심히 해서 실패한 것과 하기 전에 포기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아마 다시 처음부터, 목표를 낮춰 잡고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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