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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위룰 농장 추수해야지

[한 게임 하실래요?] 생활 속으로 파고든 ‘사회인맥형 게임’ /
등록 2010-12-01 11:39 수정 2020-05-03 04:26

건설회사에 다니는 박 대리, 그는 퇴근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오늘, 며칠간 별렀던 (World of Warcraft)의 레이드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레이드는 와우만의 집단협력 플레이로서, 열혈 사용자인 그로서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행사였다. 게다가 그는 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탓에, 인원을 챙기고 계획을 짜는 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과장님이 오늘따라 몇 배는 얄미워 보였다. 자칫하면 며칠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니 말이다. 는 그에게 특별한 게임이다. 에서 사람도 만나고 고민도 나누는 등 현실의 관계에 못지않았다. 그의 인생의 반 이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그만큼의 대가도 따랐지만. 게임을 중심으로 생활이 돌아갔기 때문에, 얼마간 예전의 인간관계가 소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위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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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 그녀는 새벽에 귓가를 간질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가 아니다. 아이폰게임 (We Rule)에서 추수를 알리는 소리다. 그녀는 부랴부랴 눈을 뜨고 곡식을 수확한다. 무정한 소리는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회의를 할 때도 울려서 난처하기 일쑤다. 남들이 보면 문자를 확인하는 줄 알겠지만, 모르는 말씀. 알바를 해야 할 때다. 이웃 동네에 가서 부지런히 ‘알바’를 해야 돈도 벌고 경험치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재밌으니까. 자기만의 농장을 꾸미는 것도, 이웃과 교감하는 것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개성이 넘치는 나만의 농장을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 그러니 이놈의 아이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최근 게임판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게임을 하는 행태와 시간을 쓰는 방식이 확연히 바뀌었다. 바로 ‘사회인맥형 게임’(Social Networks Game) 때문이다. 원래 게임은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는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게임 좀 그만해!” 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짬짬이 시간을 내서 하는 게 게임이었다. 같은 게임은 플레이 시간이 100시간이 넘어가기 때문에, 하루를 쪼개기는커녕 주말에 시간을 내야 할 정도다. 휴가를 내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그래도 이런 게임은 혼자서 하는 것이라 형편이 낫다. 다중접속게임은 자기는 물론 타인의 시간까지 맞춰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인맥형 게임은 그럴 필요가 없다. 친구와 잡담하는 것처럼 그냥 하면 된다. 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단추 몇 개만 누르면 추수하고 알바해서 돈과 경험치가 쌓인다. 장대한 스토리도, 복잡한 인터페이스도 필요 없는 것이다.

처럼 단순한 경영게임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혼자서’ 남는 시간 ‘죽이는 것’ 이상이 못 됐다. 스마트폰은 거기에 도약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한쪽 날개는 게임 플랫폼을 신체의 일부로 만들어준다. 휴대용 게임기는 휴대가 ‘가능’했을 뿐이다. 한쪽 날개는 언제 어디서나 타인과 소통을 가능케 해준다. 접속은 게임에 기능을 추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반적 소통이 게임 형식을 띠면서 생활로 파고드는 점이다. 결국 노는 것인지 사는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게 된다.

알다시피 현대사회는 여가와 노동을 엄격히 구분해 관리했다. 사회인맥형 게임이 흔드는 것은 바로 그 이분법이며, 그 빗장을 걷어낸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얄궂다. 노동에서 탈주한 사람들이 또다시 노동하는 모습이란 웃기지 않은가.

김상우 기술미학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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